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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인레 호수에서 사귄 친구

by 김민식pd 2024. 3. 20.

지난 2월, 미얀마에 갔다가 인레 호수가 있는 낭쉐에 갔어요. 호텔비가 1박에 12달러.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아침을 주는 곳이라 9일 동안 머물렀어요. 숙소에서 공짜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아침마다 다녔어요.

장이 열리는 날은 이렇게 인근 호숫가 마을에서 배타고 물건 탈러 오는 사람들 구경하기도 하고요.

물길을 따라 논둑을 따라 호수를 찾아 달리기도 했어요.

운하를 따라 가면 호수가 나오는데, 중간에 길이 자꾸 끊겨요. 육로로 인레 호수를 가는 건 쉽지 않아요. 아, 무엇보다 여기는 GPS랑 데이터 로밍이 안 되니까 무작정 페달을 밟아 길을 찾는 건 한계가 있어요.

대신 동네 민속 박물관을 찾아가고요.

마을 근처에 있는 동굴 탐험을 다니기도 했어요.

불심이 깊은 이곳 사람들은 천연동굴을 지하 사원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요즘 정세가 위험해서 미얀마를 찾아오는 여행자가 없으니 이곳 동굴 사원에도 사람이 없어요. 혼자서 캄캄한 동굴을 탐험하자니 은근 무섭더군요. 

길 가에 핀 해바라기를 보면 반가워서

셀카도 찍어보지만... 음... 혼자 계속 다니니 너무 심심하네요.

그러던 어느날 호텔에서 이스라엘에서 온 여행자를 만났어요. 동네 맛집을 알려달라고 해서 제가 좋아하는 샤브샤브 가게를 소개해주니 저녁에 같이 가자고 하네요. 그래픽 디자이너인데 이름이 우리 말로 쓰기가 좀 애매합니다. Tal. 탈? 딸? 쌀?

둘이서 저녁을 먹으며 길고긴 수다를 나눴어요. 제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평소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답니다. "한국 사람들이 이스라엘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하브루타 이야기를 했지요. "응, 한국 부모들은 유대인의 양육방법에 대해 관심이 많아. 똑똑한 사람들이잖아."  
탈은 유대인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컸어요. "노벨상 수상자 중에는 유대인이 정말 많아." 예전에 재미나게 읽은 탈무드 이야기를 했더니 무척 좋아하더군요. 책을 많이 읽으면 이래서 좋아요. 누구를 만나도 화제가 있으니까요. 

 
"내일 뭐해?" 하고 물어보니 혼자 배를 타고 인레 호수에 간다고요. 혼자 배를 빌리면 3만원이고요. 비용도 많이 들지만, 폐허가 된 유적지에 혼자서 가면 좀 쓸쓸하거든요. "프랑스 부부가 빌린 배에 내가 같이 가기로 했는데 너도 낄래? 그럼 1인당 만원도 안 드는데." 했더니 엄청 반가워 하더라고요.


"아, 그런데 우리 셋은 다 인데인에 다녀와서 내일은 인데인을 빼고 다른 호수 마을을 돌아볼 거야."
"괜찮아. 나는 인데인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 잘 됐다 넷이 가자. 내가 가서 그 부부에게 끼어도 되는지 물어볼게."

숙소에 돌아와 씻고 쉬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나요. 문을 여니 탈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어요.
"미키, 난 힘들 것 같아. 그 부부가 넷은 사람이 너무 많아 싫다네."

순간 아차... 싶었어요. 유럽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어요. 종교적인 이유로...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프랑스 사람들은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를 반대하는 이도 있을 거고요. 애고애고... 우짜냐...


프랑스 부부를 찾아갔어요. "미안한데, 나는 내일 탈이랑 보트 트립을 갈게. 혼자 가는 것보다는 동행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랬더니 선선히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돌아서 나오는데 좀 씁쓸했어요. 나랑 같이 가는 건 괜찮은데 이스라엘 사람은 안 된다? 에효...

다음 날 아침 탈에게 배삯으로 만5천원을 건넸어요. 보트 한 대 빌리는데 3만원(진짜 싼 거죠. 하루 종일 보트를 빌리고 운전사가 붙는데 겨우 3만원이니.)이니 둘이 타니까 반반. 그랬더니 탈이 "아니야, 넌 원래 만원만 낼 계획이었잖아. 나랑 같이 가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데 그냥 만원만 받을게." 하고는 5천원을 돌려줍니다. (미얀마돈 1만짯)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알았어. 대신 오늘 점심은 내가 사는 거다?" ^^

"그리고 우리 오늘 인데인에 가자."
"미키, 너는 며칠 전에 갔잖아."

"또 가고 싶어."

"나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안 그래도 돼. 다른 마을을 가보자."

"인데인이 정말 좋았거든. 네가 여기까지 왔는데 인데인을 안 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날 믿고 한번 가보자."

그래서 탈이랑 둘이 보트를 타고 인레 호수로 갔어요.

이렇게 발로 노를 저으며 고기를 잡는 어부가 보여요. 직접 보면 정말 신기해요. 어떻게 발로 노를 젓는 거지?

오래된 삶의 방식을 이어가는 곳, 미얀마.

둘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기로 했어요.

수공예품을 사며 즐거워하는 모습.

친구랑 다시 오니 인데인이 새롭게 보이더군요.

제가 찍어준 사진을 보며, "미키, 너는 사진 구도가 좋아!"라고 칭찬도 해주고.

(나 실은 직업이 드라마 피디라 평생 앵글만 고민하며 살았거든... ^^)

이렇게 화려한 사원에 그날도 여행자는 탈과 저, 두 사람 뿐이었어요. 빨리 미얀마의 여행 산업이 되살아나기를... 

탈이 찍어준 사진인데요.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친구가 "사적을 순찰중인 미얀마 현지 공무원 같다."라고 놀렸어요. ㅋㅋㅋㅋㅋ

인레 호수 보트 트립에는 수공예 전시장이나 궐련 담배 마는 곳 등 물건을 파는 곳 안내도 포함되어 있어요. 뭐, 현지인들의 생활이자 생계수단이니 그러려니 하면서 봅니다. 저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찍는 건 좀 자제하는 편이고요. 대신 이렇게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고양이를 보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유혹을 참을 수 없어요.

운하 곳곳을 배를 타고 누비다

이렇게 물위에 떠있는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었어요.

탈은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한답니다. 그래서 메일로 업무를 수주하고, 여행지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해서 다시 의뢰인에게 보낸다고요. 여행하며 일할 수 있어 자신의 직업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저도 그래요. 아침에 일어나면 메일 확인부터 합니다. 강연 의뢰를 메일로 주고 받아요. 귀국해서 다닐 강의 일정을 잡아두고 그렇게 다니다 지칠 때 쯤이면 다시 여행을 나와 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강의 다닐 땐 책을 읽고 글을 쓸 짬이 없는데요. 여행 와서는 조용히 책 읽고 글을 쓸 수 있거든요. 노마드 워커, 노동하는 방랑자로 사는 삶에 대해 둘이서 즐거운 수다를 나눴어요. 

탈은 인데인 유적지가 정말 좋았대요. 한 달전에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 갔는데, 그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 성스러운 곳인데 그런 느낌을 전혀 즐길 수가 없었다고. 대신 인데인은 사람이 없어 조용히 걸으며 사색하며 명상할 수 있어 좋았다고. 

"미키, 네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멋진 곳에 못 왔을 것 같아. 다음에 텔아비브로 와. 그럼 내가 우리 집에서 재워줄게." 

"진짜? 와, 고마운 제안이네! 오키, 언젠가 이스라엘 여행을 가는 걸로. 네가 혹 한국에 오면 내가 하루 시간을 비워 서울 시내 1일 투어 가이드를 해줄게."

"오, 그래? 알았어! 한국에 가면 어디를 보면 좋을까? 나는 대도시보다는 한국의 색깔이 살아있는 곳을 보고 싶어."

"주로 끝나는 3개의 도시가 있어. 경주, 전주, 제주. 셋 다 내가 사랑하는 여행지지."

그날 찍은 사진을 교환하기 위해 메일 주소를 주고 받았고요, 한국에서 가보면 좋을 곳을 적어 보냈어요.

탈이 보내준 사진.

배를 타고 가다 손을 흔드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반가워요.

배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사원 앞 행상에서 과자를 샀어요.

새들에게 나눠주려고요.

며칠전 배를 타고 나왔을 때, 새들이 배를 쫓아왔는데요, 우리나라 연안 여객선을 타면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먹으려고 쫓아다니잖아요. 그런 거죠. 2016년만 해도 인레 호수는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어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배를 타고 가며 새들에게 과자를 던져줬겠지요.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정세가 불안해지며 여행자의 숫자가 급감했습니다. 낭쉐 마을의 사람들은 알아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래서 숙박비를 12달러로 내리며 어떻게든 힘든 시절을 버티려고 합니다. 

새들은 어떨까요? 어느날부터 과자를 주는 사람들이 사라졌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겠지요. 

과자를 던지며 속으로 말을 걸었어요.

"코로나 시절에 너희들도 고생이 많았겠구나."

세상 고생 중 가장 큰 고생은 배곯는 고생이거든요. 

하루 세끼 챙겨먹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미얀마 여행기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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