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ar 10. 2001년 미국 뉴욕, 필리핀 세부(Cebu)
테마 : MBC 자기주도 연수 + 해외 촬영
경비 : 전액 회사 지원
2000년에 연출 데뷔한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이 성공한 덕에 한 해에 두번이나 나갈 수 있었다. 하나는 자기주도 연수라 하여 회사에서 보내준 출장이고, 또 하나는 필리핀 세부에서 한 '뉴논스톱' 해외 촬영. 뉴욕으로 자기주도 연수를 가서 1주일간 좋아하는 뮤지컬을 실컷 보고 왔다. 쇼프로를 연출하는 예능 피디에게 브로드웨이 뮤지컬 관람은 최고의 연수다.
필리핀 세부로 간 '뉴논스톱' 해외 촬영은 시청률이 오른데 대한 팀 자체 보상이었다. 일주일에 5편씩 찍으려면, 매주 3일씩 밤을 새며 촬영하는데, 미니시리즈는 3개월이면 방송이 끝나고, 아무리 긴 사극도 6개월이면 끝난다. 그러나 논스톱 팀은 1년을 넘게 같이 고생했다. 그래서 스탭들 사기 진작을 위해 해외 촬영을 기획했다. 실은 며칠 해외 나가 놀자고, 한달을 고생했다. 한달 동안 매주 한 편씩 방송 분량을 미리 찍어 둬야 했으니까. 그래도 스탭들에게는 좋은 추억이었다. 세부의 리조트에서 조인성, 장나라 등 논스톱 주인공들과의 즐거운 휴가!
오늘의 여행 이야기 : 쇼를 하라, 너 자신을 위해.
예능 PD로 10년을 살면서, 나는 전세계의 쇼를 찾아다녔다.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 파리 물랑 루즈와 리도 쇼, 프라하의 인형극, 오사카의 코미디 쇼, 하노이의 수상 인형극까지... 하지만 이런 공연들을 자주 보긴 힘들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공연은, 제일 비싼 관광 상품들이니까. 주로 회사 경비로 출장갔을 때만 본다. ^^
배낭여행을 다니는 평소의 내게는, 길거리 공짜 공연이 최고다. 노래든, 마임이든, 마술이든, 나는 꼭 서서 구경하고 간다. '저 사람은 어떤 쇼로 내게 즐거움을 줄까?' 그러다 요즘은 이런 고민을 한다. '나는 어떤 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까?' 방송사 PD로 만드는 쇼가 아니라, 배낭여행자로서 현지인들에게 선사하는 쇼 말이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건 '지구별 사진관'이라는 책 덕분이다. 최창수라는 지구별 여행자가 몽골에서 중국, 인도, 네팔,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에티오피아까지 17개월간 여행하며 찍은 사진과 글로 채워진 책이다. 그는 이제 긴 여행에서 돌아와 방송사 PD로 일하고 있다. 쌀집 아저씨 김영희 선배의 경우도 그렇고, 피디 중에 여행 싫어하는 사람 없는 것 보면, 낯선 곳,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연출의 기본 소양인가보다.
책과 영화의 품 안에서 매일 매일 즐거운 하루~)
최창수 PD는 라오스나 파키스탄 같은 시골 마을에 가면, 아이들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준다. 사진을 접하기 힘든 그곳에서 즉석 사진은 참 좋은 선물이다. 그는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가는 길에 프랑스 마르세유의 공장에서 일하는 조프라는 친구를 만났다. 동네 아이들을 보자, 조프는 가방을 뒤져 뭔가를 꺼냈다. 비치볼이었다. 그는 여행 중 만나는 현지 아이들을 위해 무려 백여장의 비치볼을 가지고 다녔다. 그걸 그냥 아이들에게 던져주는게 아니라, 직접 불어서 아이들에게 줬다. 자신의 정성이 들어가야 진정한 선물이 될 수 있으니까. 비치볼 천사 조프... 정말 닮고 싶은 멋진 여행자다!
사실 나도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게 하나 있다. 요술 풍선 만들기다. 촬영 때문에 딸들과 시간을 자주 낼 수 없어 미안한 마음에 배웠다. 딸 유치원에 가서 딸아이 친구들을 위해 만들기도 했다. 언젠가 다시 여행을 떠날 때, 배낭에 가볍고 부피도 작은 요술 풍선을 가져가야지. 그러다 길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강아지나 사슴, 코끼리를 만들어줘야지. 어설픈 나만의 요술풍선쇼!
평생을 길거리 공연을 보며 배운 즐겁게 쇼를 하는 노하우 하나! 동전 몇 푼 바라고 끊임없이 행인을 쳐다보는 공연은 재미없다. 오래 즐기기 불편하다. 가장 재밌는 공연은, 저 혼자 신나서 하는 공연이다. 쇼를 하는 이가, 남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을 위해 쇼를 할 때, 가장 즐거운 공연이 나온다.
먼 훗날, 인도 바라나시 뒷골목에서 혼자서 신나게 요술풍선을 만들고 있는 한국인 할아버지를 만난다면... 주위를 둘러보기 바란다. 사진 속 내 딸이 옆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동전을 던져 줄 필요는 없다. 돈이 아니라,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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