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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입력보다 출력이다

by 김민식pd 2025. 2. 20.

매년 외국어 하나를 정해서 공부하고 있어요. 작년 한 해 동안은 일본어 공부를 하며 짝수달마다 일본 여행을 다녔지요. 1월에 스리랑카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콜롬보 공항에서 일본인 여행자를 만났습니다. 외국에서 일본 여행자를 만나면 반갑습니다. 이 기회에 일본어 회화를 연습해야지, 하는 마음에 말을 건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교토 벚꽃놀이며 하코네 온천 여행, 오키나와 스노클링을 다녀왔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십니다. 일본 온천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하코네 온천은 비싸지 않습니까?’ 하시기에 씨익 웃었습니다. 

두 분은 도쿄에 사신다고 하며 “올해도 도쿄에 오십니까?” 하시기에 “올해는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를 보러 갈 생각입니다.” 했어요. 일본어로는 “고토시와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오 미니 이꾸 쯔모리데스.” 인데요. 나중에 비행기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기하더라고요. 그런 문장을 외운 적도 없고, 내가 그런 문장을 안다고 인지하지도 못했는데 그냥 입에서 나왔어요. 이게 문장 암송의 힘입니다. 일본어로 ‘보러 간다’가 ‘미니 이꾸’고, ‘갈 생각이다’가 ‘이꾸 쯔모리데스’니까 그냥 합해서 자동으로 나온 거지요. 이럴 때 기분이 짜릿합니다. 

군 복무하면서 회화 교재의 예문을 통으로 외우고 1991년에 전국 대학생 영어 토론대회에 나갔어요. 동북아 지역의 평화라는 주제로 영어 토론을 했는데 그때도 입에서 영어 문장이 술술 나왔어요. 분명 기초 회화 문장만 외웠는데, 머릿속에 영어의 구조가 들어서자 어떤 주제가 되던 문장이 술술 나오더라고요. 그 시절의 맛 본 효능감 덕에 지금도 매년 한 권씩 외국어 회화책을 암송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저자 중에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이 있습니다.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이라는 책을 읽다 외국어 공부에 있어 출력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스와힐리어 40개 단어를 학습하고 나서 그것을 외웠는지 테스트하는 단순한 실험이 있어요. 두 참가자 집단을 비교해볼게요. 첫 번째 집단은 40개 단어를 전부 학습한 후에 테스트를 합니다. 테스트 결과 하나라도 틀리면 다시 40개 단어를 학습하고, 40개 단어를 전부 암기할 때까지 계속 테스트를 실시합니다. 이른바 성실한 집단입니다. 두 번째 집단은 40개 단어를 학습한 후 테스트해서 틀린 게 있으면 틀린 단어만 학습하고 틀린 단어만 테스트해요. 이른바 ‘농땡이’ 집단이지요. 

처음에는 두 집단의 성적에 별로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실하게 해도 대충 해도 정답을 맞히는 데 걸린 시간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로부터 몇 주 지나고 난 뒤에 다시 테스트하니 극적인 차이가 드러납니다. 성실한 집단의 정답률은 81퍼센트였고 농땡이 집단의 정답률은 36퍼센트였어요. 시간이 지나면 둘의 차이가 확연하게 갈립니다. 왜 그럴까요? 학습은 뇌에 입력하는 것입니다. 테스트는 뇌의 출력이에요. 뇌의 기능은 출력을 기준으로 퍼포먼스가 달라집니다. ‘머리에 담기만 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사용한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지요.

제가 책 한 권을 외울 때, 쓰는 방법은 암송입니다. 영어 문장을 소리 내어 몇 번씩 읽으면 단기기억으로 저장됩니다. 이제 한글을 보고 영어 문장을 떠올려봅니다. 쉬운 문장을 말할 수 있지만 어려운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보통은 이럴 때 모르는 문장만 반복해서 외운 후, 공부가 끝났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무조건 대화의 첫문장부터 끝까지 하나의 상황을 통째로 외워야 그날의 공부가 끝난 겁니다.

여기에 누적 암송이 더해집니다. 오늘 11과를 공부했다고 해서 오늘 11과만 외우지 않아요. 일단 11과를 다 외운 다음, 1과부터 11과까지 암송을 합니다. 혼자 산책을 할 때도 1과부터 중얼중얼 외웁니다. 오른손으로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몇과까지 외우는지 확인합니다. 10과의 제목은 정확하게 기억하는데요. 때로는 손가락을 아홉 개만 접었는데 10과 암송을 마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는 스마트폰을 열어 어떤 과를 빼먹었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다시 1과부터 새로 시작합니다. 이렇게 꾸준히 반복하면 반드시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는 날이 옵니다. 공부는 입력보다 출력입니다.

작년 한 해 1년간 일본어 공부를 했다고 하면, “이제 일본어 실력이 어느 정도 되십니까?” 하고 물어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글쎄요? 그냥 혼자 독학으로 하루 기껏 10분에서 15분 한다고 얼마나 늘겠어요. 이 나이에 유학을 갈 것도 아니고 해외 취업을 갈 것도 아닙니다. 저는 취미삼아 외국어를 공부합니다. 나의 목표는 간단해요. 여행 다니며 불편하지 않은 정도로 하는 것인데, 일본 사람들은 워낙 친절하고 관대해서 내가 조금만 회화를 해도 잘 한다며 놀라며 추켜세워줍니다. 

어떤 외국어를 할 때,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해야 한다고 믿는 이도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핑계로 아예 안 합니다. 어차피 미국사람처럼 유창하게 하지도 못할 건데 그냥 안 하고 말지. 이건 마치 서른 살 청년이 ‘죽도록 벌고 모아도 내가 천억대 자산가가 될 일은 없으니 그냥 저축은 안 할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원어민과 비교하지 마세요. 그건 의미 없는 비교고요. 그래서는 삶에 성장이 없습니다. 

‘월급 절반을 재테크하라’ 하면 ‘푼돈 모아서 어느 세월에 재벌이 되겠어요? 그냥 나는 하루하루 즐겁게 살래요.’ 라고 할 수도 있어요. 저의 저축 목표는 수천억 자산가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나이 50 넘어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노후에는 도서관에 가서 마음껏 책을 읽으며 살고 싶은 겁니다.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꾸준히 아끼고 모은다면. 

 

40대에 일본어 공부를 하고 몇 년 쉬었더니 많이 까먹었어요. 지난 1년 동안 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이제 다시 일본어가 좀 입에 붙었습니다. 이 정도면 됩니다. 내가 조금씩 더 나아진다는 느낌만 받으면 됩니다. 이런 느낌은 외국어 공부할 때 그리고 저축할 때 가장 확실하게 느낍니다. 외국어 공부를 하면 나는 분명 1년 전보다는 더 실력이 나아졌고, 저축을 하면 1년 전보다는 자산이 늘었거든요. 

공부를 할 때는 입력보다 출력이 더 중요하고요, 재테크를 할 때는 쓰는 것보다 모으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이상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와 <월급 절반을 재테크하라>의 저자, 김민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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