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스쿨 쪽지 시험 2. 사랑의 어느 순간

작문 주제: 당신 인생의 사랑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순간을 서술하시오.

내가 공채 시험 출제위원이라면, 위의 문제를 내겠다. 왜? 이유는 3가지다.

1. 내가 남들 사랑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니까. ^^ PD는 인생의 채집자다. 남들 사랑 이야기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모아, 언젠가 내가 연출하는 드라마에서 디테일로 써먹어야 하니까. 드라마 연출은 늘 사랑 이야기에 목마르다. 한국 드라마는 결국 사랑 이야기에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니까. 

2. 같은 이유로, 연출지망생이라면 연애 경험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절한 사랑 한 번 못해보고 어떻게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그리나? 아픈 사랑의 경험이 많을수록 연애 감정의 디테일한 연출이 가능하다.

3. 연출은 작가가 쓴 대본을 읽고, 영상으로 옮겨, 시청자들에게 그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다. 자신의 사랑 이야기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남의 머릿속 사랑 이야기를 어떻게 현실로 옮겨내나? 사랑의 느낌을 글로 잘 표현하는 사람이 좋은 연출이 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연애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무엇인가?
정답은 없지만, 내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후배 연출이 한 답이 생각난다.
"짜장면 두 그릇이요."   "?"

그 남자 후배는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의 다른 남자 친구랑 셋이 만나 놀다, 그만 그 둘이 눈이 맞아버렸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인거지. 여자 친구가 결별을 선언하고, 친구도 어느날 연락을 끊었단다. 괴로운 마음에 술먹고 밤늦게 혼자 사는 여자 친구의 자취방을 찾아갔는데... 불켜진 방문 앞에 짜장면 두 그릇이 놓여 있더란다.

아, 짜장면 두 그릇! 저 둘이 지금 저 안에서... 후배가 그 순간 겪었을 마음 속 지옥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사랑의 디테일인가. 그 후배에게 말했다. "그렇게 가슴 아픈 실연을 겪어 봤다면, 넌 멜로 드라마의 대가가 될 자격이 있어."

내게 기회가 온다면, 꼭 이 문제를 낼 것이다. 그리고 '짜장면 두 그릇' 같은 울컥!하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사람을 후배로 뽑고 싶다. 

연애, 세게 해보시라. 그리고, 큰 상처가 온다면, 이렇게 생각하라. '아, 이 순간의 고통이 언젠가 내 드라마의 멜로 감정을 살리는 디테일이 되겠구나.'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노력하시라. 자기애가 부족하거나, 인류애가 부족하거나, 둘 중 하나다. 

가을이다! 사랑하기에 참 멋진 날씨 아닌가?   

   이 영화, 타이틀에 뜬 글자 기억하시는지?               Love, actually, is everywhere. 

사랑은 사실,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