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쌀쌀해졌어요. 자전거 출퇴근은 당분간 쉬면서 다른 운동을 해야겠어요. 새로운 운동을 배우고 싶습니다. 평소에 건강을 자랑하던 어르신 한 분이 대추가 잘 익은 걸 보고 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져서 크게 다치셨어요. 다행히 수술을 받고 경과가 좋아 다시 재활을 통해 걷기 시작하셨어요. 나이 드니까 조금만 부딪혀도 크게 다치더군요. 다치면 주위에 민폐를 끼치게 됩니다. 식사부터 배변까지 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요. 자전거를 타는 건 좋은데, 나이 들어 다치는 건 겁이 나요. 자전거는 운전이랑 비슷해서,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행인이나 자동차는 피하기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나이 들어서도 계속 할 수 있는 운동으로 탁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70대 할머니가 계신데요. 평소엔 걷는 것도 불편한데 탁구채만 잡으면 날아다닙니다. 셰이크핸드로 슬슬 치는데도 당할 재간이 없어요. 취미로 즐기는 탁구는 스피드나 파워보다 스킬이 더 중요합니다. 나이 20에 열심히 배워둔 자전거로 중년의 삶이 즐거우니, 나이 50에 배운 탁구로 80에도 즐겁게 스포츠인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탁구의 재미는 핑! 퐁! 핑! 퐁! 공이 왔다 갔다 하는 랠리에 있어요. 그런데 저는 공을 잘 받지 못하거나, 치면 엉뚱한 데로 날아갑니다. 랠리가 이어지지 않아요. 잘 치는 사람끼리 치면 시합도 하고 재미난데, 저랑 치는 분은 사정을 봐주면서 쳐야 하니 게임하는 재미가 없지요. 그래서 처음엔 가서 상대가 없어 혼자 멀뚱멀뚱 빈 라켓만 휘두르고는 했어요. 

다행인 건 문화센터 탁구 수업의 운용방식입니다. 도착한 순서대로 보드판에 이름을 적어둡니다. 자신의 차례가 되면 가서 코치님에게 레슨을 받지요. 자세 교정이나 라켓 잡는 법부터 가르쳐주십니다. 레슨 받는 동안, 남은 사람들은 서로 짝을 맞춰 칩니다. 레슨 차례가 오면 빠져요. 그럼 상대가 없지요. 기다리던 저는 머리를 긁적이며 남은 분에게 가서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리지요. "혹시 저랑 잠깐 치실까요?" 하고요. 그렇게 저도 연습 상대를 만납니다. 상대 입장에서 초보랑 치는 건 재미는 없겠지요. 그래도 그 시간이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이나 저도 곧 레슨 받을 차례가 돌아오거든요. 레슨을 받는 동안, 그 분은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고, 그럼 저는 또 새로운 상대를 찾아갑니다. 계속 이렇게 돌고 돕니다. 그러니 민폐 끼치는 초보일지라도 계속 배울 수 있는 거죠.

처음 탁구를 칠 땐, 민폐 끼치는 걸 심하게 의식하다가 포기할뻔 했어요. 생각해보면, 인생은 민폐로 시작해, 민폐로 끝납니다. 아기로 태어나면 먹고 자는 것부터 모든 걸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니까요. 인생을 시작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듯 운동이나 취미를 시작할 때도 민폐 시절부터 거칩니다.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있는데요, 처음엔 찢어지는 소리가 나더군요. 이웃에 민폐가 너무 심해 포기했습니다. 관악기가 서툴러도 좀 들을 만 합니다. 바이올린은 서투르면 찢어지는 소리가 나는데요, 플룻은 서툴면 아예 소리가 안 나거든요. 민폐가 덜하지요. ^^ 물론 플룻도 들어줄만한 단계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이웃에 민폐를 끼치며 열심히 연습했지요. 지금 저의 플룻 연주는 민폐는 아니라고 감히 믿고요. ^^ 민폐를 견뎌야 합니다. 회화 학원에 가서도 대화의 맥을 끊으며, 원어민 강사를 답답하게 하는 민폐 시절을 지나야 고수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민폐만 끼치는 탁구 초보지만, 언젠가 나이 70에 고수가 되는 날을 그려봅니다. 초보 회원이 오면 웃으며 먼저 상대해주는 너그러운 노인이 되는 날까지, 부지런히 민폐를 끼치며 실력을 쌓고 싶습니다.


(남산 산책길에 만난 길냥이... 지나다니는 행인들 신경 쓰지 않고 낮잠을 잡니다. 저 분이 고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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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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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업사랑 2018.11.19 0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가 대단하세요. 알면서도 못 하고 있는 사람으로 부끄럽습니다. 저도 40 중반을 넘기면서 뭔가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있었는데, 오늘 이 글을 읽고 용기를 냅니다. 저에겐 중1짜리 탁구 파트너까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요즘 갈수록 대화의 주제가 줄어드는 중1인데, 탁구를 통해 다시 얘기를 나누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2. 섭섭이짱 2018.11.19 0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와우~~~ 탁구 배우시고 계시는군요.
    워낙 몸이 날렵하신대다가
    될때까지 노력하시니
    금방 고수가 되실거 같은데요.

    팀경기나 상대가 있는 운동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는거 같아요.

    저는 그래서 수영를 택했는데요.
    수강생 수준별로 레인을 나눠놔서
    같은 레벨 사람들끼리 배우거든요.
    그래서 덜 민폐를 끼치는거 같아요.

    영어 얘기는 완전 만프로 공감합니다.
    해외가서 정말 많은 민폐를 끼치며
    돌아다니고 있죠.. ㅋㅋㅋ

    피디님과 탁구 치는 그날을 위해
    탁구도 배워야겠어요.^^

    탁구왕 김민식을 응원합니다.
    파이팅~~~~~

  3. 헤니짱 2018.11.19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피디님~~ 홧팅입니다!! 늘 자극은 많이 받고 있으네 실천이 미비해서ㅠㅠ
    행복한 한주 보내세용^^

  4. 전진 2018.11.19 13: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지네요. 민폐 안 끼치려는 심리 저변에는 나도 민폐 받기 싫은 심리가 있는 듯 해요. 그래서 저는 요즘 고치려 노력 하고 있습니다. 민폐 잘 받아주기. 민폐 잘 끼치기.

  5. 꿈트리숲 2018.11.19 1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들면 자기 나이 속도 만큼의 빠르기로 시간이 흘러간다고 하잖아요. 사람이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기억해서 그렇게 느낀다고 하더라구요. 매일이 똑같으면 시간은 한것 없이 빨리 흘러가는 것 처럼 느끼죠.
    똑같은 시간 더디게 흘러가게 하는 비법은 피디님이 소개해주셨네요.^^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기.
    낯섬과 마주하고 새로운 추억을 자꾸
    쌓아가면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아요.

    운동신경 꽝도 탁구 배울만 할까요?

  6. 아리아리짱 2018.11.19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와! 50대 민폐탁구 초보가 70대 고수 선배되어 초보 상대해주기 목표!
    무한긍정, 무한도전 피디님을 거울로 흉내내며 열심히 동참하렵니다.^^

  7. 제니스라이프 2019.12.09 0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40 되기 직전에 발레를 시작해서
    이제 겨우 민폐 신세를 모면했네요.

    결과는??
    발레없이 못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