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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7.18 매 맞으며 한 영어, 스스로 한 영어 (9)
올해 초에 낸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에서 저는 회화 문장을 외우면 누구나 쉽게 영어로 말을 할 수 있다고 썼어요. 그것을 보고 초등학생 아이에게 회화 책을 외우게 하는 부모님도 있더군요. 책을 쓸 때, 제가 염두에 둔 독자는 ‘30~40대 직장인’이었어요. 십 년 넘게 영어를 공부했지만, 아직도 회화가 서툰 분들이요. 이분들은 학교에서 영어 문법과 단어는 충분히 공부했기에 능동적 표현의 양만 늘리면 영어 회화가 술술 나오거든요.

제 책을 읽고 ‘비싼 영어 사교육 대신 집에서 홈스쿨링 해보자’고 하시면 아이가 많이 힘들어할 겁니다. 영어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초등학생은 스펠링을 몰라 책을 외우기는커녕 읽기도 버겁고요. 영어 단어나 문법에 익숙한 중고생들은 가뜩이나 입시 준비로 바쁜데 영어 회화까지 외우라니 괴로울 것입니다. 아이들이 이럴까봐 걱정이에요. “아, 그 아저씨는 드라마 피디가 그냥 드라마나 만들지, 무슨 영어 학습서를 써서 사람을 이렇게 괴롭히나?”

저는 영어 알파벳도 모르던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에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외웠습니다. 그걸 보고 “피디님은 하셨잖아요?”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네, 저는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수학 선행학습 같은 사교육이 없었기에 방학 동안 하루 종일 영어책만 외웠거든요. 외우지 못한 날에는 아버지에게 맞았어요. 아버지는 한번 매를 들면, 분이 풀릴 때까지 때리시는 분입니다. 하루는 그렇게 맞다가는 맞아 죽을 것 같아서 도망갔습니다. 다음부터는 팬티 바람으로 매를 맞았어요. 아예 도망가지 못하게. 맞아 죽는 것과 쪽팔려 죽는 것 사이에서 고민도 했지만 맞아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나 봐요. 팬티 바람으로 도망간 적은 없었거든요.

중학교 올라가서 영어 성적은 항상 100점이었어요. 교과서를 다 외웠으니 따로 공부할 필요도 없었지요.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성적이 계속 떨어졌어요. 맞으며 공부했다는 설움에 영어가 싫어지더라고요. 대학 2학년 때 영어 성적은 D+였어요. 나중에 군대 가서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나이 스물에 인생이 우울한 건 아버지 탓인데, 나이 마흔에 인생이 우울하면 그때도 아버지 탓일까? 우울한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 스무살의 내가 무언가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결국 공부는 자발성이 관건입니다.

고등학생이 된 큰딸에게 이제껏 공부하라는 말을 단 한 차례도 한 적이 없어요. 억지로 시키면 더 하기 싫은 게 공부더라고요. 특히 어학 공부는 멍하니 수업만 듣는다고 늘지 않아요. 능동적으로 말하기를 연습해야 하는데요, 영어 조기교육의 가성비가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자발적인 공부를 위해 동기부여가 중요합니다. 엄마 아빠가 취미 삼아 영어문장을 외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부모가 영어 회화를 공부하면서 외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기회가 되면 국외여행도 즐기는 모습, 그것이 아이들에게 있어 최고의 동기부여 아닐까요? 

 

(한겨레 신문, 연재 칼럼 <김민식 피디의 통째로 육아>에 실은 글입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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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섭섭이 2017.07.18 0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PD님이 자주 얘기하셨던 동기부여. 즉, what, how 보다는 why (왜) 영어공부를 하려는지..
    이게 공부의 핵심인거 같아요.. 전 세계여행를 위해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있는데요 현지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해보고 있는데 정말 쉽지는 않은거 같아요.. 순간순간 머리가 멍해지네요. ^^ 그래도 '왜' 가 명확하니 될때까지 해보려고요.

    #김장겸은_물러나라
    #김장겸은_물러나라
    #김장겸은_물러나라
    #언능빨리_물러나라
    #PD님_응원해요
    #질기고_독하고_당당하게

  2. 쏘라 2017.07.18 09: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치원에서 간간히 영어를 배워온 울집 꼬맹이 보면 아주 신기해요...단어뜻 따위는 전혀 몰라도 대화 주고받는 걸 외워서 써먹더라구요..어른보다 자신감이...
    이걸 받아서 해줘야는 의무감이...ㅋ
    읽을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엄마의 노력이 필요한....
    Making a big life change is a scary. But you know what's even scarier?
    REGRET...심쿵

  3. 똑씩일 2017.07.18 1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지금 선생님책 읽다가 필받아서 페북 찾아보니 동명인이 너무많아 블로그얘기 나오는데까지 와서 들어오게 되었네요 파이널리!
    셀프유학 그게 넘 재밌어서요
    영어가 평생의 숙제처럼 느껴져요
    선생님처럼 재밌게 살고싶고 선생님처럼 재밌는사람을 옆에서 보고싶어요 저의 인생은 게으름과 원망 겁 이런것으로 가득하고 생각만 하고 지나가고 실행은 아주적고 그래서 내삶을 통 못바꾸고있어요 책을 재밌게 읽고있고 따라해볼것들은 메모를 하고있어요
    기회가 있다면 얘기도 나누고싶네요
    그럼 즐거운나날 되시길

  4. 아날로그 2017.07.18 14: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편이 영어는 안하면서 영어공부 잘 하는 비법 책은 거의 수집수준으로 사들고 옵니다. 이번에도 또 사들고 왔구나 하고 잔소리를 했는데 제목이 은근 땡기더라구요~호기심에 제가 먼저 읽어보았는데 너무 재밌어서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것을 시도는 많이 하지만 끝까지 해내지는 못하는 성격인데 피디님은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시라 매우 배우고 싶어요. 우선 영어책 한 권 외우기부터 시작해 보렵니다^^

  5. 정지영 2017.07.19 0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Once you make a decision, you stick to it.
    외웠던 문장이 떠오르네요. 재밌는 일을 찾아서 시작하지만, 중도 포기없이 끝까지 밀고 가시니까 새로운 길이 또 열리는 것 같아요.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어요.
    피디님은 생각의 갈림길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요. 저도 스무살때 인생이 우울해서 부모님 원망을 했거든요. 근데 마흔살은 내다보지 못하고 그냥 우울한채로 원망하면서 난 왜이럴까 자책만 하면서 보낸것 같아요. 그 방법이 전부인줄 알고. 하나 배웠습니다. 지금 이후의 삶은 저의 책임이니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스스로 해야겠어요.

  6. 곰탱 2017.07.27 0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어책 한권 외워봤니 영어 수준이 문법과 어휘는 있지만 더 진행이 안되는 사람들 대상인가요?
    성인인데 문법 어휘 전혀 준비되지않은 사람도 가능한걸까요? 시엄니 영어책 추천해달라시는데 고민이네요

  7. 곰탱 2017.07.27 07: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 당연 책 읽고 글 올린거랍니다 ㅋ 이 더위에도 술술 잘 읽었어요 ^^ 제가 궁금한걸 잘못 올려서 다시한번 질문드려요. 기초가 전혀 없는 성인도 책에 소개로 나와있는 회화책으로 외워봐도 될까요. 문법 어휘가 전혀 없다면 더 낮은 수준의 책(아이들 책이라든지)으로 시작하는게 나을까요? 어디다 질문하는건지 몰라서 여기다 적었는데 아니라면 죄송해요
    그리고. 이건 다른 얘기지만 힘내시고 좋은소식 들리길 바랍니다. 제 어릴때보던 mbc가 영~. 달라져서 맘아프네요

  8. 힘내세요 2017.09.01 0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의견에 정말 공감합니다. 다만 자발적인 동기부여가 되려면, 부모님이 정말 많이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세상에는 재미만 있는 놀거리가 너무 많거든요... T.T
    김장겸 사장님도 자발적으로 물러나 주시죠... 직원들이 이렇게 요구하는데 자발적으로 물러나는것도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장님이 자발적으로 물러나시면 사장님도 응원할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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