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117

딴따라는 어쩌다 투사가 되었나? (오늘 글은 좀 깁니다...) 국립암센터에 입원한 이용마 기자를 봤을 때,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후배가 떠올랐다. 이용마처럼 책임감이 투철한 친구였다. 대학 신입생 시절 교정을 지나가다 나의 권유로 동아리에 들어온 후배였다. 군 복무 후 취업 준비하느라 동기들이 동아리 활동에서 빠졌을 때, 혼자 후배들 스터디를 챙긴 친구였다. 훗날 대기업을 다니며 그룹 메일 시스템 개발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뜩이나 책임감 강한 녀석이 중책을 맡았으니 얼마나 열심히 할까’ 싶었다. 30대 중반이 넘도록 결혼도 미루고 일만 했다. 바빠서 건강검진 챙길 여유도 없다던 후배가 어느 날 피로가 너무 오래 간다며 병원을 찾았다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시골에 계신 늙은 아버지에게 아들 병수발을 맡길 순 없다며 후배는 .. 2020. 2. 21.
부디 자중자애하시라 (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어느 날 출근길에 휴대폰에 낯선 번호가 떴다. 병원 응급실에 아버지가 실려 오셨다고. 아침 산책 나가셨는데 웬 날벼락인가. 병원에 달려가니 팔순의 아버지가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 있었다. 아파트 정원에 열린 대추를 따겠다고 나무에 오르셨다가 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떨어졌단다. 척추에 금이 가고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출혈이 심했다. 몇 달 간 병원 신세를 진 끝에 간신히 건강을 회복하셨다. 중환자실에 누워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를 보고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팔순의 나이에 나무는 대체 왜 오르신 걸까?’ ‘대추나무 가지는 어쩌다 부러졌을까?’ 어느 날 아파트 승강기에 붙은 공고문을 봤다. ‘지하 주차장이 있어 아파트 마당의 표토층은 3미터에 불과합니다. 나무가.. 2020. 2. 18.
키보드워리어와 아가리파이터 MBC 노조부위원장으로 한창 파업을 하던 2012년 6월 참여연대에서 연락이 왔어요. 공영방송 파업에 대해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KBS에서는 최경영 기자가 오고, MBC에서는 제가 갔어요. 저보다는 이용마 기자가 어울리는 자리였지만, 다양한 입장을 듣기 위해 기자와 피디 각 한 명씩 불렀대요. 저는 쫄보라 파업 관련 행사 출연 섭외를 받으면 겁이 덜컥 납니다. 내가 뭐라고 감히 언론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이런 걱정이 들고요. 무엇보다 저는 코미디 피디라 진지한 자리에서 엄숙한 이야기를 길게 하는 걸 잘 견디지 못해요. 그럼에도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럴 때 저는 웃길 작정으로 나갑니다. 참여연대에서 연락이 왔을 때, 생각했어요.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을 설명하는 일은 '우.. 2020. 1. 24.
내 친구 이용마 무라카미 하루키의 를 보면, 하루키는 전업 작가로 살면서 체력 관리를 위해 매일 달린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 동물과 비슷하다. 주의 깊게 단계적으로 부담을 늘려 나가면, 근육은 그 훈련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 이명박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려고 권력을 동원하던 시절, 문화방송 노조는 미디어 법 반대 파업,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벌였다. 거의 매년 파업이 일어났고, 노조는 모든 싸움에서 졌다. 양심적인 기자와 피디는 현업에서 쫓겨났고 구성원들은 패배의식에 빠졌다.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양심도 사역 동물이다. 그냥 두면 너무 쉽게 게을러지고 망가.. 2019. 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