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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과 성형미인

by 김민식pd 2013. 10. 22.

몇 년 전 새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배우 오디션을 볼 때 일이다. 며칠 동안 수십 명의 면접을 보는데 어떤 여자 신인이 들어왔다. ‘어라?’ 옆자리 조연출에게 물었다.

쟤는 어제 오디션 본 친구인데 왜 또 왔지?”

선배님, 처음 온 애인데요?”

프로필을 뒤져 사진을 찾아냈다.

, 어제 온 애잖아.”

조연출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선배님....... 둘이 소속사가 같아서 그래요.”

잠시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순간, ‘!’

, 소속사는 같아도 제발 병원은 다른데 보내라 그래라.”

 

오디션을 보다보면 이런 경우, 너무 많다. 요즘 성형 트렌드가 비슷한 탓인지 여자 신인들의 경우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 가는 친구들이 많다. 예전에 청춘 시트콤을 연출할 때 보면, 개성이 강한 코미디 배우도 많았는데, 한동안 안 보인다 싶으면 얼굴이 바뀌어서 나타나더라. 물론 더 예뻐 보이고 싶은 욕심은 이해하지만 연출 입장에서는 배우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뿐이다.

한때 비포 앤 애프터 성형외과라는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의사들을 만나 면담도 하고 자료조사도 많이 했다. 성형외과 의사를 만난 자리에서 슬쩍 물었다.

요즘 신인 여배우들은 얼굴에 개성이 없어요.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오디션 보면 헷갈려 죽겠다니까요?”

의사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게 어디 우리 탓입니까? 일부 유명 연예인만 주인공으로 고집하는 드라마 감독님들 때문이죠. 드라마 보세요. 늘 나오는 사람만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손님들이 와서 하는 얘기가 다 똑같아요. 누구처럼 해 달라. 누구처럼 고쳐 달라. 저희도 아주 죽을 맛이라니까요. 드라마에는 왜 신선한 얼굴이 안 나오는 겁니까?”

질문을 질문으로 되받기. 오호라, 이런 묘수가 있었구나.

 

직업이 드라마 피디라고 하면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왜 한국 드라마에는 막장이 많나요? 모든 연속극이 막장이니까, 좀 색다른 연속극을 보고 싶어도 시청자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니까요?”

성형외과 의사에게 배운 수법을 써먹었다.

그게 어디 피디 탓일까요? 막장 연속극을 만들었는데 시청률이 낮아서 망하면 방송사에서 또 만들라고 시키겠습니까? 막장이 시청률이 잘 나오니까 또 만드는 거지요. 사람들이 막장만 보니까 막장을 만드는 건지, 방송사가 막장만 만드니까 막장을 보는 건지, 저도 모르겠더라고요.”

 

요즘 뉴스를 보면 썬데이 서울만도 못한 보도가 판을 치는데 가관인 것은, 종편이 생산한 뉴스를 받아서 재탕하는 공중파다. 보도의 수준 저하를 종편이 선도하고 공중파가 답습하는 형국. 종편 출범 당시 상상도 못했던 지옥도가 아닌가. ‘이미 종편에서 특종을 했는데, 그걸 받아서 톱뉴스로라도 다루는 게 언론의 도리 아니냐!’를 외치는 보도 국장님. 어쩌다 우리 언론의 수준이 저 지경이 되었을까? 시청자들의 수준이 낮아서 저런 뉴스가 나오는 걸까, 뉴스의 수준이 낮으니 시청자의 수준도 떨어지는 걸까.

 

어떤 성형외과 의사는 이런 얘기를 하더라.

연예인 사진 들고 와서 무조건 이 사람처럼 고쳐 달라고 하는 사람 많죠. 성형에도 유행이 있는데요, 유행에 민감한 환자 요구대로 고쳐주면 다 똑같은 얼굴 나옵니다. 전문가라는 게 뭔가요. ‘죄송하지만 손님 케이스에는 그 수술이 필요 없습니다.’ 하고 돌려보낼 줄도 알아야 진짜 의사지요.”

 

전문가란 무엇일까? 시장의 요구를 따르기보다, 시장을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하는 사람 아닌가?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하기보다 영혼이 담긴 선택을 하는 진짜 전문가가 되고 싶다.

 

(피디 저널 칼럼 '김민식의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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