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 했던 트레바리 독서모임에 올린 발제문입니다. 읽고 여러분도 글 마지막에 나오는 질문에 대해 한번 고민해보시어요.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을 읽다가 생각해봤어요. 자본주의에서 돈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집니다. 인플레이션은 자본주의의 숙명이니까요.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건 둘 중 하나입니다. 자산의 가치를 키우거나, 자신의 가치를 키우거나. 첫째는 인플레이션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줄 좋은 자산을 모으는 것이고요. (어떤 자산이 좋은 자산인가? 그걸 알기 위해 우리는 재테크 공부를 합니다.) 둘째는 노동 시장에서 자신의 상품 가치를 키워 나의 임금 상승률이 인플레이션을 상회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걸 위해 우리는 자기계발서를 연이어 읽고 있습니다.) 둘 중 하나를 우선해도 좋고, 둘 다 해내도 좋습니다.
오늘은 자신의 가치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해 볼까요? 과거에는 남성이 노동 시장의 임금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했어요. 육체적인 힘이 필요한 노동이 많았으니까요. 기계와 로봇이 등장하면서 그런 경쟁우위가 깨졌습니다. 세상의 변화는 노동 시장에서 가치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인공지능과 로봇이 활약하는 시대에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창의성을 키운 사람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창의성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창의력은 미래 사회를 발전시킬 가장 큰 성장 동력이라 일컬어집니다. 창의력은 기술혁신을 가능하게 하고 보다 나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평생 피디로 일하면서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오랜 고민을 했어요. 그 끝에서 내린 결론, ‘창의성은 개인의 재능보다 사회적 환경을 통해 발현된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아무리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조선 시대에 노비로 태어났다면, 이름을 얻기 어려웠을 겁니다. 배고픈 거지라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샘솟지는 않았을 겁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빴을 테니까요.
창의는 여유가 있는 환경에서 끝없는 실패와 모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가능합니다. 책에서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했지요.
“실패할 자유가 없는 자유란 가치가 없다.”
<자본주의>를 읽다 복지와 창의성에 대해 나온 연구 사례에 시선이 멈췄어요. 부유한 계층일수록 그 자녀들은 모험적인 일을 선택한다고요.
‘2005년 레이번 삭스(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와 스티븐 쇼어(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자신과 자녀들은 리스크가 더 큰 직종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했다.
그들은 1968년부터 1993년까지 직종별 임금통계를 통해 어떤 계층이 리스크가 큰 직업을 선택하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가정 내 안정적인 부의 크기가 직업 선택에 영향을 미치며, 부유한 계층의 자녀일수록 모험적인 일을 선택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그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리스크가 더 큰 직종을 선택할 가능성이 약 20% 정도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생활이 안정될수록 모험을 하더라도 더욱 창의적인 일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다.’
20대에 제가 영업사원을 그만두고 통역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통역사라는 고소득 직종을 그만두고 피디가 된 건 제가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일단은 맞벌이 교사로 일하는 부모님을 만난 덕분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어요. 만약 제가 집안이 어려웠다면 첫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족족 절반씩 모을 수 있었을까요?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을 나왔다면 아마 빚 갚느라 정신이 없었을 겁니다. 저는 경제적으로 윤택한 부모님 덕분에 일찍 경제적 자립을 성취할 수 있었어요. 물론 제가 씀씀이가 컸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지요.
개인적으로 윤택한 가정 형편과 어려서부터 근검절약하는 습관을 기른 것, 이 2가지가 제게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겁니다. 여기에 제가 입사한 회사의 환경이 더해집니다. 제가 입사한 1996년 MBC는 공중파 광고 시장의 독과점 업체였어요. 경쟁사가 KBS, SBS, 두 곳인데요. KBS는 수신료를 재원으로 삼기에 광고 영업에 목을 매지는 않고요. SBS는 서울 지역에 기반을 둔 민영 방송사로 후발주자였기에 버거운 경쟁 상대는 아니었어요.
MBC는 오너 집안이 따로 없어요. KBS 같은 공무원 조직도 아니고요. 자유로운 사내 경쟁이 이루어지고 사원 중에서 사장을 발탁합니다. 무엇보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회사입니다. 콘텐츠 제작은 창의성 발휘 여부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되니까요. 그래서 피디는 누구나 자신이 연출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어요.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분위기도 좋았어요. MBC가 광고 시장을 여유롭게 석권한 덕분에 피디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지요. 회사의 곳간이 넉넉했기에 저는 예능 피디로 일하다 드라마 피디로 전직도 하고, 노조 집행부도 했던 겁니다. 함부로 사람을 자르는 회사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들입니다. 다양한 경험이 제게는 창의성을 키우는 원천이 되었고요. 2020년에 제가 회사를 나온 건, 그런 공중파 방송 광고 시장의 독과점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피디로 일하며 깨달았어요. 사람이 창의성을 키우는 가장 좋은 길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하루하루 출근해서 그날 주어진 업무를 허덕이며 하다 보면 창의성을 발휘할 여유가 사라집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그렇게 살아요. 괜찮아요. 젊어서는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고요. 노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면 됩니다. 그걸 위해 월급쟁이로 사는 동안 소득의 일부를 자산의 형태로 바꾸어 노후 대비는 해두시면 좋습니다. 그래야 50 이후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창의성을 키울 여유가 생깁니다.
<자본주의>에서 저자는 묻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마지막 장에서 내놓은 답은 복지 자본주의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창의성을 듭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OECD 국가들 중 우리나라의 복지지수는 30개 국가 중 26위로 거의 꼴찌인데요. 1위 노르웨이, 2위 룩셈부르크, 3위 네덜란드, 4위 덴마크, 5위 스웨덴 순으로 주로 전통적인 유럽의 복지강국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OECD 15개 국가들 중 우리나라의 창의성지수는 11위로 역시 중하위권이에요. 1위는 스웨덴, 2위는 스위스, 3위는 핀란드, 4위는 네덜란드, 5위는 노르웨이가 차지했습니다. 묘하게도 창의성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나라와 복지지수 상위권의 나라가 중복됩니다. 복지국가의 국민이 창의성 지수가 높다는 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노동 시장에서 내 몸값을 올리려면, 창의성이 뛰어나야 하고요. 창의성을 기르려면 개인의 복지, 즉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저축이나 자산이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반복되는 순환 논리일 수 있어요. 돈이 있어야 돈을 더 벌 수도 있습니다. 돈이 돈을 버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께 3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1. 이 책을 읽고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이 바뀐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2. 창의성을 발휘해 나의 가치를 올린 경험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3. 시장에서 나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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