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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대기발령과 바꾼 자전거 여행

by 김민식pd 2017. 11. 23.

지난 몇 달, 개인적으로 위기를 겪었습니다. 대기발령에 징계에,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는데요, 저는 힘든 순간이 오면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지난 6월 14일 아침이 그랬어요. 전날 저녁 6시가 넘어 갑자기 대기발령이 났어요. 인사부에서 전화가 와서, '내일부터 당분간 회사 나오지 마시라'고 하더군요. 자택 대기 발령이래요. 6월 14일 아침, 늘 그렇듯이 새벽 5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평소대로라면 5시 50분에 집을 나서서 오전 7시 송출실 교대를 합니다. 그런데 막상 회사에 가지 않는다니 멍해집니다. 이럴 때, 아무런 할일없이 하루를 보내면 위험합니다. 사람은 몸이 편하면, 생각이 복잡해지거든요. '아, 그냥 참을 걸 그랬나?' '아, 그때 부장이 왔을 때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 했나?' 

저는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후회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합니다. 오늘 하루 갑자기 시간이 생겼는데, 뭘 하면 좋을까? 답은 책 속에 있어요. 


<죽기 전에 꼭 달려봐야할 아름다운 자전거 길 50>

이런 날 달려야지, 언제 달립니까? 

6월 14일, 한창 봄이니 봄날에 달리기 좋은 코스를 찾아봅니다.

'꽃비 내리는 봄철 라이딩 코스 베스트 5'에 탄금호 순환코스가 있네요. 

서울서 충주까지 버스로 2시간, 코스 주행하는데 3시간, 돌아오는 버스 2시간. 총 7시간.

회사 하루 근무 땡땡이치고 가기에 딱 좋은 코스로군요. 바로 자전거를 끌고 나갑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가서 충주행 표를 끊고, 접이식 자전거를 버스 짐칸에 실어요. 충주에 내려서 네이버 지도를 보고 탄금호를 찾아갑니다. 책을 보니, 충주세계무술공원에서 자전거 길로 진입할 수 있군요. 휴대폰 GPS와 인터넷 지도 덕에 길찾기는 어렵지 않아요. 


탄금호 순환 코스, 자전거 전용 도로인데, 주말이라면 라이더들로 북적이겠지만, 평일인지라 사람이 없습니다. 혼자 호젓하게 자전거로 호수 주변을 돕니다.

코스도 좋고, 자전거 표시판도 잘 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한바퀴 돕니다. 

퇴직하면 전국의 자전거 길을 찾아다니며 유랑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퇴직 후 누리고 싶은 일상, 대기발령 중에 누려봅니다. 은퇴 예행 연습으로 딱이네요. 

호숫가 정자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 쉬어 갑니다. 가져온 책 한 권 펼쳐놓고 읽습니다. 

호숫가에서 상큼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아, 신선 놀음이 따로 없구나... 싶은데 전화 벨이 울립니다. 아는 기자님이 전화를 하셨네요.

"피디님, 대기 발령 기사 봤어요. 괜찮으시죠?"

껄껄 웃으면서, "아, 그럼요, 저는 잘 지냅니다." 하고 답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납니다. "피디님, 힘내셔야 합니다. 응원합니다!" 웃으면서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얘기합니다. 그래도 걱정되는 눈치에요. 나는 진짜 괜찮은데... ^^

집에 앉아 자숙 모드로 지내다 전화를 받았다면 기가 죽어 목소리에 힘이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자전거로 탄금호를 돌면서, 호연지기를 충전한 참이었거든요. '캬아, 코스 죽이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자전거 길이 이렇게 많은데, 뭐가 걱정이야. 까짓거 지들이 기껏해야 해고 밖에 더 하겠어? 그럼 이렇게 자전거로 유랑이나 다니지, 뭐.' 


탄금호 자전거 길은 국토 종주 코스와도 만납니다. 언젠가 4대강 자전거 길을 따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리는 게 꿈인데요, 만약 해고가 되면, 그 꿈은 더 빨리 이뤄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전거 길 표시판만 봐도 마구 설렙니다. 달려요, 달려!



탄금호 자전거 여행

충주 종합버스 터미널 - 충주세계무술공원 - 탄금교 - 중앙탑공원 - 조정경기장 - 조정지댐 - 목행교 북단 - 충주자연생태체험관 - 충주댐 - 충주세계무술공원 - 충주 종합버스 터미널


탄금호 순환 자전거 여행, 중간에 점심 먹고 쉬었다가 가면 3~4시간 정도 걸립니다. 당일치기 자전거 여행 코스로 딱이네요.

 

저들이 내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을 고민하면 힘들고 지쳐요.

저들이 내게 준 것을, 선물로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단 즐기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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