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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노후가 즐거울 것이라는 믿음

by 김민식pd 2025. 9. 22.

한국 노년 학회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노후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사람의 평균 수명이 7.5년 차이가 난다.’라는 연구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노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수명이 달라진다니 궁금한 마음에 그 연구를 담은 책을 찾아봤습니다. 오래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주위에 건강하고 행복한 노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노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장수를 가져온다고요. 

<나이가 든다는 착각> (베카 레비 지음 / 김효정 옮김 / 한빛비즈)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바이러스가 인간의 수명을 7년 이상 깎아 먹는 것으로 밝혀졌다면, 그 원인을 밝히고 치료법을 찾는 데 상당한 노력이 투입되었을 것이다. 이 경우, 원인 한 가지는 이미 알려져 있다. 바로 노인을 폄하하는 사회적 분위기다. 그런 분위기를 만든 사회가 노인을 멸시하는 태도와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대체로 해결된다.”

노후의 삶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 전체의 평균 수명을 7년 이상 늘릴 수 있습니다.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건강에 악영향을 줍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그 영향은 커집니다. 젊어서는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나이가 스물다섯일 때는 자동차 열쇠를 엉뚱한 곳에 두어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아요. 일흔다섯에 같은 행동을 했다면 곧 치매에 걸릴지나 않을까 불안해집니다. 60세가 넘으면 정신 능력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을 평생 흡수한 탓입니다. 

평생에 걸쳐 우리는 노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무의식중에 갖게 되고요. 마침내 노년에 접어들어서는 뭔가를 깜박깜박할 때마다 자신의 나이를 탓합니다. 결국 우리는 살아가면서 고령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살다가 인생 막바지에는 당신 자신에게 적용하는 거죠. 이런 태도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높이고, 기억력을 떨어뜨립니다.

예전에 전철을 탔다가 어떤 어르신이 혼잣말로 큰소리로 욕을 하고 고함을 지르는 걸 봤습니다. 치매 초기 증상 중 하나가 분노 조절 장애입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감정 조절이 힘듭니다. 평소에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사람들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뇌 기능이 약해지면 주변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기보다는 일단 ‘욱’하고 화를 내기 쉽거든요. 문제는 그런 노인의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도 노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기 쉽다는 거죠.

이 책을 읽고 결심한 게 있습니다. ‘즐거운 노인이 되어야겠다.’ 노후에도 하루하루 즐거운 삶을 영위하는 건 개인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도 노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게 됩니다. 그게 바로 공중보건에 이바지하는 길입니다. ‘이성적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자’는 말이 있는데요. 노후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갖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언론에서는 대개 수명 증가로 국고가 바닥나고 병원에 환자가 넘쳐날 것이라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장수가 증가하면 건강과 부 역시 증가한다는 증거가 많습니다. 실제로 증가하고 있는 유일한 천연자원은 더 건강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성인 수백만 명이라는 사회 자본입니다. 미국에서 50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32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지만 미국 가구의 순자산 중 77퍼센트를 관리하고 여행, 휴양, 개인 생활 용품에 더 많은 돈을 씁니다.

부정적인 나이 고정관념에서 나온 오해와 달리, 노인들은 경제를 좀먹기는커녕 경제에 활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가족 내에서 돈은 고령의 구성원으로부터 젊은 구성원 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흔합니다. 미국에서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들어 현대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기업가들을 보면, 20대 초반보다 50세 이상에 성공할 확률이 두 배나 높습니다. 이제는 노인이라고 경제 활동에서 배제될 이유가 없습니다.

도시에서 노인은 생산 활동에서 배척되기 쉬운데요. 지역은 아닙니다. 두 달 전, 동해안 자전거 여행을 갔다가 주문진항에서 오징어잡이 배를 타는 어부 할아버지의 푸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첫째, 나이 들어 일하자니 힘들다. 둘째, 같이 일하는 젊은 러시아 친구가 말이 안 통해서 힘들다. 셋째, 배랑 장비가 낡았는데 선주가 새로 투자를 안 해서 힘들다. 사양산업을 지키는 농어촌 어르신들의 삶이지요. 그럼에도 각종 연구를 보면, 이렇게 지역 사회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노인들이 도시에서 노동에 소외된 인구보다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산답니다.
 
스탠 카슬이라는 학자는 삶의 의지가 있으면, 아니 단순히 기다리는 행사만 있어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독실한 그리스도교인들은 종종 죽음을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이후로 늦추고, 독실한 유대교도들은 속제일, 유월절, 나팔절 이후로 미룹니다. 저자가 수업에서 이 현상을 설명하면, 손을 들고, 간절히 기다리던 가족의 결혼이나 탄생 직후까지 사망을 유예한 친척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학생이 꼭 몇 명씩 있다고요. 삶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책에는 닮고 싶은 여러 노인의 삶이 소개되는데요. 그 중 한 분은 84세의 은퇴한 연극배우 존 베이신저입니다. 60세가 되던 1992년에, 존 베이신저는 존 밀턴의 《실낙원》 암기에 도전했습니다. 《실낙원》은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으로 에덴에서 추방된다는 내용을 담은 18세기 서사시지요. 존은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동안 한 번에 일곱 줄씩 외우는 속도로 시작했어요. 애초에 전부 다 외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존은 일단 뭔가를 시작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끝장을 보고야 마는 사람이었어요. 8년 후, 그의 70대가 끝나고 새천년이 밝아올 무렵에 존은 6만 자 분량의 방대한 시를 완전히 암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파리대왕》 같은 소설 한 편과 맞먹는 길이였는데요. 사흘간 이 시를 읊는 특별 낭송회를 열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전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늙어가는 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의 상당 부분을 암기하고 이것을 일인극으로 각색했어요. 

나이 70에도 뛰어난 암기력을 보이는 그는 특별히 머리가 좋은 사람일까요? 검사 결과 그의 기억력은 평균을 넘지 못했습니다. 일상 과제에 대한 그의 기억력은 그저 그런 수준이라고요. 그의 암기력을 연구한 학자는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뛰어난 암기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아주 평범한 기억력도 개발하려는 의지나 올바른 연령 인식과 결합하면 근육처럼 튼튼하게 발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저는 요즘 외국어 공부에 진심입니다. 1년에 외국어 하나씩 정해서 공부를 하고요, 그 언어를 쓰는 나라를 여행합니다. 나이 50에 외국어 회화책을 한 권씩 외운다고 하니 사람들이 “피디님은 언어에 재능이 있으신가 봐요.”라고 하는데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뇌도 근육하고 똑같아요. 끊임없이 단련하면 더 강해질 수 있어요. 

멋진 노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매년 새로운 외국어를 공부하고, 매년 새로운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노인. 노후의 삶도 청춘 못지않게 즐겁게 살 수 있나는 걸 삶으로 증명하고 싶습니다. 그 결과 주위 사람들에게 노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게 제 꿈입니다.
 
(내년에 나올 책 원고 작업하느라 당분간 블로그 새 글 발행을 일주일에 한번으로 줄입니다. 매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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