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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죽어라 일만 하다 갈 수는 없잖아요?

by 김민식pd 2024. 4. 22.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 Walking Dead를 좋아합니다. Walking Dead, 말 그대로 죽은 시체인데 걸어다니는 것, 즉 좀비를 뜻합니다. <워킹데드 해방일지>라는 책이 있어요. 좀비들을 해방시키는 이야기인가? 했는데 여기서 워킹 데드는 Working Dead, 죽어라 일만 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죽어라 일만 하다 가기엔 너무 억울한 인생,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워킹데드 해방일지> (시몬 스톨조프 지음 / 노태복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우아한 형제들’ COO인 한명수 저자에게 누가 “일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재미없는 것을 재미나게 하는 거요.”라고 답했답니다. 이젠 이렇게 답을 바꿀 생각이랍니다. “일은 재미있을 수도,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일에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다가는 일이 없을 때 재미도 없는 사람이 됩니다.”

역사를 통틀어 부는 노동 시간과 반비례 관계에 있었어요. 즉 더 부자일수록 덜 일합니다. 일을 안 해도 먹고살 여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지난 반세기 동안 노동 시간의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부류는 소득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었어요. 덜 일해도 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 소득 편차가 커지고 양극화가 심해진 탓입니다. 

<노동의 배신>이라는 책을 보면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부지런하다고 나와요. 가난한 사람은 일을 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기에 여러 개의 직업을 갖고 있다는 거죠. 낮에는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대리기사로 일하고 새벽에는 택배를 하는 것처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겨우 먹고 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고소득 직종인데 번아웃이 올 정도로 자신을 혹사시키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해봐요, 내가 시간당 임금이 100만 원이라면 그 사람은 쉴 수가 없어요. 아무리 잘 놀아도 1시간의 놀이가 100만 원에 상응하는 가치를 주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쉴새 없이 일하게 되는 거죠. 

200년 전만 해도 직업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부였고, 농부의 시간은 태양이 결정하지 사장이나 일정관리 알고리즘이 결정하지 않습니다. 일의 강도는 계절의 순환주기를 따라요. 수확 철엔 바쁘고 겨울철에는 한가하지요. 하지만 산업혁명이 닥치면서 우리는 생산성이 더 이상 계절과 햇빛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19세기 중반이 되자,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한 주에 6,7일씩 일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하루 8시간 근무나 주 52시간 근무 그리고 이틀간의 주말과 같은 현대의 표준은 조직적인 노동운동을 통해 노동자들이 쟁취해낸 결과입니다. “8시간 일하고 8시간 쉬고 8시간은 하고 싶은 것 하기”는 1886년 시카고에서 열린 첫 노동절 시위의 구호였어요. 


  
은퇴 후에도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최고의 노후 대비는 평생 현역으로 사는 것이더라고요. 다만 직장 생활 할 때처럼 야근에 주말 근무에 힘들게 일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생 이모작을 한다면, 위의 기준처럼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은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는 거지요. 은퇴를 하고 집필 노동자로 남은 평생 살아가기로 마음 먹은 제게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도 노동입니다. 그러니 하루 4시간은 책읽기와 글쓰기를 하는데 쓰고요. 남은 4시간은 강연 관련 일을 하는 거지요. 강의하는 시간과 이동 시간을 합해 4시간. 강의가 없는 날에는 그 시간에 운동(유산소 + 근력운동 + 스트레칭)을 하고요. 저는 100세 시대에는 나이 7,80에도 일할 수 있도록 체력을 관리하는 것도 업무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즉 은퇴자의 8시간 노동은 책읽기, 글쓰기, 운동을 포함하는 겁니다. 남은 8시간 동안에 여가를 즐깁니다. 친구를 만나고, 피아노를 배우고,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등등.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2030년이 되면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했습니다. 실제로 20세기 내내 노동조합의 압력과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 덕분에 평균적인 미국인들의 노동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1975년에만 해도 미국과 독일인의 평균 노동 시간은 동일했는데, 2021년에는 미국인이 30% 더 오래 일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같은 기간 임금은 정체했는데, 물가가 올랐습니다. 같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합니다. 1950년대에는 미국의 노동자 3명 중 1명이 노동조합 가입자였는데, 2021년에는 10명 중 1명으로 줄었습니다. 이게 노동 시간 증가로 이어지지요. 저는 노동조합의 가치를 믿습니다. 노동자를 지켜주는 건, 노동자 스스로가 단결하여 협상력을 갖는 경우 밖에 없습니다. 국가가, 기업이 알아서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스스로 지켜야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조합 조직에 있고요.  

책의 원제목인 <그 정도면 괜찮은 직업 The Good Enough Job>은 ‘그 정도면 괜찮은 양육’의 개념에서 왔어요. 영국의 심리학자 겸 소아과 의사인 도널드 위니컷이 1950년대에 고안한 이론입니다. 위니컷은 양육이 자꾸만 이상화되는 경향을 목격했습니다. ‘완벽한’ 부모일수록 아기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고, 아기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만 하면 이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위니컷은 부모와 아이 둘 다에게 완벽함보다는 충분함의 방식이 더 이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완벽한 부모와 달리 ‘그 정도면 괜찮은’ 부모는 아기를 도와주긴 하지만, 충분한 여지를 주어 아기가 스스로 안정을 찾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그 결과 아기는 회복력을 기르고 부모는 아이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지요. 우리에게도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해요. 완벽한 부모 대신 ‘그 정도면 괜찮은 부모’가 되는 걸 목표로 삼자고요.  

마찬가지로 일이 늘 충만감을 안겨주리라는 기대, 완벽한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고통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기록적인 저출산 문제를 겪는 주된 원인이 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활 방식 탓이고, 미국의 젊은 층 사이에서 우울증과 불안증을 앓는 비율이 심각하게 높아진 배경에는 직업적 성공에 대한 부풀려진 기대심리가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과로 관련 증상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통계도 있어요. 이제 우리는 본격적으로 일을 줄이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1995년에 나온 <노동의 종말>에서 제레미 리프킨은 21세기가 되면 인류가 노동으로부터 해방이 될 것이라 말했는데요. 물론 실업자가 늘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반대편 극단에는 과로로 건강을 해치는 이들도 늘고 있어요. 백수 아니면 과로사. 왜 중간은 없을까요? 일에 대해 우리 사회는 너무나 양극단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그러지 말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의 직업에 24시간을 바치기보다, 취미 생활이나 독서와 공부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시간을 투자하라고 저자는 권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다음 편에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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