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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다

by 김민식pd 2017. 1. 23.

매일 새벽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장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며칠전, 새벽에 깼는데 시계를 보니 2시가 조금 넘었더군요. 다시 잠을 청하려고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잠이 안 왔어요. 신문에서 본 어떤 기사가 자꾸 떠올랐어요. 반기문 캠프에 합류한 이동관씨의 인터뷰였습니다.

MB 정부 시절 홍보 수석으로 일한 그에게, 언론인 해직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자, 그는 “제가 언론 장악을 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고 그 분들은 노조 활동하면서 굉장히 회사 내에서도 여러 가지 충돌과 무리가 많았던 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전 수석은 또 “제가 지금 블랙리스트 나오듯이 누구 해직시키라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회사 안에서 일어난 일까지 저보고 책임지라고 하면 어떡하냐”며 “해직된 분들이 해직된 사유를 갖고 일했기 때문에 해직되지 않았을까요”라고 말하더군요.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1181639001&code=940705#csidx5222678d3b526289421ea7c1dceef4e

그의 말이 머릿속을 맴도는 바람에 결국 새벽 3시에 이불을 박차고 나와 키보드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가 써놓은 글을 보았습니다. 부끄럽더군요. 지난 몇년 간 아침에 108배를 하고, 불경을 낭송하고, 산을 오르고, 나름 수행을 했다고 생각했거늘... 아직도 마음의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어요. 부끄러운 마음에 글을 차마 블로그에 올릴 수 없었어요.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만 있을까요? 왜 그의 몫은 없을까요?) 분노에 찬 글을 지우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글을 썼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힘없는 패배자의 좌절만 나오더군요. 글을 보자 눈물이 나왔습니다. 해고된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꺼이꺼이 울음이 터져나왔어요. '아, 이것도 아닌데...' 새벽에 몇 번을 쓰다 지우다 끝에 마음이 산란하여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어요. 그때 문득, 며칠 전에 본 어떤 분의 페이스 북 글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쓸 수 없었던 어떤 글, 다른 분의 글로 대신합니다.

 

'자려다가 결국 페북에 와 버렸어요. 페북을 보지 말고 잤어야 하는데. 어떤 작가님의 라라랜드 감상평을 보고 감탄을 하고 나니, 더 늦기 전에 제가 본 한 영화의 감상평을 쓰고 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라라랜드는 아니에요.)

뉴스타파 후원 회원들에게는 종종 큰 혜택이 찾아오곤 합니다. (비록 선착순이라 발 빠르게 신청해야 하지만요.) 이번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시사회도 그 중 하나였지요. 시사회 메일 받기 전까지 전 이런 다큐 영화가 제작되었는지도 잘 몰랐어요. 그만큼 세상의 주목을 못 받은 영화죠. (그렇잖아요. 대통령이 연루된 대형 게이트가 터져서 연일 빅 뉴스가 뻥뻥 터지는데 누가 해직 언론인에 관심을 갖겠어요.) 게다가 이런 류의 사회 고발(?) 영화들이 대개 그러하듯 상영관 잡기도 쉽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고 못 만든 영화는 아니에요. 특히 전 이 영화를 보고는 공정보도를 위해 노력한 언론인들이 얼마나 힘겹게 싸웠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죠.

YTN과 MBC. 현재 대표적으로 관영매체로 전락한 두 방송사죠. 영화에서는 두 방송사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부에서 어떤 싸움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크고 작은 기나긴 파업들, 수많은 언론인에 대한 징계와 해직 통보, 그들을 구하기 위한 선후배 동료들의 저항 (브이포 밴데타가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직장을 잃은 언론인들의 좌절, 낙담, 처참히 망가져만 가는 언론들.

저는요. 영화를 보기 전에는 참된 언론인들은 어떤 특별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두려움 없이 투사가 되어 싸우고 그 한몸 불사르고 정의를 위해 뚜벅뚜벅 내딛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참 죄송스럽고 순진하게도요. 그런데 아니더라구요. 똑같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좌절하고 낙담하구요. 해직 언론인, 말만 거창하지 이들이 느꼈던 감정은 실업자가 느끼는 그것과 다르지 않았더라구요. 너무 생생해서 중간중간 아프고 속상하고 울음도 나고 하더라구요. 그들도 평범한, 그저 조금 더 순수한 사람들이더라구요.

저는요. 요 근래 들어서 더욱 이 정권보다는 지난 이명박 정권이 낫다 생각했거든요? 근데 제가 잘못 생각했던 거였어요. 이 정권을 이렇게 감시자 하나 없게 토대를 닦은 사람이 이명박이더라구요. 정부 입맛에 맞는 방송은 살리고 비판하면 본때를 보여주어 언론인들이 찍소리하지 못하게 한 게 그 사람이 대통령이던 시절 일이더라구요. 그래서 고름이 계속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이렇게 터지게 된 거더라구요. 제대로 된 언론인들이 없던 7년 (이제 햇수로 8년) 사이 세월호 사건도 터진 거구요. (사건 당시 방송사들의 오보가 혼란을 가중시켰죠) 시사회 전 (배우도 아닌데 졸지에) 출연진인 해직 언론인들의 인사가 있었는데요. "이명박이 주적이다." 라고 말씀하신 노종면 기자님 말씀이 영화를 보고 나니 와닿더라구요.

영화를 보지 않았음 모른채 잊어버렸을 이야기들을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이 영화는 투쟁의 기록이라는 측면으로도 가치가 있고 이 싸움이 아직 진행형임을 상기시킨다는 의미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JTBC 빼고는 다 기레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더욱 보시기를 강추합니다. JTBC를 제외한 나머지 언론들도 어서 제자리를 찾아와야 합니다. 그 이유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7년_그들이없는언론 #절찬상영중'

(글을 공유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이지현님께 감사드립니다.)

 

10년 전 이명박 대선 언론 특보로 활동하던 이동관이 돌아왔어요. 해고자가 그자의 말대로 과연 해고될 사유가 있었던 사람들인지, 영화를 통해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7년-그들이 없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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