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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UFO를 공개하라

by 김민식pd 2013. 7. 1.

초등학교 6학년 때 동네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UFO를 본 적이 있다. 옥상에서 노는데 옆 골목을 지나가는 아저씨들이 , 저게 뭐야?” 해서 봤더니 훤한 대낮인데 하늘에 둥근 빛 3개가 날아가다 제 자리에 멈춰 한동안 있더니 갑자기 세 방향으로 흩어졌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본 건 진짜 UFO, 즉 미확인 비행물체 (Unidentified Flying Object). 다만 그것이 외계에서 날아온 우주선인지 미래에서 날아온 타임머신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려서부터 타임머신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시간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 유난히 끌린다. 드라마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나 응답하라 1997’ 같이 시간 여행이나 시간의 재배치를 소재로 만든 이야기가 인기를 끄는 것도 반갑다. 물리적으로 타임머신을 만들기는 힘들어도 타임슬립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인과율의 문제가 있어 불가능에 가깝지만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이나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

 

작년에 영화 남영동 1985’를 보고 나오는 길에, 고 김근태 의원이 연루되어 고초를 겪은 서울대생 내란 음모 사건이 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19711113일 중앙정보부는 서울대생 4명과 사법연수원생 1명이 모의해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했다고 발표했다. 소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명명된 당시 중앙정보부 발표는 5명의 서울대생이 516 군사쿠데타를 능가하는 작전을 수립한 것으로 돼 있다. 중정은 이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71427)를 전후로 교내와 하숙집 등에서 모의, 학생 데모를 일으켜 경찰과 충돌을 유도하고, 이 때 사제폭탄을 사용해 중앙청을 습격해 장악하고, 이어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현 정부를 전복한 뒤 민주혁명위원회를 구성, 427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金大中)씨를 위원장에 추대하고, 부정부패자 처단을 위한 혁명입법까지 미리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한국일보 2003.7.24.-

 

대학생이 사제폭탄으로 중앙청을 습격해서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는 기사를 읽고 그 신선한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1970년대 중앙정보부는 이렇게 창의적인 조직이었구나. 문득 이런 상상을 해봤다. ‘당시 내란 음모 사건으로 잡혀간 사람이 중앙정보부에서 모진 고문을 받다 뇌사에 빠진다면? 그래서 식물인간 상태로 살다 2013년 현재 의식이 돌아온다면?’ 타임슬립이 별건가? 그런 게 수십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 여행 아닌가?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면? “유신 헌법 제정으로 종신 집권을 노리던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에 술자리에서 부하가 쏜 총에 맞아죽었답니다.” “, 진짜요?” “그리고 김대중 씨는 1997년에 대통령이 되었지요.” “그게 정말입니까?” “선생님의 동지였던 김근태 씨는 인권변호사 출신의 어느 대통령 임기 중에 장관까지 지내셨답니다.” 감격에 차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그가 물어본다. “그래서 지금 대통령은 누구인가요?” “박정희의 딸, 박근혜입니다.” “???”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위기가 오면 외부의 위협을 터뜨려 정국 전환을 시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과거에는 대학생들이 사제폭탄으로 정부를 전복시킨다는 가공할 상상력을 보여준 정보기관도 요즘은 기껏해야 골방에 틀어박혀 일베수준의 댓글 달기나 하고 있다. 그나마 그게 들통 나자 대통령 기록물을 공개해서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데, 이런 모습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국정원이여, 차라리 UFO의 지구침공설을 유포하시라. 반목하는 전 인류를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을 테니 그보다 더 좋은 안보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PD저널 칼럼 김민식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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