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게임에 빠져 사는데, 나도 얼마 전까지 게임 마니아였다. 플레이스테이션, XBOX, 닌텐도 위, 집에 다 있다. 몇 년 전에는 게임 동호회 중고 장터에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시디를 누가 헐값에 내놓은 걸 보고 현장 거래를 청했다. 전철역에 갔더니 웬 초등학생이 서 있다가 '아저씨가 미키짱이었어요?'하고 무척 황당해 하더라. 게임 시디를 찾아 초등학생 아이의 가방을 뒤지며 희희낙락하는 내 모습에 지나가던 승객들이 의혹의 눈길을 던졌지만... 뭐, 중년의 덕후 처음 봐? "야, 이건 시디 속지가 찢어졌잖아! 천 원 깎아!" 

 

게임이 재밌는 이유? 초현실적 시간의 흐름 때문이다. 게임 속 시간은 현실보다 훨씬 빨리 흘러간다. 1시간만 공들이면 게임 속 캐릭터는 1년을 수련한 듯 전투력이 급상승한다. 현실에서는 수년을 노력해도 못 이룰 과제를 게임 속에서는 몇날 밤만 꼴딱 새면 완수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게임에 빠지는 이유는 투입 시간에 대한 막대한 보상 효과 때문이다.

 

게임 속 시간의 흐름에 빠져살다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게임 속 캐릭터가 만렙 (레벨 10000)을 달성한다 해도 실제 나의 능력치가 높아지는 건 아니잖아? 게임속에서는 끝판왕을 단칼에 작살내는 영웅도 현실에서는 그냥 중년의 찌질한 덕후잖아?

 

그래서 취미를 바꿨다. 게임에서 강연으로. 강연 역시 시간의 투입효과가 막대하다는 점에서 게임과 비슷하다. 강연에 나서는 연사들은 수 십 년간 살며 겪은 이야기를 수십분의 강연 속에 녹여낸다. 좋은 강연은, 오랜 세월 축적된 삶의 지혜가 녹아있는 것이다. 평생 좋은 강연 100개만 찾아들어도 수천년의 경험치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작년 가을, 나는 김여진씨의 강연을 들었다. 한진 중공업 희망버스나 등록금 반값 투쟁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날라리 외부세력'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한 강연이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라는 그 강연의 주제는 오래 오래 내 마음에 남았다. 지금 120일간 파업을 하면서 내가 즐겁게 버티는 이유는 그때 배운 삶의 자세 덕분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던 이기적인 딴따라다. 그런 내가 노조 집행부가 된 이유는? 법륜 스님의 강연을 즐겨 들은 덕분이다. 안철수 교수를 대중 속의 삶으로 이끈 것도, 배우 김여진씨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도, 나를 노조 집행부로 만든 것도 법륜 스님의 말씀이다. 세상이 괴롭다고 세상을 버리고 가상세계로 은둔하는 것보다, 그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자세라는 스님의 말씀에 감사한다.

 

나는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는다. 10분이 비면, 앉은 자리에서 TED.com에 들어가 강연을 듣고, 1시간이 비면, 컴퓨터로 온라인 강연을 듣고, 하루 저녁이 비면, 오프라인 강연장을 찾아나선다.

 

게임 속 악마를 아무리 때려잡아봤자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현실의 악당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모두가 게임 마니아가 되는 세상이다. 게임 속 악마를 상대하느라, 현실 속 진짜 악당을 잊고 사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건 혹시 매트릭스 속 세상이 아닌가? 가상의 세계에 빠져서 현실 세계에서는 거대한 기계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밧데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 아닌가? 이제 모피우스가 건네주는 빨간 약과 파란 약,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만약 당신이 빨간 약을 선택했다면, 그래서 가상 세계에서 안락함 대신 치열한 삶을 선택했다면, 나는 당신에게 강연이라는 전투력 증강 최고의 처방을 드리겠다. TED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2010/12/17 - [공짜로 즐기는 세상] - 공짜로 보는 세계 석학들의 특강, TED

 

2011/08/08 - [공짜 PD 스쿨] - PD지망생을 위한 TED 강연 추천 목록 1.

 

오전에 포스팅한 후, 어떤 분이 트위터로 박경철 원장님의 강의를 추천해주셨는데, 보니 정말 좋다.

블로그 공짜 스쿨, 이런 양방향 강의 덕에 나 역시 참 많이 배운다. 추천해주신분께 감사!

여러분께도 추천한다. '행복한 삶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강연에서 찾는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CALiQs4rq7A$

 

 

 

 

 

 

 

공정보도 말살과 비리의 끝판왕, 김재철을 물리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전투력 레벨업을 꿈꾼다.

쿠파보다 더 막강한 적이 여기있는데, 굳이 디아블로에서 악마만 때려잡을 이유가 뭐냐?^^

 

 

(공지)

금요일 저녁 참여연대 아카데미에서 시민들과 만나는 토크쇼에 나선다. '9시의 거짓말'을 쓰고 해고된KBS 최경영 기자, 그에게서 한국 언론이 가야 할 길을 듣고 싶다. 그리고 언론자유를 응원하는 시민들과 즐거운 대화 속에서 김재철을 몰아내는 비법을 찾고 싶다.

http://academy.peoplepower21.org/?mid=lecture_info_detail&school_id=171&page=1&kw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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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비오 2012.05.30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경영 기자님 트위터로 글 보고 있었는데 강연을 하시는 군요
    시간내서 꼭 보러 가야겠네요
    김피니님도 좋은 강연 되시길 바래요 ~~^^

  2. 김하연 2012.05.30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강연 좋아해요. 최진기씨의 인문학 강좌나, 경제학 강좌도 무척 재밌고 유용했어요. 다큐 좋아해서 방송삼사 스페셜~ 모두 챙겨보고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