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악사처럼...'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고교 진로 특강에 가면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대입 실패입니다."

문과를 가고싶었던 저는, 이과 중에서 문과에 가까운 산업공학과, 일명 공업 경영학과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내신이 낮아 (15등급 중 7등급) 1지망 낙방했어요. 그래서 자원공학과 (구 광산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 내내 고민했어요. '난 무엇을 하고 살아야할까?'

만약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면, 전공 공부 열심히 하고 공장에서 관리직을 하며 살았을 겁니다. 대입에 실패했기에 자신의 적성을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우리는 실패를 겪고 좌절을 맛 볼 때 다른 길을 고민합니다. 어쩌면 실패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일지도 몰라요. 

유럽에서 거리의 악사를 만나고, 그들의 삶이 부러웠어요.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좋으니 재미있고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어릴 적부터 저는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좋아하고.

스토리텔러로 살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감히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를 꿈꾼 건 아니고요. 그냥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지요. 첫 직장에서는 세일즈를 했습니다. 치과 영업을 뛰면서 나 자신을 스토리텔러라고 상상했어요. 제품의 특성을 그냥 설명만 하면 재미가 없어요. 개발 상황이나 탄생 비화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른 치과 선생님의 사용 후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각색해서 들려드려요.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를 만들어도 영업사원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어주는 의사 선생님은 별로 없더군요. 그래서 통역사로 직업을 바꿨습니다. 이야기를 만들 재능은 없어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옮기는 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외대 통역대학원 수업에서 통역 발표를 하면 이런 평가를 받았습니다. "민식씨가 한 통역이 연설 원문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이건 사실 칭찬이 아니에요. 연사의 본래 의도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뜻이거든요. 연사의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나도 모르게 윤문을 하고 각색을 했어요. '이렇게 하면 이야기가 더 재미날텐데?'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그래서 통역사를 그만두고 PD가 되었습니다. PD 면접에서 묻더군요.

"김민식씨는 공대를 나와서 영업사원으로 일했는데, 전혀 관련없는 피디라는 직종을 선택한 이유가 뭡니까?"

"저는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합니다. 한 사람을 만나면 한 사람을 웃기고, 열 사람이 모이면 열 사람을 웃깁니다. 제게 기회를 주시면 4천만 시청자를 한번 웃겨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김민식씨 안 뽑을 건데?"

"그럼 그냥 지금처럼 가족이나 친구들을 웃겨주며 살겠습니다."

예능 PD로 입사해 10년을 일했습니다. 시트콤을 만드는 순간 순간이 다 즐거웠어요. 월급날마다 그랬어요. '나는 취미 생활을 즐길 뿐인데, 돈도 주네?' 어느 순간, 관찰 예능이 뜨더군요. 버라이어티 쇼보다 스토리텔링의 색깔이 강한 드라마타이즈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예능에서 시트콤의 영역은 점점 줄었어요. 결국 나이 마흔에 드라마 PD로 전직했습니다.

드라마국으로 옮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10년 전 MBC 드라마는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조직이었어요. 그만큼 기존 구성원의 자부심이 강했지요. 예능 출신 딴따라를 별로 반기지 않더군요. 어느 드라마 선배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니?"  

같이 일하는 후배에게는 이런 말도 들었어요.

"선배가 드라마를 알아요?"

 

드라마 연출이 만만하다고 느낀 적도 없고, 드라마를 감히 안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다만 어떤 선택을 할 때, 나의 기준은 하나입니다. '재미있을까?' 답이 Yes라면 그냥 한번 해봅니다. Why not? 짧은 인생,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기에도 빠듯한데 굳이 남 눈치까지 살필 이유는 없잖아요? 그게 유럽에서 만난 가인들에게 배운 삶의 자세이자 딴따라의 자세입니다.

 

진로 특강에 가서 했던 얘기로 마무리할게요.

"여러분, 직업은 꿈이 아니에요.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피디가 되는 건 꿈이 아니에요. 그 직업을 통해 무엇을 하느냐가 진짜 꿈이에요.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변호사가 되어 정의를 실천하고, 피디가 되어 재미난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게 진짜 꿈이에요. 의사가 아니라도 아픈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길은 있어요. 변호사만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건 아니에요. 피디가 아니라도 이야기를 만들고 나눌 수 있어요. 블로그도 있고 팟캐스트도 있고 유튜브도 있어요. 개인이 미디어를 만들기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방송사 PD라는 직업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록 연출은 못하고 있지만, 블로그를 통해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건, 매일 거리 공연을 나가는 거예요. 책을 내는 건, 베스트 앨범을 내는 것이고요. 이제 여러분을 모시고 라이브 공연도 하고 싶네요. ^^

 

1월 21일 토요일 오후 1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베스트앨범 발매 기념 단독 라이브 콘서트~^^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홀(경복궁역 2번출구)에서 열립니다.

(네이버나 다음 지도에서 '참여연대'를 검색하세요.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9길 16)

신청해주신 분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70명 인원이 다 차서 선착순 접수 마감했어요.

신청하신 분들은 1월 21일 토요일, 광화문 참여연대에서 뵐게요!

 

1월 21일에 만나요!

 

(다음 이야기, '진짜 딴따라 김태호PD' 편에서 이어집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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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난난이 2017.01.08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참석하고 싶습니다, 가능한가요?

  3. nemo 2017.01.08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글... 왠지 감동적입니다.

  4. 오현주 2017.01.08 1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2명 참석 신청합니다.

  5. 그린그린 2017.01.08 1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명 신청합니다.
    좋은 강연 계획, 감사드립니다.

  6. 비터팬 2017.01.08 1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저도 참석하고 싶어요! 1명 신청합니다.

  7. 2017.01.08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푸랄랄라 2017.01.08 1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석하고 싶어요~~ 2명 신청합니다~

  9. 서지바 2017.01.08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명 참석 신청합니다!

  10. Keschk 2017.01.08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명 신청합니다.

  11. 이여사 2017.01.08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2명신청합니다!!

  12. 이선미 2017.01.09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마감되었군요. ㅎㅎㅎ
    그래도 포기하면 안돼겠죠?
    혹시라도 저같은 사람 때문에 자리를 더 만드는 사태가 벌어진다던가
    약속하고 못오시는 분이 계시다면 제게도 기회가 생기겠죠?
    저도 신청합니다.

    이벤트로 보내주신 책에 저자 사인 받고 싶습니다!!!

  13. 게리 2017.01.09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발 늦었군요 ㅠㅠ
    시할머니상을 당해서 오늘 복귀했는데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네요

    베스트앨범 발매 기념 단독 라이브 콘서트 멋지게 하시길 응원합니다

  14. 루나 2017.01.12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안녕하세요! 우연히 이 블로그를 알고 블로그 글들을 감명깊게 읽었었는데 요새 바빠서 자주 못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어제 서점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이 책이 맨 위쪽 광고에 뜨더라구요. 그래서 이 블로그 내용이 생각나 눌렀는데 pd님이 쓰신 책이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주문해서 지금 읽고 있는 중이에요. 토요일에 직접 뵙고 싶은데 모임 자리가 다 찼다면 예비명단에 올려주실 수 있을까요?

  15. 비터팬 2017.01.12 2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저 강연 신청했는데 친구도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요... 같이가도될까욥!?

  16. 2017.01.12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7. 2017.01.13 1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8. 도시락 두 개 2017.01.13 16: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동네서점에서 책을 받았어요. 서점에 책이 없어서 주문했더니 바로 다음 날 가져다 주셨어요.
    책 들고 갈게요! 책에다 싸인 해 주세요!!

    (깨알지적... 피니님은 87학번 학력고사 세대니까
    당시는 내신이 10등급까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94학년도 수능이 시작되면서 내신이 15등급 체제로 바뀐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게 틀릴 수도 있겠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세요!!)

    • 김민식pd 2017.01.15 05: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은호님 말씀이 맞을 수도 있겠네요. 한번 확인해볼게요. 정확히 기억하는 건 52명 중 22등이었다는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결과... 내신이 반에서 중간이었다는 건데.. 음... 확인해볼게요. 감사합니다!

  19. 영어야 사랑해 2017.01.15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들EBS방송교재 사러 예스24 들어갔다가 우연히 책 광고보고 필 꽂혀서 책 주문한게 이틀전이예요. 책 오자마자 애들 재우고 밤새 다 읽었어밑줄 긋고 빨간줄 치며... 가끔 가슴 설레는 책 만나지만 이렇게 밤새며 책 읽은게 참 간만이네요. 오늘밤은 애들 재우고 밑줄그은 유투브 동영상도 보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책에소개된 영어회화책도 오늘 주문했고... 이제 외우기만 하면 되는데...ㅋㅋ 이렇게 신나게 쭉 ~~~해서 정말 TED를 영어그대로 듣고 싶어요. 간절히~~~

    • 김민식pd 2017.01.15 05: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책을 좋아합니다.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서 살기에, 책을 쓸 때 간절한 소망은, 내가 평소에 즐기는 것처럼 다른 독자도 내 책을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소중하고 감사한 반응, 정말 감사합니다. 영어 공부가 더욱 즐거워지기를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20. 아니엘 2017.01.17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마감이군요. 지난번 어딘가에 꼬꼬마 딸이랑 손잡고 간다고 댓글을 달았던것 같은데..(ㅜㅜ);; 요기에 새글이 올라왔었네요 ㅎㅎㅎ~ 1차때 못가서 이번엔 꼭 가야지 하고 있었는데..너무너무 아쉽지만..3차를 기약해야 겠네요 ^^, 책한권 다외웠는줄 알았는데 요즘 다시 들어보니, 이런. 망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입에서 맴돌기만 하고..다 까묵..다시 신년목표로 삼아야겠습니다.

  21. 아니엘 2017.01.17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네네! 감사합니다!! PD님 만나러 가는 길이 연예인 만나러 가는 마냥 설래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