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짜로 즐기는 세상

짠돌이의 탄생

by 김민식pd 2016. 1. 27.

(얼마 전 '짠돌이 독주회에 가다'를 쓰다가, 나는 어쩌다 이렇게 지독한 짠돌이가 된 걸까? 문득 궁금... 그래서 써 본 글.)

 

최근에 읽은 책마다 경제 위기를 예고한다고 글에 올렸더니 어떤 분이 '경제가 나빠진다는 얘기 밖에 없어 우울하네요.'라고 답글을 다셨다. 한편으로는 좀 미안하다. 희망을 얘기해도 부족한 판에 왜 이리 암울한 전망만 하고 있을까? 아마 나란 사람의 경제적 성향 탓이 아닐까 싶다. 나는 심한 짠돌이다.

 

1987년 대학 1학년 때 처음 서울에 올라온 나는 입주 과외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고1 남학생의 방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먹고 자고 저녁에는 공부를 가르치며 대학을 다녔다. 좁은 방에서 고교생 남자애랑 등을 맞대고 자는건 불편했지만, 하숙비를 아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이가 집중력이 약한 탓인지, 수업 중간에 화장실 간다고 꼭 10분씩 쉬더라. 하루는 휴식 중 잠깐 거실에 나왔다가 부엌에서 사과를 먹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집 엄마가 공부하는 아들을 몰래 불러내서 과일을 깎아 먹인거다. 나도 우리집에선 귀한 아들인데... ㅠㅠ 남의 집 살이라는 게 그렇지 뭐.

하루는 그 집 아주머니가 나를 불렀다. 

"학생, 청소하다가 이게 나왔는데, 이거 뭐야?"

책상 서랍 한켠에 있던 내 통장이었다. 

"제 적금 통장인데요?"

"학생 적금 부어?"

"네."

87년 당시 내 과외 월급은 한 달에 10만원이었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입주과외를 하면 하숙비를 아낄 수 있어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나는 월급을 타면 다음날 바로 은행으로 가서 5만원을 적금 붓고 남은 돈으로 생활을 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혀를 내두르더라.

"학생, 진짜 독하네......."

 

나는 왜 그런 인간이 된 걸까?

나의 적성은 문과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를 억지로 이과로 보내고, 공대를 보냈다. 나의 의견도 들어달라고 하면 아버지가 딱 자르셨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다 내 돈으로 하는데, 네가 내 말을 들어야지."

대학 간 후,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았다. 그래야 아버지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을테니까. 첫 직장에 들어가서도 열심히 돈을 모았다. 영업이 생각보다 힘들더라. 그래서 사표를 냈다. 그때, 회사 상사가 잡으면서 묻더라. 

"너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먹고 살려고 그래?"

회사 2년 다니며 몇년 버틸 돈을 모았다. 만약 돈이 아쉬워서 그냥 회사를 다녔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겠지. 지금처럼 즐겁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짠돌이 근성이 나를 살렸다. 나는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살지는 않겠다고 스무살에 이미 마음을 먹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 그럴 때는 돈을 안 벌어도 된다. 돈을 쓰지 않으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 돈을 쓰지 않는 것이 최고의 재테크이고, 즐겁게 인생을 사는 비법이다.

 

87년에 내가 입주과외를 한 집은 부자집이었다. 수입이 꽤 되는 집이었지만 지출이 많아 빚이 꽤 있었다. 그러니 과외 선생에게 나눠줄 사과 한 쪽도 아까워하지. (뒤끝작렬. ^^) 나는 매달 꼬박꼬박 저축을 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저축할 여유가 없으면 가난한 거고, 아무리 적게 벌어도, 저축할 여유가 있으면 부자라고 나는 믿는다.

돈을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쓰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은 내 뜻대로 할 수 없지만, 돈을 아끼는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으니까.

미디어가 우리의 시청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쓰지 않고 버티기란 쉽지 않다. 돈은 놔두면 저절로 나간다. 돈을 써야하는 이유는 언제나 많다. 그래서 나는 늘 책을 읽으며 저축의 동기를 얻는다. 경제 전망에 대한 책을 읽으며 지금의 내 생활습관을 정당화한다.

Hope for the best, Expect the worst.

최선을 희망하지만, 최악을 각오한다.

그게 짠돌이의 존재 방식이다.

 

 

얼마전 아이랑 발리 여행을 갔다가 우붓에 있는 몽키 포레스트에 갔다.

 

원숭이에게 줄 먹이로 바나나를 파는데, 정말 비싸더라. 한송이 5천원. 

참고로 발리에서는 볶음밥 한그릇이 3천원. 

 

그래도 아이가 참 즐거워하더라.

 

마냥 아끼기만 하는 건 아니다. 쓸 때는 쓰니까, 짠돌이라고 너무 흉보지는 마시길. ^^

 

 

재미있어 보여 따라 했는데, 나한테는 엄청 큰 놈이 올라타서 기겁했다.

이곳에 사는 팔자 좋은 원숭이 녀석들.

 

 

바나나 하나를 주면 친구가 된다.

 

짐승처럼 살고 싶다. 욕심 크게 내지 않고, 작은 것에 감사하면서.

 

반응형

'공짜로 즐기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운동은 고역인가?  (5) 2016.02.20
짠돌이 화장실에 가다  (3) 2016.02.01
짠돌이 독주회에 가다  (7) 2016.01.23
차라리 유승준을 용서하라  (13) 2016.01.16
짠돌이 골방에 가다  (4) 201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