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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에도 식상한 멘트, 직접 하자니...^^

by 김민식pd 2012. 12. 24.

예전에 예능국 조연출로 일하며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을 만든 적이 있다. 조연출의 주된 임무 중 하나가 후보들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따는 일이었다. 그럼 하나같이 하는 아주 식상한 멘트가 있다. "이렇게 후보에 오른 것 만으로도 과분합니다." 편집실에서 보다 짜증낸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무슨 예술가들이 이렇게 똑같은 소리만 하고 있어! 그런데 막상 그 얘기를 직접 하자니 참 민망하다.

 

얼마전 메일을 하나 받았다. '2012 다음뷰 블로거 대상 후보에 선정되셨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누가 장난 메일을 보낸 줄 알았다. 티스토리 베스트 블로거만으로도 황송한데 웬? 나중에 투표 페이지가 뜬 걸 보고 그랬다. '옴마나! 진짜네?'

 

 

 

 

정말 부끄러웠다. '이렇게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과분합니다.'라는 식상한 멘트를 직접 하게 될 줄이야! 그런데 막상 내가 겪어보니 저 말 말고 할 말이 없다. 왜? 대상 후보는 정말로 내게 과분한 자리다.

 

평소 내가 겸손한 사람인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나는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출상에 직접 자천한 사람이다. 시상식 조연출로 일하며 표민수 감독님이 드라마 '거짓말'로 신인 연출상을 타는 걸 보고 조낸 부러웠다. 수상 소감을 편집하며 '언젠가는 나도!'를 외쳤다. 그래서 2년 후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이 조금 뜰 것 같은 조짐을 보이자 냉큼 국장님께 달려갔다. '올해 신인연출상 후보로 '뉴논스톱'을 올려주시면 안되나요?' 그래놓고 시상식장에서는 예상도 못했다는 듯이 양동근의 멘트를 날렸다. "럴쑤 럴쑤 이럴쑤!" 그렇게 뻔뻔한 인간이 나다.

 

그런 내가 이번에 블로거 대상 온라인 투표 페이지는 보기만 해도 부끄러웠다.

http://v.daum.net/award2012/poll 

사실 관계 증명을 위해 올린 주소다. 이미 투표는 끝났으니 오해없으시길. ^^ (당연히 떨어질게 뻔하니까 쉴드치는거 아니냐고 한다면... ㅋㅋ)

물론 이번에도 나에게 한 표를 찍기는 했다. 상금이 욕심나서가 아니다. 지난 일년간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글을 올린 내 자신에게 보낸 격려의 한 표다. 투표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올 한 해 다음뷰에서 가장 호응이 뜨거웠던 글이 두 편이다.

 

2012/06/08 - [공짜로 즐기는 세상/2012 MBC 파업일지] - 두 분 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2012/05/25 - [공짜 PD 스쿨/공짜 미디어 스쿨] - 어느 나꼼수 팬의 나꼼수 출연기

 

구속영장 심사받고 유치장에서 구상했던 글과 구속을 각오하고 올린 글 덕에 대상 후보가 된거다. 인생, 이렇게 아이러니하구나. 창작자에게 시련은 영감의 소재라더니, 역시!

 

올 한 해, 끊이지 않는 시련의 와중에도 대상 후보 선정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신 심사위원단에게 감사드린다. 끝으로 식상한 멘트 한번만 더...

 

"이렇게 후보에 오른 것 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식상하지만,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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