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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만화 H2에서 배우는 인생의 교훈

by 김민식pd 2012. 6. 21.

어제는 문득 만화가 보고싶었다. 우울할 때 보는 만화 3종세트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야구 만화 H2다. 에이스 투수 히로(영어로 읽으면 히어로)와 4번 타자 히데오(한자로 쓰면 영웅)의 대결을 그린 만화다. 둘 다 멋지지만, 특히 히로는 아다치 미츠루가 만든 캐릭터 중 최고다.

 

악역 중에 히로타라고 이기기 위해 상대 타자의 몸을 맞히는 공도 불사하는 선수가 있다. 영리한 히로타는 상대 타자를 부상시키고도 매번 교묘한 변명으로 빠져나간다. 그때 히로의 한마디.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이기는 것만 생각해선 공부가 부족하게 될걸. 대체로 스포츠에선 이긴 시합보다 진 시합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법이니까.' 

 

가끔 학교 강의를 나가면 학생들이 묻는다. '드라마 피디로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내가 전교 꼴찌에요. 이걸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알아요. 그럼 크게 힘들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반 아이들이 다 알아요. 좀 창피하겠죠? 만약 동네 사람들이 다 안다면 어떨까요? 아마 밖에 나다니기도 힘들 거에요. 나는요, 내가 만드는 드라마가 시청률 꼴찌를 하면 온 국민이 다 알아요.'

 

시청률 부진 만큼 피디에게 힘든 게 없다. 어떤 드라마 피디는 조기종영을 겪은 후, 지하철만 보면 뛰어들고 싶어서 한동안 전철을 피했단다. 나도 조기종영도 당해보고, 시청률 부진도 다 겪어봤다. 하지만 그러고도 여전히 드라마 연출로 사는 이유?

 

안되면 안되는 대로 배움이 있는 것이 인생이다. 조연출 시절, '가문의 영광'과 '논스톱'을 조기종영으로 말아먹은 바 있다. 두번의 실패를 통해 시트콤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래서 다시 도전한게 '뉴논스톱'이다. 연출은 행복한 직업이다. 잘되면 보람을 얻고, 안되도 경험을 얻는다. 편성이 불리하다고, 대진운이 나쁘다고 연출 기회를 피한 적은 없다. 나는 실패에서 배우는 연출이니까.

 

내가 요즘 사는 게 힘들어 보이는지 가끔 사람들이 그런다. '영리하게 굴어. 승산도 따지면서 살아라. 그러다 다칠까 겁난다.'

 

나는 영리하지 못해서 승산이 있느냐, 없느냐는 따지지 않는다. 내게 중요한 것은 싸움을 즐길 수 있느냐 없느냐다.

 

H2의 히로가 주는 교훈? 경기에서 승패에 집착하기보다 과정을 즐겨야한다. 그게 진정한 스포츠맨쉽이다. 인생도 똑같다. 결과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때로는 처참하게 질 수도 있다. 그것 역시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살면, 도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기는 싸움에만 들어가겠다는 자세로 살면, 인생에서 배우는 게 없다.

 

이기면 성취감을 얻을 것이요, 지면 배움을 얻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즐길 것이다. 하루치의 내 인생을.

 

고맙다, 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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