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겐 몇 번의 힘든 시절이 있었어요. 2012년 MBC 노조부위원장으로 일하다 회사에서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았을 때. “넌 이제 드라마 촬영장에 나오지 말고 혼자 반성해.” 누가 나에게 외로움이라는 벌을 주면, 저는 그걸 자신에게 선물로 돌려줍니다. ‘와, 이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생겼네?’ 늘 하고 싶었던 일을 찾습니다. 평생 매년 200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으로 살았으니 이제는 책 한 권 써봐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2012년에 나온 책이 <공짜로 즐기는 세상>입니다. 책은 잘 팔리지 않아 출판사가 문을 닫았어요. ㅠㅠ 지금은 절판...
2015년 드라마국에서 쫓겨나 송출실로 발령이 났어요. 그 소식을 접하고 혼자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차 안에서 펑펑 소리 내어 울었어요. 사내에서 나를 미워하는 무리들과 마주칠까 봐 출근하는 게 매일 스트레스였어요. 그러다 병날 것 같아 휴가를 내고 훌쩍 남미로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회사로부터 일단 몸이 멀어지니 마음이 가라앉더라고요.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즈음 강원국 작가님의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었어요. 책에서 강원국 작가님은 글쓰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하셨어요. 또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매일 써보라고 독려하셨고요. 책에서 시킨 대로 열심히 블로그에 매일 한 편씩 글을 올렸고요. 그렇게 모은 글로 2017년에 낸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어요. 아, 강원국 작가님이 내 인생의 은인이로구나!
‘유배지를 전전하던 피디는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그 과정을 담은 책 <매일 아침 써봤니?>를 낸 게 2018년 일이고요. 그해 봄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제작진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글쓰기 책의 저자로서 강원국 선생님과 함께 합동 강연회를 하면 어떻겠냐고. 세상에나, 세상에나! 제게 글쓰기를 가르쳐주신 스승님과 함께 무대에 서서 강연을 한다고요? 긴장되고 부끄럽고 두렵고 막 그랬지만... 강 작가님을 직접 뵐 수 있다는 설렘과 기쁨에 달려갔습니다.
직접 뵙고 무대에서 강연하시는 모습을 보고 강원국 작가님에게 더 반해버렸어요. 자화자찬하는 척하다 바로 자학 개그로 빠지며 엄살을 떠는 모습이 귀엽고도 재밌으셨고요. 소탈하고 따듯한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었어요. 그래서 강원국 작가님 강연마다 쫓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우리 동네 도서관에 오셨을 때도 갔고요. 2019년 5월 서울기록원에서 하신 강연에도 달려갔어요. 강 작가님 강연은 몇 번을 들어도 매번 새롭고 재밌더라고요. 궁금해졌어요. ‘어쩜 저분은 말씀도 저렇게 잘하시는 걸까?’ 글과 말과 삶이 일치하는 어른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강원국 작가님은 2020년 여름에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나는 말하듯이 쓴다>를 내셨어요. 당시 저는 <세바시> 제작진과 함께 <꼬꼬독-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독>이라는 책 소개 채널을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강원국 작가님을 모시고 북토크를 했어요. 마치 방탄소년단의 팬클럽 아미가 BTS 멤버와 마주 앉아 신곡 소개 인터뷰를 하는 기분이었어요. 그 모습을 현장에서 보신 위즈덤하우스 편집자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두 사람의 대화가 무척 재밌었는데, 두 사람 다 각자 말 잘 하는 노하우가 있을 것 같다. 혹 강원국 작가님과 함께 말하기에 대한 책을 써보면 어떻겠냐'.
순간 저는 제 짝사랑을 들킨 기분이었어요. 오랫동안 강원국 작가님을 흠모해 온 게 티가 많이 났구나! 그래요, 저는 그런 사람이에요. 좋아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사람. 강원국 작가님과 책을 함께 쓴다는 건, 강연이나 인터뷰보다 더 긴장되고 두려운 일이지만 덥석 하겠다고 했어요.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찾아오면 저는 항상 설렘을 응원합니다. 아, 내가 강원국 작가님과 책을 쓰는 날이 오다니! 완전 하늘을 날 것 같았어요.
그런데요, 인생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꼭 모든 게 다 잘 될 것 같은 순간에 최악의 위기가 닥쳐옵니다. 2020년 가을에 신문에 쓴 칼럼이 거대한 역풍을 불러오고요. 저는 MBC에 사표를 내고 모든 활동을 접습니다. 블로그며 유튜브며 강연이며 다 그만뒀어요.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마음을 안고 강원국 작가님을 찾아갔어요.
“제가 이번에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워낙 많은 욕을 먹고 있어 작가님과 함께 책을 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 때문에 작가님의 명성에 폐를 끼치게 될 것 같습니다. 정말 면목 없지만, 공저를 내는 건 없던 이야기로 하면 어떨까요?”
강 작가님이 껄껄 웃으셨어요. “김 피디님,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죠.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같이 책을 써요.” 말씀은 감사했지만, 저는 너무 두려웠어요. 2020년의 사태가 제게 알려준 건, 내가 잘못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같이 욕을 먹는다는 것이었거든요. 글을 실은 신문사나 내가 다니던 방송사나 저 때문에 욕을 먹은 것처럼요.
참혹한 심정으로 반성하며 지냈습니다. 혼자 책을 읽고 길을 걸으며 지냈어요. 그 기간에도 주인 없는 블로그에는 많은 분의 위로가 이어졌고요. 그 시절에 얻은 깨달음을 가지고 작년에 <외로움 수업>을 냈어요. 책을 소개하려고 유튜브 채널 <지식인사이드>에도 나갔는데요. 그때 올린 영상이 조회수 200만을 넘기고 과분한 칭찬과 격려를 받았어요. 문득 깨달았어요. ‘아, 글쓰기가 내게 시련을 줬다면, 새로운 기회는 말하기에서 얻었구나.’ 문득 3년 전 강원국 작가님과 말하기를 주제로 책을 함께 쓰자고 했던 약속이 떠올랐고요. 다시 용기를 내어 강원국 작가님을 찾았습니다. 2023년 한 해 동안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말을 잘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과 생각을 나누었고요. 소통을 더 잘 하는 방법에 대해 글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2024년 1월 31일,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강원국 X 김민식, 말하기의 태도>
저는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제 블로그는 다 사랑 고백이에요. 어떤 책을 읽었는데 너무 좋더라. 어디를 갔더니 풍광이 너무 예쁘더라. 어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설레더라. 항상 설렘이 두려움을 이기는 삶을 꿈꾸며 삽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
10년 전에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었고, 이제 <말하기의 태도>를 내놓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를 덕질하다 함께 책을 쓰는 성덕의 삶,
이런 꿈같은 일이 모두의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말하기의 태도> 전국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동네 서점에 없으면 주문해주세요. 따끈따끈한 신간이라 아직 서점 사장님께서 모르실 수 있으니까요. ^^)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16193
매년 한 권씩, 책을 낼 수 있는 건 <공짜로 즐기는 세상>의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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