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도권 교육을 믿지 않습니다. 아마도 부부 교사였던 부모님 탓 같아요. 중고교 교사였던 두 분은 저의 적성이나 소질과 관계없이 오로지 의사, 엔지니어의 삶을 강권하셨거든요. 두 분이 아들에게 해준 진로 상담을 보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는 어떨 지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어요. 저는 나이 스물에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공대를 다니며 완전 우울했거든요.
"공업수학을 푸는 저는 행복하지 않아요, 아버지!"
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일은 재미로 하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거야. 남의 돈을 먹으면서 행복하기를 바라면 안 된다."
좌절했어요. 인생에서 우리는, 일하면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데, 그 일이 즐거우면 안 된다니...
대학에서 하는 공부도 즐겁지 않았어요.
"우리 학과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좀 시대에 뒤처진 거 아닌가요?"
과조교이던 선배가 그랬어요.
"어쩔 수 없단다. 전공 필수를 가르치는 교수님들은 이미 1960~70년대에 대학에서 자리를 잡은 분들이니까."
새로운 학문을 가르치는 해외 유학파 젊은 교수님들은 다 시간강사였어요. 낡은 학문이 전공 필수이고, 새로운 학문은 전공 선택... 그때 깨달았어요. '교수님은 내가 알고 싶은 것을 가르쳐주는 분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구나.' 대학 전공 공부가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요. 그 덕에 책에 빠졌지요. 직접 답을 찾는 수 밖에 없었으니까.
작년에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면서 나이 50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어요. 저의 진로가 아니라, 아이들의 진로요. 지금의 제도권 교육이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을 잘 준비시킬 수 있을까? 창의성이 필요한 시대에, 정답만을 강요하는 학교 교육. 협업이 중요한 시대에, 경쟁만을 배우는 아이들. 휴대폰에 자판을 몇번 두드리면 세상 모든 지식을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암기용 지식을 머리에 욱여 넣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비슷한 고민을 하던 선생님 한 분을 만났어요. 도서평론가 이권우 선생님. 그 분의 권유로 <21세기 청소년 인문학>이라는 책에 공동 저자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일자리를 빼앗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까지 보아 온 것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를 열어젖힐 게 확실합니다. 이미 오랫동안 사회적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사(士)자(字) 집단, 그러니까 변호사, 의사 등이 몰락하고 가(家)자(字)집단 그러니까 작가, 예술가 같은 직업이 흥하리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통적인 공부와 교양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신발 끈을 매고 다른 각오로 공부하고 교양을 쌓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겁니다.'
<21세기 청소년 인문학> (도서출판 단비) 머리말 중에서
스물 아홉명의 어른들이 모여,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두 권의 책에 나눠썼습니다. 저는 책을 받자마자 고등학생인 큰 딸 민지에게 선물했어요. 민지를 생각하며 글을 썼거든요. 아빠로서 제가 하는 이야기는 다 잔소리이지요. 저자로서, 독자인 민지를 책을 통해 만나고 싶었어요.
부모님과 학교를 너무 믿지 말아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나만 알아요. 답은 이미 내 속에 있습니다. 든든한 길동무를 원한다면, 책을 펼쳐보아요. 책만큼 좋은 친구도 없으니까요. 책은 평생 가는, 최고의 친구입니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은, 책읽는 습관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본인이 알아서 하기를 바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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