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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날라리 영화 감상문

영화 '머드'를 보고

by 김민식pd 2013. 12. 10.

원래 이 글은 제프 니콜스 감독의 영화 '머드' 예찬이었어야 했다. 영화 '테이크 쉘터'를 보고 난 이 감독의 연출력에 반해 버렸다. 그래서 이어 개봉한 '머드'를 달려가서 봤다. 대만족이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이 정도 공력은 있어야겠다.

 

영화 '테이크 쉘터'는 꿈에서 종말을 예견하고 집 앞마당에 방공호를 파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영화는 종말에 대해서, 혹은 한 남자의 신경증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장면은 그 아내의 사랑이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절망에 빠졌을 때, 결국 그에게 있어 최후의 보루는 가족임을 보여주는 한 장면, 내가 본 그 어떤 로맨틱 코미디의 사랑보다 더 진하게 가슴을 울렸다.

 

(주인공 역할을 한 마이클 섀넌, 저예산 영화에서 표정 연기만으로도 압도적인 긴장을 만들어내더니, 이 영화 덕에 슈퍼맨 맨 오브 스틸의 조드 장군으로 픽업 되기도 했다. 인디 영화가 살아있어 헐리웃은 끊임없이 새로운 재능을 수혈할 수 있다. 자신을 키워준 감독을 위해 영화 '머드'에서는 작은 역할로 잠깐 나온다. 이런 훈훈한 의리, 참 보기 좋다.) 

종말과 신경증을 그린 영화에서도 사랑을 이야기한 감독이 작정하고 사랑 얘기를 만들었다니 안 볼 수가 있나. '머드'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끝없이 희생하는 한 남자가 나오고, 이혼을 앞둔 부모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아이도 나온다. 과연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아이는 진실한 사랑을 꿈꾸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올 한 해 두 편의 영화로 한국에 찾아온 제프 니콜스는 감독으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기대된다, 이 감독의 차기작.

 

끝으로 영화 번역의 아쉬움을 살짝 지적하고 싶다. 영화 중간에 어떤 한 인물이 전화를 받는다.

"You are speaking to him."

그때 자막이 "그 친구랑 이야기해 봤소?" 로 나온다. 이건 명백한 오역이다. 전화를 받았을 때, 상대가 "Can I speak to Mr. Kim?" 하면, '접니다' 라는 뜻으로 "You are speaking to him." 이라고 답한다. 극중 분위기로는 "나요." 정도겠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치명적 실수가 나온다. "Come on, son." 이라는 대사에 "아들아, 이리 와 봐라" 라는 자막이 나와서 기겁했다. 미국에서는 젊은이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로 Son이나 Sonny를 쓴다. "이봐, 여기 좀 와봐."가 옳다.

 

몇개 알아들은 걸 자랑하려고 번역 트집 잡는 건 아니다. 이 영화 이야기의 한 축은 두 남자의 우정이다. 주인공 아버지뻘의 한 남자가 나오는데 극중 아이들이 "혹시 머드 아빠 아냐?" 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부자 관계가 아니다. 다만 친아버지 못지 않게 믿을 수 있는 사람, 친아들 못지 않게 아끼는 상대 일 뿐이다. 가족을 꾸리지 못한 외로운 두 남자의 쿨한 관계인데, "아들아." 라는 자막은 '알고보니 둘이 부자관계였어? 헐!' 이라는 엉뚱한 반전을 만들어버린다. 이는 번역이 영화를 반역하는 행위다.

 

(혹시 내가 영화를 오독한 것일까 싶어 돌아와서 IMDB 사이트에 들어가 시놉시스까지 확인했다. 분명히 father figure라고 나온다. 이는 아버지같은 인물이지, 절대 친아버지가 아니다.)

 

영화가 끝나고 보니 번역자로 영화 수입사 회사명이 뜨더라... 아, 이건 정말 아니다. 영화 번역은 제2의 창작이다. 수입사에서 영어 잘하는 직원에게 번역을 맡긴 듯 한데, 이는 영화에 대한 예의도, 관객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적어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 질 수 있는 번역작가에게 맡겼어야지.

 

과거 통역사로 일하던 시절, 해외 유명 연사 데려다 수천만원 짜리 행사를 치르며 통역료 몇푼 아끼다 망치는 행사 많이 봤다. 누가 나오느냐보다 더 중요한건 청중이 얼마나 그의 이야기를 잘 알아듣는가이다. 작은 회사가, 이렇게 좋은 영화 수입해줘서 정말 고마운데, 부디 다음부터는 전문 번역가에게 자막을 맡겨주시길.

 

 

아메리칸 인디 클래식! 독립 영화지만 정말 화려한 캐스팅이다. 아이들에게 거지 취급 받는 역할의 매튜 매커너히, 싸구려 창녀 대접 받는 리즈 위더스푼. 정말 멋지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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