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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by 김민식pd 2011. 6. 22.

94세의 늙은 투사가 들려주는 이야기. 실제 분량은 30페이지 정도의 작은 책이지만, 읽는 동안 가슴 속에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느낌!


스테판 어르신의 말씀 '경쟁하기보다 참여하라'.

PD 지망생들을 만나 강의하는 자리에서 내가 늘 하는 고민이 있다. 난 어느 자리에서나 즐겁게 모임을 끌어가고 싶은데, 30명의 학생이 있으면, 그 안에는 미묘한 기류가 있다. 이들은 PD라는 꿈을 공유한 동지이면서 한편으론 서로의 경쟁상대인 것이다. 내 꿈을 향해 달리며, 내 친구의 꿈도 응원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생각해보면, 드라마 PD의 삶이 그렇다. 같은 시간에 세 편의 미니가 방송되면 하나는 대박, 남은 둘은 쪽박. 전국민이 시청률로 나의 경쟁력을 매겨주는 피 튀는 전쟁터. 나는 그냥 사람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 나의 행복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저당잡힌 꼴이 되었을까?

경쟁은 결코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이기면 되지 않냐고? 아무리 잘난 PD라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연속으로 대박내는 사람없다. 결국은 확률에 굴복된다. 3번 중 한번 대박, 남은 두번 쪽박. 이런 상황에선 대박나도 별로 즐겁지 않다. 이번의 성공이 영원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대한민국 국민들이 불행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경쟁에서 질까봐 불안하고, 져서 불안하고, 이겨도 추락할까 불안하다. 서울 지방 선거에서 강남3구에서 보수 몰표 나오는 이유가 뭔가? 저들도 불안한거다. 기득권 뺏길까봐. 경쟁하는 사회에선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이기면 행복할까? 대한민국 1%만이 경쟁의 승자로 행복을 누린다고 할 때, 당신은 남은 99%의 사람들의 불행을 보면서 혼자 행복할 자신이 있나? 나는 그런 자신 없다. 아니 그런 싸움에서 이길 자신도 없다.

경쟁하기 싫은 사람은 어찌 해야하나? 싸움에 끼지 않으면 자동으로 실격패 처리되는 세상. 과거 선비들의 안빈낙도는 무능력자의 자기변명으로 여겨지는 세상. 물러나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버린 세상을 손가락질만 하고 살다보면, 백수라고 외려 손가락질 받게 된다. 경쟁의 반대말은 기권이 아니다. 참여다. 비정한 세상이 싫으면, 따뜻한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 분노하고 참여하면 된다.

PD가 되기 위해 내 주위 모든 지망생들이 나의 적이 될 필요는 없다. 공중파 PD는 꿈이 아니다. 진짜 꿈은 PD가 되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이 진짜 꿈이다.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다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나 있다. 반값 등록금 집회에서 재기발랄한 피켓 하나 들고 있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긴 1명의 PD만이 아니라, 남은 299명의 PD를 꿈꾸는 사람들이 다같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 불가능해보이는 숙제이지만, 다같이 고민하면 답이 보이지 않을까?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읽고, 답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고민이 더 깊어진다. 하긴 어르신 말씀이란 게 그래야 하지 않나? 불가에서는 답보다는 화두를 던져주는 스승이 참 스승이다. 오늘 화두 하나 받아간다. '분노하라'. 

ps.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잘 정리해둔 신문 인터뷰가 있어 소개한다. 기사만 읽어도 책 사보는 것 못지않다. 역시 난 공짜가 좋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6202221555&code=9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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