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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21 저자 친필 싸인본 이벤트 (9)

저는 글씨를 참 못 씁니다. 오죽하면 어릴 적 친구들이 '토룡체의 창시자, 김민식 선생'이라고 놀렸겠어요. 종이 위에 지렁이가 구불구불 기어갑니다. 중학생 때는 서예학원의 펜글씨반도 다녔지만 소용없더군요. 악필도 불치병인가봐요.

 

필체는 저의 진로도 막았어요. 아버지는 "글쓰는 직업을 하고 싶다고? 니 글씨로 문과에 가면 굶어죽기 딱 좋다. 너만 알아보는 글씨로 어떻게 일 할래?"하시며 문과로 가고 싶다는 저의 소망을 꺾었습니다. 컴퓨터가 제대로 쓰이기 전의 일이었지요. "글씨가 엉망이어도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딱 하나 있다. 그게 의사야."

 

고교 시절, 정말 우울했어요. 이과생의 몸 안에 갇힌 문과생... 성적은 나날이 떨어지는데 답이 보이지 않았어요. 의대 갈 성적이 안 되니, 공대를 가야하는데, 그것도 적성에는 안 맞고. 수업 시간에 멍하니 딴 생각만 하면서 보냈어요.

 

 

작년 말, 새 책을 준비중이라는 얘기에 회사 후배 PD가 그랬어요.

"형, 이번에 책 내그 저자 싸인은 좀 바꿔요."

"내 싸인이 어때서?"

"형 싸인, 너무 유치하고 구려요. 좀 더 품위있는 걸로 바꿔요."

 

후배가 유치하다고 타박하는 싸인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고교 시절, 우울한 날이면 몽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저는 평생 책만 읽으며 살고 싶었어요. 그러다 언젠가 책을 내는 게 꿈이었어요. '가만, 책을 쓴다면, 저자 친필 싸인이 필요할 것 아닌가?' 그래서 수업 시간에 끙끙거리면서 싸인을 만들었어요. 여러개를 만들고 지우고 만들고 지우고 그러다... 문득 제 이름을 보니, 위아래 자음에 모음은 세 글자가 똑같더군요.

 

세 번 반복 되는 모음은 하나 생략하고, 자음을 늘어놔봤어요.  ㅁ이 두개... 두개의 미음을 나란히 붙여보니, 안경을 쓴 제 눈 같았어요.

 

 

 

ㄱ으로 앞머리를 휘날리고, ㅅ과 ㄱ을 날려서 코와 입처럼 그려봤어요. 만화 주인공은 눈으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슬프거나 웃거나 눈으로 표현합니다. '내 비록 지금은 울고 있지만, 언젠가는 웃으며 살리라.' 그런 소망을 담아 웃는 눈을 그려넣었어요. 

 

왕따로 살던 제가 고교 시절에 만든 유치한 싸인입니다. 나이 50이 된 지금의 저와는 어울리지 않지요. 그럼에도 이 싸인을 버릴 수가 없네요.

 

 

매일 책을 읽습니다. 한 권을 못 읽을 때도 있고, 한 권을 더 읽을 때도 있어요. 중요한 건 이게 어린 시절의 저의 꿈이었다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 책만 읽어도 좋겠다... 그리고 매일 아침 5시가 되면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어른의 삶은, 어린 시절 나를 위한 선물이에요. 힘든 시절의 내가 꿈꾼 삶, 그 꿈을 이뤄주고 싶습니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인터파크'에서 저자 친필 싸인본 행사를 하고 싶다고. 싸인을 해줄 수 있냐고요. 약간 망설였어요. 워낙 악필이라 기껏 하고도 '무슨 작가 싸인이 이렇게 성의가 없고 유치해? 집에 있는 초딩 딸이 대신 한 거 아냐?'할까봐서요... 제가 집에서 몇날 며칠이고 끙끙거리고 앉아 싸인을 하는 걸 보고 민서가 대신 해주겠다고 나선 적도 몇 번 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민서야, 이건 아빠가 어린 시절부터 꾸었던 꿈이야. 절대 양보할 수 없어."

 

5일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싸인만 했습니다. 만년필 리필 잉크만 여섯개를 썼고요... 책마다 들어간 메시지는 조금씩 다릅니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를 쓰기도 하고, 독자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질문을 띄우기도 했어요. 어떤 글귀를 썼는지는 싸인본을 받으실 분을 위해 비밀로 남겨두겠습니다.

 

 

아래의 링크에 가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저자 친필본을 주문하실 수 있습니다. <어린 왕자 - 영문판>과 <그레이트 스피치>도 함께 선물하는군요. (각 포인트 300원)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shopNo=0000400000&sc.prdNo=267195929

 

 

우울한 공대생이 영어 공부로 인생을 바꾼 이야기가 책 한 권으로 나왔고요. 우울한 시절의 몽상이 남긴 싸인이 책 속에 담겨있습니다. 제 꿈을 이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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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race 2017.04.21 0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싸인을 처음 받았을 때 굉장히 독특하고 멋진 싸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 책을 받으시는 독자들도 피디님 싸인이 있어서 설레하면서 책을 기다릴 것 같아요. 항상 꿈꾸었던 일들을 하나씩 이루시는 모습이 멋지세요!

  2. 섭섭이 2017.04.21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사인에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래서, 바로 책을 꺼내서 사인을 다시보니 웃는 눈이 보이네요. ^^ 정성들여서 하신 친필사인본이니만큼 금방 소진될거 같은데, 구매하실 분들은 빨리 서두르셔야 할거 같네요.

    앞으로도 원하시는 꿈들 꼭 이루길 바라겠습니다. ^^

    • 김민식pd 2017.04.23 06: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쩜 섭섭이님은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쏙쏙 하시는지... 누가 보면 그러실 것 같아요. 혹시 김피디가 섭섭이라는 아이디로 글 달고 있는 거 아냐? ^^

  3. 동우 2017.04.21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세지가 궁금해서 사게되는 마력이 있네요
    진짜 미음 두개가 눈모양이었네요
    영어책 한권 외워봤다에는 저희들 싸인도 같이 할수있으면 참 좋겠어요

  4. nays44 2017.04.22 0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오랜만에 찾아왔어요ㅎ
    안그래두 새 책 소식보고 내일 서점갈랬는데, 인터파크로 향해야겠네요!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 재밌게 잘 읽을게요!

  5. 2017.04.24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김민식pd 2017.04.25 0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회화 암송 공부는 영어 작문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일단 말을 틔우면 그 다음에는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이 가능하니까요.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