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터키 여행 7일차


로마 시대 유적지인 에페수스를 보려고 셀축에 왔는데요. 에페수스만 보고 가기는 아쉬워 근처 작은 도시를 구경하려 합니다. 검색을 통해 고른 곳은 쉬린제와 쿠사다시. 터키의 버스 터미널에 가면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고요. 목적지가 버스 정면에 크게 써있습니다. 버스비는 현금으로 내요. 4리라 800원. (여행을 다녀보면 한국의 후불식 교통 카드와 버스 도착 안내 시스템이 그리워요. ^^)

셀축에서 7킬로, 버스로 20분 걸리는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아기자기한 산 속 마을이에요. 눈에 띄는 이정표가 없어 어디로 가야할지 애매하네요. 이럴 땐 어떻게 할까요?

저는 기념품 가게가 있는 골목길을 따라 걷습니다. 양옆으로 가게가 즐비한 거리를 걷다보면 어디든 통하거든요. 한국도 그렇지않나요? 산에파전 가게가 줄지어 서있는 길을 따라 가면 등산로가 나옵니다. 가게가 많다는 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이동 동선이라는 뜻이거든요. 

산비탈에 층층이 서 있는 테라스 하우스. 

작고 오래된 두 집 위에 연결 공간을 만들어 호텔로 개조한 공간

예전에 일밤에서 <러브하우스>를 연출한 때 어느 디자이너가 그랬어요. 네모 반듯한 평지에 지은 집은 재미가 없다고. 건물을 더 멋있게 만드는 건, 높은 언덕이나 작은 평수나 환경의 제약이라고요.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요? 

겨울에 쓸 땔감을 담 옆에 쌓아뒀어요. 우리도 예전에 광에 연탄을 쌓는 걸로 월동 준비를 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뒷골목을 산책하 화덕에서 벽돌을 굽는 아주머니를 봤어요.

다시 보니, 벽돌이 아니라 빵이네요. 오랜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이 반가웠어요.  

마을 입구에서 테라스 하우스 배경으로 사진 찍고, 노천 카페에서 잠시 놀다 떠났다면 이런 풍경을 못 보겠지요. 오래된 집에서 장작을 때고, 화덕에 빵을 굽는다는 건, 아직 불편을 감수하며 산다는 겁니다. 보기에 예쁜 오래된 집에서 살려면 그런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빵 굽는 모습이 신기해서 가만히 구경하고 섰더니 '하나줄까?' 하십니다. 손사래치고 웃으며 물러났어요.

근처에서 휴대폰으로 여행기를 메모하는데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카트를 가지고 아주머니가 구운 빵을 가져와 노점에 진열합니다.

물어보니 하나에 6리라, 1200원 하는군요. 하나 샀어요. 꽤 무거운데 한아름 품에 안고 있으니 따듯합니다. 


사람 머리만큼 큰 빵입니다. 아직도 따끈따끈 화덕의 온기를 품고 있어 빵을 품에 안고 앉아 멍하니 빵의 온기를 누립니다. 
'너의 온기를 내게도 나눠주렴.'

빵 맛은 살짝 낯설어요. 단 맛도 짠 맛도 없어요. 올리브나 식초, 혹은 버터랑 먹어야하는데 그냥 맨 빵만 먹으니 맛은 없군요. 마치 된장, 고추장, 아무런 반찬 없이 깡보리밥 먹는 느낌이랄까요?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마을 청년들이 나무를 하고 있어요.

깊은 산속에 있어 자급자족하는 습관이 길들었나봐요. 자연에서 모든 걸 얻습니다. 땔감도, 식량도. 

깊은 산 속에 어쩌다 이런 예쁜 마을이 생긴 걸까요?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여기에 터전을 처음 꾸린 건 15세기에 자유의 몸이 된 그리스 노예들이었답니다. 그들은 산속에 집을 지으며,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려고 마을 이름을 시르킨제 (못생긴 마을)Çirkince (Ugliness)라고 지었대요. 1926년에 이즈미르의 도지사가 이름을 바꿉니다. 쉬린제 (예쁜 마을) Şirince (Pleasantness)라고.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은 정반대의 이름.

해방 노예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산 속에 숨어 만든 마을 쉬린제. 선조들이 고생해서 마을의 터를 닦은 덕을 후손들이 보네요. 도지사의 탁월한 작명도 한몫했고요. 대만의 지우펀이 생각나는 마을이에요.

내가 있는 곳은 낙원일까요, 지옥일까요? 이름짓기에 따라 가지 않을까요?

다음엔 쿠사다시 여행기로 찾아올게요~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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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행맘 2019.01.03 0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터키 이야기 잘 들었어요^^ 유명한 관광지에서 끝날 수 있는데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되네요^^ 낯선 곳으로 갈 수 있는 용기^^ 대신 느끼고 갑니다^^

  2. 섭섭이짱 2019.01.03 0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르하바 (안녕하세요)

    아담하고 조용한 마을 같네요.
    피디님 아니었으면 몰랐을 마을이네요.
    검색해보니 와인이나 올리브로도
    유명한 마을인거 같네요.

    빵은 정말 크네요.
    왠지 제가 사진 찍으면 작을듯 하지만 ㅋㅋ
    쉬린제 기억해둬야겠어요
    여행기 잘 보고 갑니다.

    테쉐쿠르 에데림(감사합니다)

  3. 김수정 2019.01.03 06: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박하지만,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 이네요^^
    보통 자유여행을 가더라도 유명 관광지 위주로 둘러보고 오는데, 저렇게 깊숙하고 조용한 곳으로의 이동은 용기가 없다면 쉬이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벽돌처럼 생긴 빵 맛이 어떤지, 우리 나라에선 볼 수 없는 빵모양이라 정말 궁금합니다ㅎㅁ

  4. 아리아리짱 2019.01.03 0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오늘 또 에너지 얻어 즐거운 하루 되려고 합니다.
    터키여행 버킷리스트 이루는
    소망 간절해집니다.^^

  5. 보리보리 2019.01.03 08: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풍물패와 관광버스에 실려 음주가무하며 다니다보니 깊은산속인줄도 몰랐네요ㅋ 우왕~ 버스에 뒷골목...제대로 된 여행이네요. 아마 빵이 주식이라 우리밥처럼 밋밋할듯요

  6. 꿈트리숲 2019.01.03 0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글을 읽으니 미국 할머니 화가 '모지스 할머니'가
    생각나요. 할머니는 1800년대를 살았기에 똑같진 않지만
    빵을 굽고 나무 장작하는 게 비슷하네요.
    지금 눈으로 보면 더 불편하게 사는 모습이 오히려
    더 행복해 보이기도 합니다.

    산비탈에 층층이 있는 집들 풍경이 동화 속 그림같네요.
    이름 모를 장소를 찾아가는 용기가 쉬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피디님 여행기를 참고해서 저도 다음 여행때는 유명하지 않은
    그 나라의 일상으로 한번 들어가보고 싶어요.

    빵 맛이 궁금합니다. 단짠이 없는 맛은 어떤 맛일까...?

    저 예전에 터키어 몇마디 외워둔거 써먹을랬더니
    섭섭이짱님이 먼저 쓰셨네요.ㅎㅎ
    그래도 써먹어야 더 오래기억하겠죠.^^
    이이 귄레르~~(좋은 하루 보내세요^^)

  7. 카이리 2019.01.03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못생긴 마을에서 예쁜마을로~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설명을 듣고 나니 그리스 노예들의 정착기가 살짝이나마 머리속으로 그려지네요
    아파트 없는 정겨운 마을이 요즘은 참 그립습니다 ㅎ 너무 이쁜곳!!

    그리고 15년전 러브하우스 촬영 카메라팀에서 알바를 했었는데 신기하네요 ㅎ

  8. 따스한햇살이 따스해 2019.01.03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여행잘 했어요~다음편도 기다릴께요~^^몸 잘 챙기세요~

  9. 2019.01.03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사진들이 살아있습니다
    층층이 서있는 테라스 하우스는
    제 핸드폰 바탕화면으로 저장했습니다
    화덕에 도자기 굽듯 구운 벽돌 같이 생긴 빵도 탐스럽게 보여요
    제가 생각하던 터키의 이미지보다 실제가 더 아름답네요

  10. 오또기 쭘마 2019.01.03 1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축물과 사람들의 모습은 다르지만 삶의 모습은 저에게 익숙하네요.
    전형적인 전라북도 농촌 마을에서 농부의 딸로 자라
    초등학교때까지 아궁이에 지푸라기나 쌀겨로 불을 지펴서
    밥을 지어 먹었었죠.
    저희 동네는 논농사를 주로 짓는 평야지대라서
    나무가 귀해 나무로는 땔감을 할 수 없었거든요.

    시골이 좋아 서울에서 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양평에서도 산으로 둘러싸인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어요.
    겨울이면 유독 추운데 벽난로가 큰 도움이 되요.
    이곳은 아직은 많은 집들이 벽난로나 화목보일러를 이용하다보니
    겨울이면 집집마다 장작 쌓여 있는 모습을 볼수 있어요.
    저렇게 큰 빵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직접 농사 지은 고구마를
    벽난로에 구어 먹는 재미로 혹독한 겨울을 버티죠.

    비록 맛은 없어도 소박하고도 정겹게 보이는 이곳의 마을에 가서 뭉툭한 빵을 맛보고 싶네요

  11. 이채원 2019.01.05 0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저는 요즘 수능끝나고 친구들과 그리고 가족들과 한참 여행다니기 바쁜데 터키 여행도 꼭 가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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