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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외로울 때 나를 위로해준 건

by 김민식pd 2024. 6. 21.

20대에 저는 많이 외로웠습니다. 대학 입학 후 연애를 해보는 게 꿈이었는데요. 소개팅, 미팅, 과팅, 연속으로 스무 번 차이고요. 몰래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서도 차였어요. 제가 좋아한다는 신호를 격하게 보내자 바로 다른 친구와 공개 연애를 발표하더라고요. 제가 정말 부담스러웠나봐요. ㅠㅠ

외롭고 힘든 시절, 나를 위로해준 노래가 있어요. '다섯 손가락'의 '사랑할 순 없는지'

'누군가 이 못난 나를 사랑할 순 없는지
서글픈 내 몸짓에 가난한 내 영혼까지
그대 여린 가슴을 놀라게 하긴 싫지만
나는 그대를 사랑하나봐'


동아리방에 혼자 기타를 메고 앉아 저 노래를 구슬프게 불렀으니 청승도 그런 청승이 없지요. 내가 여자라도 싫을 것 같네요. ^^ '다섯 손가락'의 노래는 다 좋아했어요. '새벽 기차'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이층에서 본 거리' 다 왠지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았거든요. 

얼마 전 신문에서 '다섯 손가락'의 멤버인 '이두헌'님이 새 앨범을 발표하고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을 봤어요. '아, 나의 20대를 위로해주시던 분이 아직도 노래를 하시는구나!'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어요.  

 

지난 일요일 (6월 16일) CKL 스테이지에서 이두헌 님은 밴드 없이 혼자 무대에 올라 통기타만으로 두 시간 동안 공연을 하셨어요. 조명이 꺼지고 기타 반주와 함께 “희미한 어둠을 뚫고 떠나는 새벽기차는~" 하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저는 허물어졌어요. 세상에, 이 노래를 내가 나이 쉰 다섯에 라이브로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이 노래는 밴드 다섯손가락의 1985년 데뷔 앨범 타이틀곡이자,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이두헌 님의 가요계 데뷔곡이에요. '불꽃밴드'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셨지만, 원래 밴드 활동을 하며 여럿이 같이 공연하시는 분인데요. 그날은 오롯이 혼자 노래를 부르셨어요.

무대에 홀로 오른 이두헌 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외로움입니다. 나를 외로움 속에 던져놓고 좀 더 잘하고 싶어서 혼자 섰습니다.”

맞아요. <외로움 수업>에서도 썼지만, 은퇴 후 직장을 나와 우리는 모두 외로움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 시간을 잘 보내야 합니다. 외로움이 괴로움이 아니라, 설렘과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럼 우리는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고요. 조직의 울타리를 나와 초원을 뛰어다니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층에서 본 거리’가 흘러나올 땐 저도 조용히 따라 불렀고요. ‘풍선’을 연주하실 땐 관객들과 함께 신나게 떼창도 했어요. 익숙한 노래도 좋지만, 그날 처음 들은 노래도 있어요.

'고호의 귀'

'세상이 피곤하게 느껴지는 날에는 모든 게 나를 외면하는 듯한 날에는 그럴 땐 벽에 걸린 그림을 봐
귀가 잘린 고호의 그 눈빛을 세상이 그를 외면 할 때에도 그의 손은 붓을 놓지 않았지
어느 날 그는 그의 귀를 잘라 버렸지 모두들 그가 미쳤다고 말을 했지만
세상에 단 한사람 그를 믿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인 사람은
세상을 떠나 버린 그를 따라 그의 곁에 혼을 묻은 동생뿐
사는 동안 그를 믿어 준 단 한사람이 있었음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그의 영혼은 그림을 그렸는지 몰라
사는 동안 그가 판 것은 단 한점의 유화 그렇지만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그의 영혼은 그림을 그렸는지 몰라
사는 동안 그를 믿어 준 단 한사람이 있었음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그의 영혼은 그림을 그렸는지 몰라'

아, 이두헌님은 어쩌면 이렇게 외로운 사람의 영혼 깊숙이 읽어내시는 걸까요? 저도 반 고호를 좋아합니다. 제게 있어 예술가로서 롤 모델이에요. 평생 그는 2천 장 넘게 그림을 그렸지만 판 것은 단 한점의 유화 뿐이에요. 대중이 그를 외면해도, 그는 죽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어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세상 사람들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내 안에서 쓰고 싶은 글, 읽고 싶은 책, 가고 싶은 길이 끊임없이 솟아나기를 소망합니다. 

이두헌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어디서 공연하든 50명만 늘 와주는 게 꿈입니다. 정미소, 차밭, 막걸리도가 등 어디서든 저를 응원해주는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무대에 홀로 선 이두헌 님을 향해 객석에서 조용히 손가락을 내밀고 혼자 걸어봅니다. '네, 두헌님이 어디를 가시든 먼발치에서 응원하는 50명 중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는요, 80년대에 다섯손가락 앨범을 제 돈 내고 산 적이 없어요. 부끄럽지만, 길거리 리어카에서 파는 불법 복제 테이프로 들었어요. '죄송합니다. 이두헌 님.' 그때 저는 너무 가난했어요. 입주과외로 월급 10만원을 받던 대학생이었거든요. 이제는 나이 50이 넘었고요, 평생 다양한 일에 도전하며 열심히 벌었어요. '늘그막에 좋아하는 아티스트 덕질하려고 그동안 열심히 모았구나.'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내심 뿌듯했어요.   

7월6일 7일 양일간 홍대 구름아래소극장에서 하는 '다섯 손가락' 공연을 예고하셨어요. 이두헌 님의 솔로 콘서트를 보고 나니 다섯 손가락의 밴드 공연이 마구 땡깁니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바로 예매를 했습니다. 먼발치에서 응원한다고 다짐하고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무대에서 세번째 줄 표를 샀어요. 7월 7일 홍대에서 저랑 함께 '풍선'을 떼창 하실 분들, 놀러오시어요. 반갑게 인사 나누고 흥을 나눠도 좋을 것 같아요.

꾸준히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며 성장해가는 아티스트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정말 팬으로서 최고의 행복입니다.

이두헌 님, 7월 7일에도 뵙고, 자꾸자꾸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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