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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2.10 행복을 부탄해 (9)

'인생도처유상수' 우리 삶 가는 곳마다 숨어있는 고수가 있다, 라는 뜻이지요. 책에서 스승을 만나지만, 저는 때로 저보다 어린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가르침을 얻기도 합니다. 2013년, 두 사람의 청춘이 있어요. 한 사람은 취준생이고, 한 사람은 대학원을 그만두고 방황하는 중입니다. 취준생이 그래요. 

"카페에 앉아서 신세한탄만 하고 있으면 뭐해? 그럴 시간에 산이나 가자!"

산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본 서울은 장난감 마을 같았다. 사는 거, 생각보다 별거 아니구나. 우리는 참 작은 존재구나. 그 느낌이 좋아서 우리는 매주 산에 갔다. 서울에 있는 산을 섭렵하고, 교외로도 나갔다. 산을 오르며 우리가 지나친 나무만큼이나 무수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 부탄 이야기가 있었다. (중략)

"히말라야 산자락에 부탄이란 나라가 있대. 불교 국가인데, 가난한데도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한다는 거야. 한번 가보고 싶지 않아?"

(<행복을 부탄해>(조은정 / 도서출판 답) 17쪽)

저 역시 2013년에 우울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첫 책<공짜로 즐기는 세상>을 낼 때 팟캐스트 녹음이며 유튜브 편집을 도와준 은정님과 친해졌어요. 그가 취준생 친구와 함께 다닌다는 산행도 쫓아가곤 했어요. 당시 저는 두 사람의 진로 고민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 요즘 청춘들은 어쩌면 기성세대보다 더 힘든 시기를 살아가고, 그래서 더 현명한 해법을 찾아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산행을 즐기고 여행을 즐기던 두 사람은 결국 부탄에도 갑니다.

 

한국에서 못 찾은 행복, 고작 며칠간의 여행으로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들떴다. 마치 부탄이 행복의 비밀을 엿보게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 떠나기 반년 전, 우리는 부탄 바람이 들어 아주 조금 행복에 다가섰다. 여행을 준비하던 중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존나 멀리 있는 것이다.'

머릿속에 종이 뎅 하고 울리는 기분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행복해지려면 떠나야 해. 그것도 아주 멀리. 적어도 부탄 정도?

(위의 책 24쪽)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벗어나 거리감이 필요합니다. 내 삶을 조망하려면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어야 해요. 나름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이지만 부탄에 가 본 적은 없어요. 부탄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모아보면 무슨 전설 속의 도시 같아요. 범죄자가 없고, 거지가 없고, 불행한 사람도 없다는... 이게 사실인가? 싶지요.

1970년의 부탄 1인당 GDP는 212달러, 한국은 255달러였다. 지금, 부탄은 3천 달러가 채 되지 않고, 한국은 3만 달러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부탄 정부의 정책이 훌륭했다고 볼 수 있는 걸까?

이 의문을 해소하려면 남아시아 나라들과 비교해봐야 한다. 70년대 부탄과 주변 국가들의 빈곤율은 50% 정도로 비슷했다. 지금, 남아시아 나라들의 빈곤율은 30%인데 부탄의 빈곤율은 12%다. 이 수치로 보면 부탄의 경제발전은 성공적이었다. 부탄의 빈곤율이 낮아진 이유는 빈곤층 퇴치를 중심으로 성장전략을 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주변국들에 비해 빈부격차 문제가 크지 않고, 사회갈등도 덜하다. 

(위의 책 39쪽)

경제성장의 딜레마지요. 성장과 분배, 무엇을 우선시할 것인가? 부탄을 아직 가본 적이 없어요. 자유 여행이 안 되고, 국가에서 일괄 통제하는 여행 상품은 인근 국가에 비해 가격이 은근히 비싸거든요. 여행 산업을 국유화한 건 그 수익을 골고루 배분하기 위한 정책이 아닐까 싶네요. 

높은 절벽에 위치한 탁상 사원에 가기 전, 저자 일행이 가이드와 말씨름을 하는 장면이 있어요. 추가 요금을 내면 말을 타고 산을 오를 수 있어요. 손님은 모두 말을 타려고 하는데 가이드가 강경하게 반대하고 나서요.

가이드 : 말을 타는 건 죄를 짓는 거야. 업을 쌓는 거라고!

손님 : 인생이란 원래 업을 쌓는 거 아닐까? 여행하는 것도 그렇고...

가이드 : 그러니까 업을 굳이 또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손님: 하지만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못 올라갈지도 몰라.

가이드 : 그렇지 않아. 너 자신에게 믿음을 가져. 

 
(위의 책 218쪽)


이런 실랑이 처음 봅니다. 여행가면 대부분의 가이드는 손님이 한푼이라도 더 쓰게 하려고 영업을 하지요. 옵션 투어를 권하고, 기념품 쇼핑을 권하지요. 그래야 커미션이 떨어지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말을 생각해서 돈 쓰는 걸 말리는 가이드라니, 이런 가이드 처음 봅니다. 불교국가로서 온 국민이 신앙인의 자세로 산다는 게 놀랍습니다. 부탄에서는 낚시와 사냥이 불법이랍니다. 재미로 살생하는 걸 금한다고요. 말못하는 짐승까지 이렇게 살뜰하게 살피니, 내 주위에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빈곤 퇴치가 국가 정책의 일순위인 것도 당연하지요. 

모두가 더 많이 벌려고 노력하다, 다 같이 불행해지는 세상입니다. 없는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에, 있는 사람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이럴 더 적게 바라고 공평하게 나누며 사는 부탄의 행복이 살짝 부러워지는군요. 행복을 찾기 위해 훌쩍 떠나는 지혜로운 네 친구의 이야기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다시 배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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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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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업사랑 2018.12.10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행복을 미래에만 두고 사는 것 같습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은 참아라" 우리가 가장 많이 하고 듣는 말입니다.
    지금 행복할 수 없다면 평생 행복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족하지만 오늘도 행복할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 섭섭이짱 2018.12.10 0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피디님 주변에는 능력자들이 많으셔요. ^^
    소개해주신 이 문구는 정말 ㅋㅋㅋ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 멀리 있는 것이다.'

    저자분 인스타그램 가봤는데
    행복하게 사시는분 같네요 ^^

    저도 함 부탄 가보고 싶었는데
    이 책으로 미리 경험해봐야겠어요.

  3. 보리보리 2018.12.10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행복은 ♬♩♪ 졸라 멀리 있다더니 맘대로 해석했네요 ㅎㅎ 저는 성장보다는 분배에 한표입니다. 모은돈 쓰지 않으면, 더 모으고 싶은 욕망의 덫에 갇힌다네요.

    6년간 집에만 있던 제 큰딸아이가 삽화 그린 책이 나왔어요. 도서관서 꼭 보세요~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
    http://m.yes24.com/Goods/Detail/67211388

  4. 꿈트리숲 2018.12.10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한의 배려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정의의 원칙을 부탄은 지키나 봐요.

    우리보다 물질적 풍요면에서는
    뒤처질지 모르지만 그대신 그들은
    정신적 여유를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진짜 지금 행복한지. . . 생각해보게 하네요.
    욕망을 반으로 줄여도 난 행복할까?
    의문이 들면서 부탄의 행복 비결은
    정의의 원칙을 제대로 실천한 결과인 듯 싶어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5. 꿍이맘 2018.12.11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피디님의 영어책과 써봤니 모두 읽고 블로그에도 들어와 봤습니다. 책과 올리신글 모두 잘 읽고 있습니다^^
    이 책에 관한 질문은 아니지만 피디님 독서법? 에 관한 질문이 있어서요. 전 책을 읽을때 줄을 긋거나 낙서하는 습관이 있는데요. 도서관 책 대여해서 보실때 독서노트는 어떻게 작성하시나요?
    책구매가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렇게 책이 계속 쌓여도 될까 싶어서요 저희집이 대궐도 아니고 ㅠㅠ
    조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6. misspia 2018.12.12 2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가 띵하고 얻어맞은 기분이예요
    약자를 혐오하는 세상이니만큼 약자들을 살피는 마음 가짐을 가져야겠어요

  7. 산타리 2018.12.13 0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 은정이랑 같이 등산 다니던 산타리예요ㅋㅋ 저는 그 때 취준생 시절을 잘 보낸 덕분에 직장인으로서 잘 살고 있습니다. 책 나왔는데 이렇게 서평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8. 2018.12.18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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