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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나홀로 데이트의 즐거움

by 김민식pd 2025. 4. 10.

MBC에서 퇴사하고 좀 울적했어요. 피디로 일하며 작가/배우/가수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일하는 게 즐거움이었는데, 이제 그럴 수 없으니까요. 어느 날 페이스북에 올라온 이종혁 배우의 포스팅을 봤어요. 


<비기닝>이라는 연극을 한다고요. 2015년 <여왕의 꽃>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인연을 맺었는데요. 이종혁 배우는 볼수록 매력이었어요. 마침 근황이 궁금했는데 반가운 마음에 표를 예매하고 극장에 달려갔어요. 이제 우리가 드라마를 함께 만들지는 못하지만, 그 배우가 하는 연극을 보며 즐길 수는 있는 거지요. 


집으로 오는 길에 공연 잘 봤다고 톡을 보냈더니, ‘아이구, 미리 말씀하시지. 표를 준비할텐데.’라고 하기에, ‘무슨 말씀! 좋아하는 배우의 공연은 돈 내고 보는 게 예의입니다.’했더니 이런 짤을 보냈어요. ^^


역시 매력만점, 이종혁 배우님. ^^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 김선화 배우님이 댓글을 달아주십니다. 차인표 배우와의 인연도 공유해주셨지요. 선생님의 공연 소식이 올라왔기에 또 예매하고 달려갔어요.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서울연극창작센터 개관 페스티벌 작품인데요, 티켓값이 15,000원. 무척 유쾌한 작품이라 한참을 웃다가 나왔어요. 김말봉이라는 소설가의 삶에 대해 이 연극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세상에는 멋진 어른들이 참 많네요.

저는 영화, 뮤지컬, 연극은 좋아해요. 하지만 클래식 공연은 좀 심심해요. 저는 이야기가 있어야 몰입할 수 있거든요. 작년 가을에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시네마 콘서트를 보러 갔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주제가들이 연이어 나오는데요. <레이더스 마치> <스타워즈> <다스베이더의 테마> 등등. 공연을 보다 풀 편성 오케스트라가 뿜어내는 소리에 확 빠져버렸어요. 

서울문화재단과 강남문화재단의 공연 소식을 톡으로 받는데요.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정기연주회를 한다기에 달려갔어요. 앞에서 3번째 자리에 앉아서 봤어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현장에서 보면 이런 느낌이구나! 전율이었어요. 앞자리에 앉으니 바이올린 등 현악기 연주자의 모습은 잘 보이는데, 저 멀리서 들리는 관악기나 타악기의 연주 모습은 안 보였어요. 그래서 그다음 주 KT 오케스트라의 예술의 전당 마티네 콘서트를 또 보러 갔어요. 이번에는 2층에서 봤는데, 높은 곳에서 전체 악단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도 좋더라고요.

강남 합창단 정기연주회도 갔어요. 무료 공연이라는 말에 혹하기도 했지만, 진짜 끌린 이유는 프로그램에 <카르미나 부라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능 조연출로 일할 때 시상식 예고편을 편집할 때 이 음악을 즐겨 깔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지요. 언젠가 그 명곡을 제가 라이브 실황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

요즘 갑자기 문화 공연을 자주 찾아다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 전 트레바리 모임 멤버가 추천한 책을 읽었는데요. 책에서는 혼자 문화 생활을 즐기는 것을 아티스트 데이트라고 부르더군요.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내어 공연을 보거나 취미 생활을 해보라고요.

‘아티스트 데이트는 감각을 깨우기 위한 도구로서 ‘예술’과 ‘만남’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가 핵심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매주 한 번씩 흥미 있거나 관심 가는 무언가를 혼자 해보는 모험이다. 절반은 예술이고 절반은 만남인 이 이벤트는 사실은 자기 안의 아티스트를 발견하고 보살피는 것이 목적이다. 미리 일정을 세워두면 매주 이 모험을 설레며 기다리게 된다. 낭만적 만남이 그렇듯 재미의 절반은 기대에서 오니 말이다.’

<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 줄리아 캐머런 지음 / 이상원 옮김

네, 저는 책을 읽고, 저자가 권하는 활동은 다 직접 해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좋으면 내 삶의 루틴으로 삼지요. 아티스트 데이트의 정점은 강동 아트 센터의 마티네 콘서트였어요. 

저는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도 생소하고, 고상지라는 이름도 몰랐어요. 다만 저는 마티네를 좋아합니다. 마티네는 프랑스어로 아침을 뜻하는 matin에서 왔어요. 평일 낮 시간에 공연장의 빈 시간대를 이용해 저렴한 가격에 문화를 즐길 수 있지요.

그날 고상지님의 반도네온 연주를 들으며 탱고의 흥취에 흠뻑 빠졌어요. 마침 제가 좋아하는 영화 <여인의 향기> 중 나오는 탱고곡 <포르 우나 카베자>를 들려주시네요. 사진은 앵콜곡 <리베트탱고>를 연주하시는 모습입니다. 진짜 멋진 분이네요. 요즘 저는 고상지 님의 반도네온 연주를 유튜브에서 찾아서 듣고 있어요.  

피아니스트 오은철님이 진행하시는데요. 피아노 연주도 발군이지만, 무대 매너 또한 화려했어요. 해설이 있는 음악 공연이라 직접 마이크를 잡고 곡 설명도 하고 연주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는데요. 진행자로서 유머 감각도 압권이었어요. 유쾌한 진행 솜씨를 보며 느꼈어요. 저 분에게는 두 가지 믿음이 있구나. 자신에게 위트가 있다는 믿음, 그리고 관객은 자신을 좋아한다는 믿음. 말 잘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두가지 태도인데요. 어떻게 길러질까요? 저는 평소 말을 재미나게 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요. 부러움에서 나도 잘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생기고요.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내가 말할 때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오은철님이 진행하시는 강동 아트 센터의 마티네 콘서트, 이제 짬날 때마다 찾아가려고요. 
 



갑자기 공연을 보는 빈도가 늘었어요. 이유가 뭘까요? 혼자 보러 다니거든요. 그럼 평일 낮이건 저녁이건, 다른 사람의 취향을 고민할 필요 없이 내가 끌릴 때는 언제든 달려갈 수 있어요. 콘서트홀이건 극장이건, 50대 중반의 아재가 혼자 공연을 보러 오는 경우는 드문데요. 음, 저는 고령화 시대의 선구자라는 자세로 남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즐기려 합니다. 

한때는 문화 상품의 창작자로 살았어요. 이제는 아티스트들의 팬으로 삽니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 좋아하는 분야, 좋아하는 예술가들을 하나둘 늘려가는 게 낙입니다.

매일 매일 설렘이 가득한 하루를 꿈꾸며 삽니다.

추신 : 지역 강의 일정 올립니다. 
1. 김해도서관 인문학 강연
* 일시: 4.15.(화) 10:00~12:00 (김해도서관 인문학 강연)
* 장소: 국립김해박물관 강당
* 제목: 100세 시대, 소통으로 더 즐겁게 사는 법
* 강사: 김민식(전. MBC PD, '외로움 수업'저자)
* 신청: 도서관누리집(프로그램 신청), 전화(055-320-5582)

2. 여수 전라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회관
4.17 목 16:00~18:00 공연장 (2층)

<미래형 인재와 창작의 즐거움>

3. 창원 진동 도서관 
김민식 PD 초청 강연회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 일시: 4. 26.(토) 14:00~
• 대상: 청소년~성인
• 장소: 강좌실3
• 신청: 4. 1.(화) 10:00~
• 신청방법: 전화, 방문, 홈페이지

 
아시지요? 제가 하는 도서관 강의는 다 무료인 거? ^^
공짜로 즐기는 세상, 도서관으로 놀러오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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