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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25 짝사랑은 나의 힘 (19)

짝사랑은 나의 힘

2018. 5. 25. 06:17

저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었어요. 내신등급이 15등급에 7등급입니다. 성적은 반에서 중간 정도를 맴돌았지요. 3학년 1학기 중반에 모의고사를 봤는데 50명 중에서 22등을 했습니다. 진학상담을 했더니 제 성적으로는 서울로 올라가기 힘들더라고요. 무척 우울했어요. 집에서는 아버지에게 공부 못한다고 맞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어요. 아이들이 저의 외모를 비하해서 만든 별명이 있는데, 집근처 대학에 진학하면 그 별명이 계속 저를 쫓아다닐 것 같았어요. 아버지와 고향 친구들에게서 달아날 수 있는 길은 서울로 대학을 가는 일이었어요. ‘남은 6개월 동안 죽었다 생각하고 미친 듯이 공부하자. 그것만이 살 길이다.’

마음먹는다고 공부가 술술 되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 않다는 건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어요. 성적이 안 나오면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았어요. 그럼에도 공부가 잘 되지는 않더라고요. ‘매 맞기 싫어서’ ‘출세하지 못할까봐’ 이런 부정적 동기부여는 사람을 위축시키고 지치게 합니다. 긍정적 동기부여가 필요해요.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있었어요. 서울에 사는 그 여학생을 생각하며,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녀를 만나러 서울로 가자’고 결심했지요. 그녀의 사진을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주의가 흐트러질 때마다 사진을 보며 다짐했지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곧 서울로 올라가 찾아갈게요.’

고교 시절 제가 짝사랑하던 소녀는 당시 하이틴 모델로 활동하던 채시라였어요. 나와 동갑인 여고생 채시라가 활짝 미소를 짓는 초콜릿 광고를 보고 사랑에 빠졌지요. 잡지에서 광고를 정성껏 오려내어 독서실 서랍에 넣어뒀어요. 경상도에 사는 내가 채시라를 만날 수 있는 길은 서울로 대학진학 하는 일 뿐이라 믿고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공부가 안 될 때는 채시라의 사진을 보며 시를 쓰기도 했어요. ‘나의 마돈나여’ 어쩌고저쩌고. 부치지 못한 팬레터는 독서실 책상 앞에 붙여뒀어요. 힘들 때마다 나의 결심을 독려하는 용도였지요. 



머리 싸매고 공부한 끝에 학력고사를 보니 반에서 2등을 했어요. 6개월 만에 학급석차 22등이 2등이 되자, 학교에서 난리가 났어요. 컨닝을 했니, 찍었느니 말들이 많았지만, 저는 조용히 사진 속 그녀를 보며 웃었어요.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나를 성장시키는 최고의 동기부여는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저 멋진 사람에게 어울리는 내가 되어야겠어.’ 이런 다짐 하나로 우리는 힘들어도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일을 합니다.

대학에 진학하고는 정작 채시라씨를 감히 만날 생각을 못했어요. 숱한 소개팅 미팅에서 차이면서 저의 현실을 자각했거든요. 동아리 후배한테도 차이는 내가 어찌 감히 만인의 연인에게 들이댈 수 있겠어요. 첫 눈에 반한 대학원 후배를 쫓아다니다 결혼한 지 벌써 20년이 되어갑니다. 광고 속 채시라의 모습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고요, 외모가 볼품없는 저를 남편으로 맞아준 아내에게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2012년 MBC 노조 집행부로 170일간 파업을 한 이래, 7년 가까이 드라마 연출이라는 현업에서 배제되어 살았어요. 작년 한 해, 파업을 통해 MBC가 정상화되고 그 덕분에 올 1월에 MBC 드라마국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업무 복귀한 첫 주에 드라마국 부장님이 제게 메일을 보냈어요. ‘드라마 복귀를 축하합니다. 좋은 대본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배우 채시라 씨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작품입니다.’

7년만의 드라마 복귀작을 30년 전의 짝사랑과 함께 하게 되었군요. 내일부터 방송될 MBC 주말특별기획 ‘이별이 떠났다’ 테스트 촬영을 하면서 조연출에게 속삭였어요. “내가 채시라에게 큐 사인을 주고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만들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이별이 떠났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45분 4회 연속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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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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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경어뭉 2018.05.25 0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바로 내일이네여~ 너무기대됩니다!
    이별이떠났다! 대박기원! 화이팅입니다^^!!!

  2. vivaZzeany 2018.05.25 0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멋!! (어뜨케어뜨케~~~)
    학창시절 짝!!!!사랑과의 기막힌 재회를 축하.....드리는 게 맞겠죠???
    PD님을 서울로 오게 하신 그 분께 큐사인이라니~ 큐사인이라니~~~
    ^__________^
    내일의 방송 즐거운 마음으로 보겠습니다.
    본방사수는 어렵겠지만, 꼭 볼겁니다!!

  3. 박혜경 2018.05.25 0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님 감동입니다. 기대되고요. 드라마 챙겨보기엔 너무 게으른 저이지만 궁금해서 꼭 봐야겠습니다.

  4. 보리보리 2018.05.25 0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푸하핫~~사랑의 힘 한번더 보여주시겠네요 ^.~

  5. 쿨한 인생 2018.05.25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쉬! PD님 인생은 버라이어티하네요
    드라마가 꾸준한 관심으로 만족할만한 시청률이 나오길 바래요
    피디님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 채시라씨가 여주인공이 되었나보네요

  6. 노이빗 2018.05.25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로 접했지만, 직접 적어 두신 글을 보니 감동이 더 짠하게 다가옵니다. 피디님의 '역전의 사례' 는 늘 우리같은 평범한 쫄보들에게 감동과 '할수있다' 는 자신감을 줍니다. 그런데, 고3때 몇 개월 죽어라 열심히 공부해서 반전을 일으킬 수 있는 그 '역전의 시대' 가 완전히 저문건..너무 슬프네요. 어쨌든 장안의 화제였던 '누나' 드라마가 끝이 나고 갈 곳 없어 헤매이는 차에 딱! 피디님 드라마 시작하니 토요일엔 '이별이 떠났다' 에 탑승하겠습니다. 본방사수!

  7. 아리아리짱 2018.05.25 1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ㅎㅎㅎ!
    pd님 의 첫사랑과의 작품 기대 할께요!

  8. 두리 2018.05.25 1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반전이네요. 소나기의 여주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전pd님이 외모 얘기할 때마다 이해가 안가요. 직접 뵈었을때 반짝반짝하시고 큰 눈에 멋지셨는데....드라마 대박나세요^^

  9. 설찬범 2018.05.25 14: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일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시청률 잘 나오길 빌겠습니ㄷ

  10. littletree 2018.05.25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피디님 글에서 감동받고 미소 짓고 갑니다. 감사해요! 내일 드라마 잘 볼게요~♡

  11. 귀차니 2018.05.25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은 남기지 않지만 매일 블로그에 와서 쓰신 글을 읽고 있습니다.
    가끔은 추천해주신 책도 찾아서 읽어보고요.

    전 TV 시청을 거의 안하는 편인데요. 이번 PD님 드라마는 챙겨보겠습니다.
    저한테 글과 행동으로 항상 긍정적인 영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12. 정지영 2018.05.25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짝사랑 상대에게 큐사인을 줄때 얼마나 떨릴까요?
    으으으 생각만해도 두근두근 하네요.
    내일 모두 TV앞에 모여있는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피디님도 누군가에게 롤모델이 되어 동기부여 팍팍 하실거라 생각됩니다. '이별'과 어떻게 하면 잘 헤어질 수 있을지 해답 기대할께요.^^

  13. 섭섭이짱 2018.05.25 2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6개월만에 22등이 2등된 얘기에 놀랬고
    채시라씨와 피디님이 동갑이라는 얘기에 한번 더 놀랬네요. ㅋㅋㅋ

    앞으로 10주동안 김민식 선장이 이끄는
    멋진 항해를 같이 가보렵니다.
    믿보연 김민식 피디 파이팅~~~~~

    #이별이_떠났다
    #526_2045
    #D-1
    #첫방송_카운트다운_23:59:59
    #본방사수

  14. 왕팬 2018.05.26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의 글을 보면서 님처럼 잼나게 살고 싶네요드라마 잘 볼께요
    영어책 한권 꼭 외우리라 다짐 합니다

  15. Ms. Out of Office 2018.05.27 04: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같은 짝사랑 스토리~ 드라마 잘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팅!

  16. 응원합니다 2018.05.30 0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버지에게 성적으로 맞았고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는게 마음이 아프네요. 어릴 적 일들은 상처가 더 커지던데... 잘 감추신 것 같아요. 그런데도 완전히 아물어지지는 않지요?

  17. 2018.06.01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8. 마포해피밀 2018.07.07 0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님 대단하세요. 트라우마가 생길법한 기억들일텐데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춤과 영어를 통해 극복하셨나요? 아무튼 빚을 지셨으니 채시라씨에게 보답하세요!

  19. Rudiasong 2018.10.20 0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같은 사연입니다.이별이 떠났다 재밌게 봤어요.정말 깊은 드라마였어요.짝사랑하던 채시라씨와 함께 드라마를 하신 감회가 남다르셨겠어요.멋진 사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