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개인적으로 위기를 겪었습니다. 대기발령에 징계에,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는데요, 저는 힘든 순간이 오면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지난 6월 14일 아침이 그랬어요. 전날 저녁 6시가 넘어 갑자기 대기발령이 났어요. 인사부에서 전화가 와서, '내일부터 당분간 회사 나오지 마시라'고 하더군요. 자택 대기 발령이래요. 6월 14일 아침, 늘 그렇듯이 새벽 5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평소대로라면 5시 50분에 집을 나서서 오전 7시 송출실 교대를 합니다. 그런데 막상 회사에 가지 않는다니 멍해집니다. 이럴 때, 아무런 할일없이 하루를 보내면 위험합니다. 사람은 몸이 편하면, 생각이 복잡해지거든요. '아, 그냥 참을 걸 그랬나?' '아, 그때 부장이 왔을 때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 했나?' 

저는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후회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합니다. 오늘 하루 갑자기 시간이 생겼는데, 뭘 하면 좋을까? 답은 책 속에 있어요. 


<죽기 전에 꼭 달려봐야할 아름다운 자전거 길 50>

이런 날 달려야지, 언제 달립니까? 

6월 14일, 한창 봄이니 봄날에 달리기 좋은 코스를 찾아봅니다.

'꽃비 내리는 봄철 라이딩 코스 베스트 5'에 탄금호 순환코스가 있네요. 

서울서 충주까지 버스로 2시간, 코스 주행하는데 3시간, 돌아오는 버스 2시간. 총 7시간.

회사 하루 근무 땡땡이치고 가기에 딱 좋은 코스로군요. 바로 자전거를 끌고 나갑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가서 충주행 표를 끊고, 접이식 자전거를 버스 짐칸에 실어요. 충주에 내려서 네이버 지도를 보고 탄금호를 찾아갑니다. 책을 보니, 충주세계무술공원에서 자전거 길로 진입할 수 있군요. 휴대폰 GPS와 인터넷 지도 덕에 길찾기는 어렵지 않아요. 


탄금호 순환 코스, 자전거 전용 도로인데, 주말이라면 라이더들로 북적이겠지만, 평일인지라 사람이 없습니다. 혼자 호젓하게 자전거로 호수 주변을 돕니다.

코스도 좋고, 자전거 표시판도 잘 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한바퀴 돕니다. 

퇴직하면 전국의 자전거 길을 찾아다니며 유랑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퇴직 후 누리고 싶은 일상, 대기발령 중에 누려봅니다. 은퇴 예행 연습으로 딱이네요. 

호숫가 정자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 쉬어 갑니다. 가져온 책 한 권 펼쳐놓고 읽습니다. 

호숫가에서 상큼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아, 신선 놀음이 따로 없구나... 싶은데 전화 벨이 울립니다. 아는 기자님이 전화를 하셨네요.

"피디님, 대기 발령 기사 봤어요. 괜찮으시죠?"

껄껄 웃으면서, "아, 그럼요, 저는 잘 지냅니다." 하고 답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납니다. "피디님, 힘내셔야 합니다. 응원합니다!" 웃으면서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얘기합니다. 그래도 걱정되는 눈치에요. 나는 진짜 괜찮은데... ^^

집에 앉아 자숙 모드로 지내다 전화를 받았다면 기가 죽어 목소리에 힘이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자전거로 탄금호를 돌면서, 호연지기를 충전한 참이었거든요. '캬아, 코스 죽이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자전거 길이 이렇게 많은데, 뭐가 걱정이야. 까짓거 지들이 기껏해야 해고 밖에 더 하겠어? 그럼 이렇게 자전거로 유랑이나 다니지, 뭐.' 


탄금호 자전거 길은 국토 종주 코스와도 만납니다. 언젠가 4대강 자전거 길을 따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리는 게 꿈인데요, 만약 해고가 되면, 그 꿈은 더 빨리 이뤄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전거 길 표시판만 봐도 마구 설렙니다. 달려요, 달려!



탄금호 자전거 여행

충주 종합버스 터미널 - 충주세계무술공원 - 탄금교 - 중앙탑공원 - 조정경기장 - 조정지댐 - 목행교 북단 - 충주자연생태체험관 - 충주댐 - 충주세계무술공원 - 충주 종합버스 터미널


탄금호 순환 자전거 여행, 중간에 점심 먹고 쉬었다가 가면 3~4시간 정도 걸립니다. 당일치기 자전거 여행 코스로 딱이네요.

 

저들이 내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을 고민하면 힘들고 지쳐요.

저들이 내게 준 것을, 선물로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단 즐기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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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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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리아리 2017.11.23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위기를 기회로' 아주 흔히 들어온 말이지만
    실감,공감이 쉽게 되지 않았어요.
    대기발령, 해고와 직면한 상황에서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하시는 pd님은 진정
    "긍정의 대마왕"이 십니다.^^
    아무리 어렵고 힝든 상황에 놓여도 스스로 늘
    챙기고, 끄집어 올려서 즐겁게 해주는 것이 우리자신에게 해줄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많이드는 요즘입니다. 내가 즐기고, 행복해야 내주변도
    함께 행복해지는걸 살아가면서 더 많이 느낍니다. 오늘도 함께 감사하고 즐거운 날 되시길 바랍니다.

    P.S. 오늘은 영어 완전 암송 day75 기념으로
    스터디 친구랑 점심식사 합니당 ^^

  2. 섭섭이 2017.11.23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요즘 자전거 여행에 관심 있어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었는데, 필요한 내용이네요.. 근데 이렇게 빨리 추위가 와버려서 흐흐흑^^;;; 어쩔 수 없이 자전거 여행은 내년에 시작하는걸로. ^^ 알려주신 코스는 저장해둡니다.

  3. 횬주 2017.11.23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허핑턴포스트에 올리신 영어공부에 관한 글 보고서 블로그까지 오게 되어
    가끔씩 기웃거리고 있는데요.
    여행 자전거 영어에 관심있어 글 잘 보고 있습니다.^^
    티비나 뉴스에서 피디님 얼굴도 뵈었고요
    힘든 시간 잘 버텨 주신 덕택에 여기까지 온 거라 생각합니다. 도움 주지 않았는데 좋은 결과 같이 누리게 되었네요.ㅎ
    자전거여행에 관한 책 재미있게 읽은 게 있는데요 보내드리고 싶어요. 답변 주셔요~^^

  4. 양돌이쌤 2017.11.23 1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전거타기좋은 세종에도 오세요.공범자들 보러갔다가 잠시 인사드렸었는데 인상좋으시더라구요.

  5. 야무 2017.11.23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멋진 코스네요. 날 풀리면 저도 함 달려봐야겠어요^^
    이제 방송 준비하시느라 바쁘시죠? 날 추운데 건강 유의하십쇼!

  6. 2017.11.23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얼마전 공범자 영화 통해서 처음 알게됐고 포차
    세바시 강연 김프로쇼 들으면서 관심있어 하던중 저와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네요 87학번 H대
    지금도 영어 열공중이고 작년 이맘때 년차내서탄금대서 시작 자전거 종주 했던 자전거 매니아그리고 지금은 회사에서 버림받아 괴로워하면서 이용마 기자님 신간과 김PD님 대기발령 스토리 읽고 용기잃지 않으려 진짜 애쓰고 있는 3자녀의 아빠입니다.
    진실과 정의 중년의 희망을 위해 힘쓰시는 모습
    진정으로 응원합니다~~^^

  7. 야키다 2017.11.25 0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자전거 라이딩을 정말 좋아합니다.
    라이딩하는 동안은 잡념이 없어지고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곧 좋은 소식 들려주시길 바랄께요~!!

  8. 문성현 2017.11.28 1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의 인생철학 저도 배우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귀감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민식pd 2017.11.29 0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끄럽습니다. 공부하면서 일하는 부지런한 직장인 저자들의 삶에서 저 역시 많이 배웁니다. 꾸준함의 힘을 이기는 건 없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