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서비스 접속 불가로, 월요일에는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독서로 인생을 바꾸는 방법, 지난주에 올린 첫번째 글에 이어서 보셔도 좋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해 문과에 진학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국문과에 가서 작가가 되거나, 영문과에 가서 번역가가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글 쓰는 직업을 하면 굶어 죽기 딱 좋다며 무조건 의사가 되라고 하셨어요. 저는 영화에서 피가 튀고 상처가 나는 장면만 봐도 눈살이 절로 찌푸려집니다. 마음이 여리고 겁도 많은데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되겠어요. 아버지의 강요로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지만, 수학이 젬병이라 성적이 반에서 중간 정도였어요. 의대 갈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늘 매를 맞았습니다. 아들의 취향이나 적성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아들을 의사로 만들겠다는 아버지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하루는 어머니를 찾아가 하소연을 했어요.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게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왜 하필 저런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나를 낳았나요.’ 그러자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너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바꿀 수 없단다. 도서관에 가봐. 거기엔 훌륭한 사람들이 나오는 책도 많고, 훌륭한 사람들이 쓴 책도 많아. 책을 읽다 멋진 어른을 만나면, 그 사람을 네 정신적 아버지라고 여기고 살아라.’
나중에 생각하니, 어머니가 저를 도서관으로 보낸 건 신의 한 수였어요. 도서관에 가서 지내니 아버지도 뭐라 하지 않고, 아버지와 저 사이에 물리적 거리가 생긴 거죠. 무엇보다 도서관에 가니 소설책이 많아 힘든 현실을 잊고 재미난 허구의 세계로 숨을 수 있었어요. 저는 지금도 힘들 때는 도서관에 몸을 숨깁니다. 중세 시대에는 죄를 지어 도망중인 죄인도 성당에 들어가 생츄어리! 라고 외치면 피난처를 제공받을 수 있었는데요. 현대에서는 도서관이 그런 피난처라고 생각해요.
인생을 사는 데 가장 남는 장사는 무엇일까요? 에리히 프롬의 책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 깨달았어요. 무엇하나 더 소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요. 인생에서 가장 남는 장사는 공부인데요. 공부 중에서도 진짜로 남는 공부는 독학입니다. 들인 돈이 없는 자기 주도 학습입니다. 학습 효율은 높고 비용은 없어요. 가성비 최고지요.
개인적으로 테드 강연을 즐겨 봅니다. (www.ted.com) 세계 석학들의 명강을 만날 수 있는 곳인데요. 15분 정도 길이의 강연을 듣다 보면 해외 유학을 가지 않고도 안방에서 세계 석학들을 만나 세상을 보는 안목이 깊어지고 인생이 풍성해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공부가 그렇듯 수업 못지않게 복습 또한 중요합니다. 강의를 듣고 그냥 넘어가기보다 연사가 쓴 책을 통해 복습을 합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온라인 강의 영상을 보고, 베스트 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를 찾아 읽었어요. 책을 읽으며 하버드 강의를 다시 찾아 봤는데요. 하버드 대학 정치 철학 수업을 집에서 수강하는 느낌이었어요. 어느 날 테드 영상을 보다 랜디 포시 교수의 ‘어릴 적 꿈을 이루는 법’이라는 강의를 봤는데요. 재미도 있고, 감동적인 강의였어요. 그 강연 원고를 책으로 묶어 낸 <마지막 강의>라는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영상을 보는 건, 일방적인 전달입니다. 책을 읽는 건 저자와 독자가 나누는 쌍방향 대화에요. 영상에서는 쓰윽 지나가는 장면도 책을 읽을 때는 잠시 멈추고 혼자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봅니다.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그런 대화 속에서 책의 가르침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죽음을 앞둔 노교수와 제자가 나누는 대화를 담은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참 좋았어요. 어떤 책이 좋으면, 번역판으로 읽은 책을 영어 공부하는 기분으로 원서로 다시 읽습니다. 원문도 참 좋더군요. 이제 영문 오디오북을 찾아서 듣습니다. 모리 교수의 육성을 들으며, 직접 인생의 깨달음을 전해 받는 느낌입니다. 저는 이렇게 책 속에서 인생의 참 스승들을 만났습니다.
요즘도 저는 매년 200권 이상 책을 읽습니다. 하루는 중학생 딸에게 자랑삼아 그랬어요. “아빠, 책 진짜 많이 읽지?” 딸이 그러더군요. “왜 그런지 알아? 아빠는 친구가 없어서 그래.” 아, 정곡을 팍 찌르는 말입니다. 저는 나이 50대의 중년 남성이지만, 술 담배 커피를 하지 않고 골프도 안 치고 동창회도 안 나갑니다. 저녁 약속을 잡지 않고 책을 읽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요. 새벽에 일어나 또 책을 읽습니다. 결국 제 다독의 비결은 친구가 없기 때문인데요. 대학 시절에도 그랬어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학과 활동에 겉돌았어요. 과 친구는 없었지만 외롭진 않았어요. 도서관에서 만난 작가들이 있으니까요. 그 시절 저는 조정래 작가가 쓴 <태백산맥>이나 김용의 무협소설 <사조영웅전>에서 멋진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재미난 작가님들이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에 홀딱 반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았어요.
대학 다닐 때 저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은 후, 저자에게 홀딱 반했어요. 그런데 1990년 한국에서 스티븐 킹은 낯선 작가였고요. 그의 작품이 번역된 게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영어 독해 공부 삼아 그의 소설을 찾아 읽기 시작했어요. 용산 미군 부대 앞에 있는 헌책방에서 페이퍼백 한 권 2000원에 팔던 시절이었어요. 한 권 두 권 읽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에 중독되어 전작 읽기에 도전했어요.
아마 영문법이나 타임지 같은 잡지를 보며 독해를 공부했다면 영어 공부에 재미를 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스티븐 킹이라는 재미난 작가를 만난 덕에 영문 소설을 읽는 데 맛을 들였고요. 그 덕분에 영어 실력이 쑥쑥 늘었지요. 스티븐 킹은 다작으로도 유명한데요. 그의 책을 몽땅 읽느라 독해 실력이 엄청 늘었어요. 스티븐 킹이라는 부지런한 친구를 얻어 내 삶이 더욱 윤택해진 거죠.
스티븐 킹 못지않게 부지런한 작가로는 아이작 아시모프가 있어요. 평생 500권 이상의 책을 낸 걸로 유명한 분이죠. 그분의 책을 읽다, 이 재미난 작가의 책이 한국에는 왜 없을까? 제가 출판사에 찾아가 직접 아시모프의 책을 번역하는 걸 제안하고 책을 내기도 했어요.
도서관에서 만난 책들은 제게 정신적 아버지이자, 길을 보여주는 스승이자, 즐거움을 주는 친구였어요. 그럼 이 좋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다독의 비결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첫 번째,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골라야 합니다.
저는 추천도서 목록이니, 필독 도서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선택하는 데서 옵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서가에 꽂힌 책등을 손으로 주욱 훑으며 제목을 읽습니다. 그러다 보면 제목이 제게 말을 걸 때가 있어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한번 읽어 보지도 못했다, 어쩔래. 그런 책은 꺼내어 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표지를 살펴봅니다. 표지 디자인이 눈길을 끌어야 합니다. 출판사에서는 무수한 책을 내지만, 모든 책이 다 잘 팔릴 거라 예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좀 더 팔릴 것 같은 책에는 추가로 투자를 합니다. 그게 바로 표지 디자인이에요. 디자인에 공을 들인 책은 그만큼 출판사에서 자신 있게 만든 책이 분명합니다. 독자의 선택을 간절히 기다리는 책은 일단 표지로 눈길을 끌려고 노력합니다. 표지가 눈길을 끌지 않는다면, 그냥 다시 서가에 꽂아도 좋습니다. 내 눈을 사로잡는 표지라면, 이제 그 표지를 넘겨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습니다. 저자의 삶이 부러워야 해요. 이 책을 읽는다면, 나도 이 저자처럼 살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 들어야 해요. 제목, 표지, 저자 소개에 이어 서문과 목차까지 읽고 마음이 동하면 그 책을 선택합니다. 이렇게 내가 직접 선택한 책을 읽어야 독서가 즐겁습니다.
두 번째, 책은 쌓아놓고 읽어야 합니다.
책을 한 권만 읽는다면, 읽다가 재미가 없을 때, 주의가 딴 데로 쏠립니다. 휴대폰에 온 문자를 확인하다 문득 SNS를 들여다보고, 신상 소개에 마음을 뺏겨 쇼핑몰로 들어가게 됩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속에 재미난 게 너무 많아 한번 들면 내려놓기 쉽지 않습니다. 책 한 권만 읽는데, 흥미가 없어지면, 독서를 그만두기 쉽습니다. 저는 최소 다섯 권의 책을 쌓아놓고 읽습니다. 첫 번째 책이 재미가 없으면, 언제라도 덮고 다음 책으로 넘어갑니다. 그다음 책도 재미가 없으면, 다시 세 번째 책으로 가고요. 그러다 한 책에 꽂히는 순간이 옵니다. 그럴 때는 그 책을 끝까지 읽습니다. 다 읽은 다음에는 다시 다음 책으로 넘어가고요. 이렇게 끝없이 이어서 읽는 게 다독의 비결입니다.
세 번째, 책을 읽은 후, 기록을 남깁니다.
그냥 읽고 지나치면 남는 게 없습니다. 독서일기를 쓰면, 책의 중요한 내용이 내 것이 되어 남습니다. 독후감이라 하여 숙제처럼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읽은 책의 제목과 저자, 읽은 날짜만 기록해도 좋습니다. 여기에 책의 한 줄 평을 추가해보세요. 표지에 적힌 책 소개 글을 옮겨 적는 것도 손쉬운 한 줄 소개입니다. 그런 다음 책을 읽다 마음에 든 대목이 있다면 옮겨 적어 봅니다. 노트에 적어도 좋고 휴대폰 메모장에 남겨도 좋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것입니다. 제목, 저자, 소개, 마음에 드는 글귀. 이 과정이 익숙해지면, 다음 단계로 갑니다. 목표는 자신만의 총평을 쓰고, 마음에 드는 글귀를 쓴 다음 그 글이 마음을 움직인 이유를 적는 것입니다.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되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바빠서 책 한 권 읽을 짬이 없을 수도 있고요. 그런 분을 위해 저는 블로그에 독서일기를 남깁니다. 한 장으로 정리된 글을 통해, 책의 핵심을 전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을 울린 글귀를 공유할 수 있다면, 하는 진심을 담아 글을 씁니다. 그 과정에서 저의 독서는 더욱 단단해집니다.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고요. 여러 권의 책을 쌓아놓고 동시에 읽고, 그렇게 읽은 책은 세상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자기계발서로 인생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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