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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05 글쓰기의 본령은? (8)

2016-230 서서비행 (금정연)

서평가 금정연님의 책을 읽고 문득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글을 쓸까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씁니다. 

'애초에 문학이란 여자들을 꼬시기 위해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근대문학은 그렇다. 근대문학의 종말이란 소설이 음악 및 기타 예술에 밀려 더 이상 여자를 꼬시지 못하게 된 현실을 고상하게 표현한 것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일했던 작가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돈이 되거나 말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돈도 안 되는데 왜 글을 쓸까? 커트 보네거트는 작가가 되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는가!'

-'문예창작을 위한 충고' [나라 없는 사람] 31

 

예전에 정말 좋아하는 후배가 있었어요. 예쁜 아이인데 나를 만나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짠돌이라 비싼 물건을 사지는 못하겠고, 어떡할까... 끙끙거리다 어느날 노트를 한 권 사줬어요. 빈 노트를 사서, 거기에 후배를 향한 연애시를 썼어요. 니가 좋은 이유, 너를 기다리면서,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등등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 죽어버릴 것 같은 그런 시들을...

약속 장소에 매번 30분씩 일찍 나가 기다리는 동안 시 한 편씩 썼어요. 오면 시를 한 편 보여주고, 오면 또 보여주고... "너를 위한 시들로 노트 한 권을 가득 채울 거야!" 그랬는데... 막상 다 채우지는 못했어요. 네, 한 권 다 쓰기도 전에 그 후배가 저의 청혼을 받아들였거든요. 결혼하고 나니 시가 더 이상 안 나오데요. 흠흠흠.... 

아내는 왜 나랑 결혼해줬을까? 시를 읽고 감동해서라기보다는... 너무 오글거려서, 이런 미친 짓을 끝없이 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나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불쌍해서 해준 것 같아요. ㅋㅋㅋ

읽을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면 못 썼을 것 같아요. 나는 시를 쓸 때 내 마음만 생각했습니다. 좋아한다는 말은 너무너무 하고 싶은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하나 미칠 것 같던 내 마음만.

영화 감독 우디 알렌은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문학적인 글을 쓸 때는 하면서 반드시 스스로 즐거워야 해요. 왜냐하면 반응을 알 수가 없거든요. (...) 하지만 연극이나 영화는 실제로 관객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좀 더 보다 생생한 반응이죠. 그리고 작품을 본 사람들을 끊임없이 마주치죠. 글 쓰는 것보다 영화를 만드는 게 훨씬 별로예요." 

이글을 읽고 금정연은 이렇게 쓰지요.

'무엇보다 나는 카메라 뒤에서 낄낄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마치 글을 쓰듯, 관객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노감독의 모습을. 근사하지 않은가? 비록 그 영화가 보는 이들의 입을 씁쓸하게 하는, 다소 짖궂은 농담 그 자체라고 하더라도.'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드라마를 연출하던, 오로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예술의 본령이니까요.

 

ps.

'서서 비행'을 읽었더니,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늘어나버렸어요. 대만 여행 중에 읽었는데, 얼른 돌아가 책을 읽고 싶어 근질거릴 지경이었어요. 심지어 숙소에 앉아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미리 책을 예약하기도... 

책을 읽긴 읽어야겠는데,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은 분은 이 책을 먼저 읽어보세요.

 

'그리하여 나는, 읽지 않은 책이 가득한 책장에 오늘도 몇 권의 책을 꽂는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꿈꾸게 하는, 즐거운 독서의 가능성으로 충만한 일종의 스피노자적 행위. 사과나무엔 언젠가 열매가 열리기 마련이고, 종말은 아직 멀다.'

금정연이 추천한 책의 목록을 하나하나 메모장에 추가합니다.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불쑥 늘어났어요. 그래요, 아직 종말은 멀었고,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난 만큼 살아야할 이유가 늘어났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삽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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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첨밀밀88 2016.12.05 1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의 글은 한편의 시 같은 느낌이 듭니다 ㅋㅋ

  2. 첨밀밀88 2016.12.05 1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 그리고 연애담 부분에서
    아니 피디님이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이렇게 쓰시나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사모님 얘기라 안심했네요 ㅋㅋ

  3. 토토 2016.12.05 1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모장에 글목록이 줄지는 않고 자꾸 늘어나네요. 서서비행 추가요 ^^

  4. 섭섭이 2016.12.05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태그에 써주신 것처럼 연애스쿨이면서 글쓰기 교실이 되었네요. ^^
    가끔 PD님이 올려주신 연애이야기를 읽다보면 사모님을 정말 사랑하셨다는걸 알게 되면서,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기뻐요. 당연히 지금도 10002 사랑하시는거 같아서 더 좋아보이고요. 연애에 대해서 읽으면서 많이 배웁니다.

    소개해주신 "서서비행"은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 김민식pd 2016.12.05 1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해피엔딩만 기록하니까요.
      그전에 차이고 또 차인 흑역사는 이제 잊어버렸어요. ^^

      마님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결혼상대로서 저를 선택한 그 결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혹시라도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5. 양갱 2017.05.09 0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저 좋자고 의식의 흐름대로 내키는대로 에세이를 끄적일 때가 있는데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가끔 이게 뭘 말하고 싶은건지 무슨말인지 모를 때가 있어요. 이건 저 혼자만의 메모라 그런다한들 관객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예술을 할 때도 본령을 따라가야하는건가요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