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피디의 길
(이전에 '뉴논스톱' 연출 시절, 쓴 글입니다. '공짜 PD스쿨'을 위해 다시 올립니다.)
1부- 시트콤 피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부- 시트콤 피디는 어떤 일을 하는가
3부- 시트콤 피디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안녕하십니까,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의 연출가 김민식입니다.
저는 지금은 현업에서 시트콤을 연출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다양한 모습의 삶을 살았습니다.
흔히 공중파의 공채 피디로 입사하는 이들의 전형을 살펴보면, 중고교 학창 시절에 공부를 아주 잘하였으며, 나중에는 일류 명문대에서 언론이나 영상매체 관련학을 전공한 사람이 절대다수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그러한 방송국 피디의 평균에서 많이 벗어나는 (혹은 '모자라는'?)편입니다.
먼저 고교 시절, 저는 반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다 내신 15등급 중 7등급으로 졸업했구요.
다행히, 고교 막판에 미친듯이 공부한 덕에, 기적같은 학력고사 점수를 얻어 (혹자는 부정의 소지를 의심하지만... 저는 결백합니다!) 한양대에 입학하게 됩니다.
대학에 와서도 저는, 자원공학이라는, 방송과 전혀 무관한, 그리고 실제로 시트콤 연출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를 했더랍니다. 그나마 졸업할 때에는 3.0도 안되는 학점으로 취업문을 두드리다, 7개 회사에서 내리 서류 낙방하고, 한국 쓰리엠이라는 회사에 영업 사원으로 근근히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외판 세일즈에 청춘을 담보하고 일하던 어느 날, 불현듯 샐러리 맨으로서의 미래에 회의를 느끼고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프리랜서로서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그나마 조금 자신있던 영어 실력으로 승부를 내겠다는 생각에, 외대 통역대학원에 지원했지요. 95년에 통역대학원 한영과에 입학하여, 쟁쟁한 영어 실력자들과 감히 겨룰 때까지만 해도 저의 목표는, 공학적 기본기에 영업 마인드를 갖춘 동시통역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 여기까지 보면, 저는 시트콤 피디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인생의 반전은 엉뚱한 발단에서 시작되더군요.
일천한 실력의 국내 독학파 영어를 과시하던 제가, 통역대학원에서 가장 고전한 부분은 미국식 생활 영어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찾던 중, 당시 AFKN에서 방송하는 시트콤을 보면서 구어체 영어 표현을 좀 건져보자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리하여 저는 매일 저녁, Seinfeld (지금 저의 인터넷 아이디가 되었죠.)나 Friends (나중에 남자셋 여자셋이나 지금의 뉴 논스톱 같은 청춘 시트콤의 모델이 된 불세출의 명작) 같은 미국 시트콤을 열심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알수없는 미국식 유머에 방청객들의 웃음이 터지는 장면을 보며, 그게 왜 웃기는지 알 수 없어 저의 짧은 청취력을 한탄하며 끈기있게 지켜봤죠.
몇달이 지나니까 그게 영어 표현이 안 들린 탓도 있지만, 시트콤이 주는 웃음의 포인트를 몰랐기에 웃기지 않았다는 걸 알겠더군요. 어쨌든 저는 '미국 시트콤을 보면서 미친듯이 웃어볼수 있는 그날까지!'라는 목표를 세우고 불철주야 시트콤 시청에 매진했습니다.
본말전도라는 표현이 있지만... 그렇게 영어 공부를 위해 몇년간 시트콤 시청을 즐기던 제가 막상 통역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에는 시트콤이라는 쟝르의 광팬이 되었습니다. 한국 TV 드라마는 전혀 보지도 않던 제가, 미국 토종 쟝르인 시츄에이션 코미디에 중독된거죠.
항상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믿고 살던 저, 결국 딸리는 영어 실력에 통역사로 승부하며 살기보다는, 좋아하는 시트콤 한번 해보자하는 생각을 품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한국 최초의 본격 시트콤 연출가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문화 방송 PD 공채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죠... (제가 입사한 96년, 청춘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은 아직 방송가의 주류로 입성하기 전이었구요. 한국산 본격 시트콤 '순풍산부인과' 역시 시작하기 전이었죠. 입사하고 나서 보니, 이미 송창의 PD나 김병욱 PD같은 걸출한 선배님들이 업계에 포진하고 있더군요. 미리 알았더라면, 그냥 통역사나 하는건데...)
시트콤 피디의 꿈을 안고 방송계에 들어온 민시기, 정작 입사후에는 파란만장한 생활을 좀 했습니다. 제가 가요 프로 순위 촬영하러 다니는 동안, 청춘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은 송창의 PD라는 대가의 손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구요. 저는 연예 정보 프로에서 파파라치 피디가 되어 탤런트 스캔들 추적에 청춘을 불사르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는 오더군요. 시트콤 매니아라고 여기 저기 떠들고 다닌지 3년, 회사에서는 신생 청춘 시트콤 '점프'의 조연출을 제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웃긴다는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정말 많은 시챙착오를 겪었습니다. 야외 촬영하고 온 것을 밤새 편집하고 다음날 방청객들 앞에 틀어놓고, 선배 피디님들과 작가와 둘러 앉아 보다 민망해서 얼굴 화끈거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고는 물론 말 못하지요... 흘.)
그렇게 '점프'와 '점프 2'에서 조연출을 하다 '가문의 영광'이라는 시트콤을 하며 시트콤 제작의 어려움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으며 일하던 저는, 결국 청춘 시트콤 제작진에서 빠지면서, '아, 나의 시트콤 사랑은 이렇게 짝사랑으로 끝나는구나.'하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죠. 시트콤 연출가의 꿈, 역시 쉬운건 아니었습니다.
끈기있게 기다리는 이에게 기회는 다시 한번 찾아오더군요. 2000년 7월 청춘 시트콤 부진의 늪에서 헤매던 MBC는 마지막 카드로'뉴 논스톱'을 출범시킵니다. 그리고 회사는 저에게 다시 한번 조연출의 기회를 주시더군요.
당시 저의 각오는 자못 비장했습니다. '이번에 청춘 시트콤 망하면 이제 두번 다시 시트콤 못 맡겠구나... 아니 시트콤이라는 쟝르가 시청자들에게 재미없는 쟝르로 낙인찍히겠구나... 그래, 목숨걸고 좋아한다고 떠들던 시트콤, 이제는 목숨걸고 만들어 보자'하는 각오를 다졌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개성있는 연기자(양동근 박경림 이민우 이재은 등)들의 캐릭터가 다져지고, 이후 조인성, 장나라, 김정화, 정다빈같은 재능있는 신인들을 캐스팅하면서 자리를 굳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연출로 야외 촬영을 전담하던 저는 2001년 봄, 뉴 논스톱의 연출로 입봉하면서 본격 시트콤 연출가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취미로 시작한 시트콤 시청이 시트콤 연출이라는 업으로 이어지게 된 거죠.
시트콤 연출가로서 요즘, 저는 참 행복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직접 하고 있고, 또 그 결과물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으니까요.
시트콤 피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 제1 자격요건이요?
시트콤을 미친듯이 좋아하는데서 시작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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