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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PD 월급은 얼마에요?

by 김민식pd 2011. 5. 25.

지난 주엔, 큰 딸 초등학교에서 가서 훈화를 하고, 어제는 인천의 계산고등학교에 가서 진로 특강을 했다. 인천 지역 5개 학교가 연합해서 학생들이 관심 많은 직업을 선정해 직업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많은 학생들이 눈을 총총이 빛내며 수업을 들어 2시간 내내 즐거운 자리였다.

학생들에게 질의 응답을 받았는데, 첫 질문이, 'PD 월급은 얼마에요?'였다. 중요한 문제지. 예전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는 줍니다. 돈 걱정 말고 오세요.' 라고 했는데, 요즘은 정확한 액수를 말해준다. 입사 15년 차인 요즘 나의 연봉은, 1억이 좀 안되는 것 같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액수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마음만 먹으면 PD는 정말 돈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직업이다. 왜냐고? 돈을 쓸 시간이 없으니까. 예능 조연출 하는 기간 동안은 특히나 돈이 많이 모인다. 매일 회사에서 밤새니까 야근 수당 나오지. 주말에도 나가서 혼자 편집하니까 주말 수당 나오지. 시간 나면 나가서 놀기보다 편집실 소파에서 잠자기 바쁘니까 돈 쓸 일 없지. 

낮에는 촬영 쫓아다니고 밤에 편집해야 하는데, 편집실 배정 받기가 어려워서 도서관에서 메뚜기 뛰듯이 편집 마치고 퇴근한 선배들 방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집에 들어갈 시간이 없어 아침에 화장실에서 거울 속 폐인과 인사나누고 충혈된 눈 비비며, 눈꼽을 떼는데, 거울에 붙어있는 문구, '세면대에서 발은 씻지 맙시다.'

동기인 임정아 PD가 신혼 초, 편집기를 찾아 늘 회사에서 밤을 샜더니, 독수공방 하던 새신랑이 볼멘 소리로 그랬단다. "편집기 때문에 매일 그렇게 회사에서 밤새는 거야? 그러지말고 집에다 편집기 한 대 사다 놓자. 그럼 회사에서 밤 안 새도 되잖아." "진짜? 편집기 한 대에 3천만원인 데, 나 이제 전용 편집실 생기는 거야?" "3천? ...... 그냥 회사가서 밤 새."  

월급장이 생활, 어언 20년이다. 한국 3M에서 영업사원으로 직장 생활 시작한게 1992년 일이니까. 20년 결산으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면, 돈을 쫓아 일을 바꾼 사람들은 다 망했고, 돈보다 재미를 찾아 일을 옮긴 사람들은 다 잘 됐다. 거액의 계약 제의를 받고 회사를 나간 PD들은 한 두번 드라마 망하면 두번 다시 기회가 오지 않는다. 외주 드라마 시장은 철저하게 돈 값을 하느냐 못하느냐로 판단받는 냉혹한 세상이다. 돈은 좀 적게 받아도 직장의 울타리 안에 있는 이들에겐, 실패의 기회가 보장된다. 그리고 10억을 받고 나간 사람은 나간 순간부터 10억의 노예가 된다. 10억 어치 몸값을 해내야 하니까.

난 돈의 노예가 되기보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회사를 다니는 편을 선택하고 싶다. 내가 말아먹은 시트콤과 드라마가 꽤 되는데, 그래도 내쫓지 않고 꼬박꼬박 월급 챙겨준 고마운 회사에 보답하는 길은 그게 아닐까? 


PD 월급, 생각만큼 많지는 않다. 그래도 돈 보다 재미를 찾아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언젠가 돈은 절로 따라 온다. 그리고, 재미난 인생을 살았다면... 까짓 돈 좀 못 번들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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