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읽었어요. 하라리는 많은 책을 읽어 과학과 철학, 역사를 섭렵한 후, 그걸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드는데 있어 탁월한 재능을 보여줍니다. 진화심리학이 발견한 행복의 비밀을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의 생화학적 기제는 수없이 많은 세대를 거쳐 오면서 생존과 번식의 기회를 늘리기 위해 적응했을 뿐, 행복을 위해 적응하지 않았다. 우리의 생화학적 기제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유쾌한 감각으로 보상한다. 하지만 이러한 감각은 얄팍한 상술일 뿐이다. 우리는 배가 고픈 불쾌한 느낌을 피하고 기분 좋아지는 맛과 황홀한 오르가슴을 즐기기 위해 음식과 연인을 필사적으로 찾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맛과 황홀한 오르가슴은 얼마 못 가고, 그런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더 많은 음식과 연인을 찾아나서야 한다.
어떤 희귀한 돌연변이에 의해, 땅콩 한 알을 먹으면 행복한 감각이 영원히 지속되는 다람쥐가 탄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술적으로 다람쥐의 뇌 회로가 바뀌면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누가 아는가? 수백만 년 전 어떤 운 좋은 다람쥐에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을지. 하지만 그랬더라도 그 다람쥐는 지극히 행복할 뿐 아니라 지극히 짧은 생을 살았을 것이고, 그 희귀한 돌연변이는 그냥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행복에 도취해 배우자는 고사하고 땅콩도 더 이상 찾아 나서지 않았을 테니까. 땅콩 한 알을 먹고 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픈 다른 다람쥐들이 오래 살아남아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정확히 같은 이유로, 우리 인간들이 그러모으는 땅콩 (돈 많이 버는 직업, 큰 집, 잘생긴 배우자)도 우리를 오래 만족시키지 못한다.
(<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 / 김명주 / 김영사) 61쪽)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엄청나게 큰 도토리 한 알을 따기 위해 종일 쫄쫄 굶으며 나무 꼭대기까지 오르는 다람쥐보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도토리를 주어먹으며 매순간을 즐기는 다람쥐가 더 행복한 거지요. 더 큰 자극, 더 큰 보상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보다, 매 순간 현재를 즐기려고 합니다.
더 비싼 차, 더 비싼 장난감, 더 비싼 놀이의 즐거움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저는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주목합니다. 돈 들지 않는 취미는 빈도가 잦아도 부담이 없거든요.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읽는 행복이 그래서 제게는 가장 소중합니다. 세상에는 재미난 책이 정말 많거든요.
꼭 해외여행을 가야만 행복하다고 믿는다면, 가을 하늘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살 수 있어요. 해외여행은 어쩌다 한번이지만 서울의 하늘은 매일 볼 수 있어요. TV에 나오는 아이돌 그룹의 미소녀만 쳐다보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의 매력을 놓칠 수 있어요. 일상의 행복을 좋아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지만, 저는 틈날 때마다 서울둘레길을 걷습니다. 언젠가 프랑스 프로방스 자전거 여행을 가고 싶지만, 매일 출퇴근길에 만나는 한강 자전거 도로의 풍광도 감사합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오늘도 되새겨봅니다.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했던 강연을 다시 올립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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