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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힌두교 유적, 미선

by 김민식pd 2023. 2. 1.

다낭의 참 박물관에 들렀을 때, 베트남에도 힌두교 유물이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호이안 근처라고 들었는데, 호이안 호텔 체크인할 때, 투어 안내 책자를 받았어요. 직접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에 신청했습니다. 해외 여행지에서 영어로 진행하는 현지 그룹투어를 신청합니다. 그럼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도 있어요. 

유네스코 문화유적 My Son.

미썬이라고 읽기도 하는데, 여기선 미선 유적지로 부를게요. 

호이안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고,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는 쉽지 않아요. 호텔 픽업 + 점심 + 보트 이동 + 가이드가 제공되는 여행 상품이 우리돈 18,000원입니다. (입장료 7000원 별도) 기사와 가이드가 한 사람씩 붙어요.

외국인 배낭여행자들과 함께 다닐 생각에 투어를 신청했는데, 하필 그날 손님은 저 혼자 뿐이네요. 혼자 가이드와 다닙니다. 누가 보면 VIP투어를 신청한 동양인 갑부인줄 알겠어요. 


영어 가이드를 만난 김에 물어봐요. 베트남 인사말. 

Xin chào '씬 짜오' 안녕하세요(더 격식 없는 자리에서는 ‘짜오’라고만 말해도 되고요. 호텔 직원들을 마주치면 씬 짜오라고 인사를 건네지요.)

Cảm ỏn '깜언' 감사합니다. (여행자가 알아야 할 필수 어휘지요. 감사와 사과의 표시는 꼭 현지말로 배워두는 게 좋습니다.)

Xin lôi '씬 로이' 미안합니다. (이 표현을 써야할 상황을 안 만드는 게 여행자로서 목표입니다. ^^)

길 옆에 있는 샘물인줄 알았더니 맷돌이네요. 쌀과 물을 위에 붓고 갈아서 죽을 만들어 떡의 재료로 쓴답니다. 'Millstone 맷돌'이네. 했더니, 생소한 단여였나봐요. 스펠링을 묻더니 수첩을 꺼내 메모를 합니다. 외국어로 돈을 벌려면 역시 부지런해야 해요.  

고전 무용 쇼를 관람합니다. 입장료에 포함된 무료 공연이에요. 

압사라라고 힌두족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춤사위를 재연합니다.

참파족 민속음악 공연도 이어지는데요. 피리부는 사람의 폐활량이 어마어마합니다. 숨도 안 쉬고 피리소리가 끝없이 이어지는데 꼭 묘기대행진 보는 것 같아요. (묘기대행진은 1970년대 스타킹 같은 재능 경연 프로그램입니다. ^^)

미선은 참족의 왕국, 즉 참파 왕국의 유적입니다. 2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베트남의 남부와 중부 지역에 존재했던 나라인데요. 지배계급이 인도에서 전수된 힌두교를 믿었어요. 캄보디아를 침공해 앙코르와트를 약탈하기도 했고요. 17세기에는 힘이 약해져 멸망한 나라입니다.

앙코르와트나 미선 같은 힌두교 유적에 가보면 꼭 만나는 조각이 있습니다. 요니와 링가지요.

위로 솟은 둥근 원기둥 형태의 돌은 '링가', 힌두교의 시바신을 상징하는 남근상입니다. 그 아래 쟁반형태의 받침돌이 시바의 아내 '샤크티'를 상징하는 요니에요. 물이 흘러내리는 홈이 있지요. 힌두교에서 성수를 만들 때, 링가 위에 물을 붓고 요니를 통해 흘러내리는 물을 받습니다. 손과 얼굴을 씻어 몸을 정화하지요.

곳곳에 링가와 요니가 있어요. 남녀의 성기를 표현한 것인데요. 생명의 탄생을 상징합니다. 신자들에게 링가는 최고의 신 '시바'의 현신이에요. 그래서 연꽃을 바치고 기름을 부으며 숭배하지요.

남녀의 육체적 결합도, 시바와 샤크티의 결합도 힌두교에서는 다 성스러운 힘의 근원이라 여깁니다. 음양이 결합하여 우주는 완전함을 이루고 새로운 힘이 만들어집니다. 

설명을 들어야 의미를 알 수 있는 요니와 링가. 그냥 보면 남근석... ^^

두 마리 코끼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요.

그 위의 날개를 펼친 새가 있습니다. 가루다. 인도의 신, 비슈누가 타고 다니는 새입니다. 가루다라는 이름이 익숙하죠? 인도네시아 국적 항공사의 이름이에요. 힌두교와 이슬람을 믿는 나라답게 비행기 이름이 가루다. ^^

힌두교 경전을 표현한 조각이 곳곳에 있어요. 가이드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의미를 알 수 없지요. 

13세기 이후 정글에 묻혀 잊혀진 곳인데요. 19세기 프랑스 발굴단에 의해 재조명됩니다. 1999년 유네스코 유산 지정 후 유적지로 다시 복원되고 있어요. 저는 우기인 10월에 여행했고 마침 선선한 바람이 부는 오전에 여행해서 좋았는데요. 한여름에 혼자 배낭여행을 간 분의 후기를 보니 덥고 습한데 힌두교 조각상들의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어 힘들기만 했다고요. 가이드 투어 덕분에 즐거웠어요.  


수백년 전 왕과 귀족들만이 누빌 수 있었던 유적지를 다니노라면, 우리 시대의 여행자는 과거의 왕족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준다기에 장난스런 포즈도 취해봅니다.

사원에는 Meditation room이라는 공간이 있어요. 명상실. 사원에 참배하러 온 왕족이나 귀족이 경전을 읽으며 명상하던 곳인데요. 지금은 박물관 용도의 전시실로 쓰입니다.

인근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모아둡니다. 물론 상태가 특히 좋은 것들은 다낭의 참 박물관에서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 절에 있는 기와 조각 디자인과 비슷하지 않나요? 인도에서 태어난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이 동북아까지 전수되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팔이 여럿 달린 조각상을 보며, 멀티태스킹하는 현대인이 떠올랐어요. 40대에 제가 자전거를 탈 때 영어 오디오북을 들으며, 독서와 영어 회화 공부와 운동과 출근을 동시에 한 적이 있는데요. 이제 저는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아요. 걸을 때도 음악을 듣지 않고 오롯이 발걸음에 집중합니다. 나이가 드니, 순간 순간이 다 소중하고요. 욕심을 내려놓고 한번에 하나씩 하려고 해요. 물론 젊을 때 멀티태스킹하느라 욕심을 많이 부려봤기 때문에 이런 시절도 오는 거지요. 나이에 따른 변화도 받아들이려 합니다. 

여행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어요.

많은 이들이 공들여 쌓고 만든 사원과 조각상들이지만 몇백년이 지나지 않아 사람들에게 잊혀져 찾지 않는 폐허가 되어버립니다. 인생이 참 허무하죠.

그룹 A. 미선 유적지에는 사원들을 그룹으로 묶어서 분류하는데요. 그룹 A는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많이 손상된 곳입니다. 지금은 허물어진 유적을 복원하는 중인데요. 다행히 프랑스 발굴단이 찍은 19세기 초 사진이 있어 폭격 이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네요.

사원에 떨어져 거대한 포탄 구덩이를 남긴 폭격의 흔적.

그냥 물웅덩이가 아니라 저게 포탄 자국이랍니다. 불과 수십년 전에 이곳 베트남에서는 저렇게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이 죽어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은 왜 여기까지 와서 싸웠을까? 싶을 정도에요. 베트남인들의 피해도 컸고, 젊은 미군들의 희생도 컸지요. 전쟁의 참화가 남긴 흔적을 보며,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복원된 사원을 보면 벽돌의 색깔이 원래의 것과 새 것이 다릅니다. 탑이나 사원은 다 구운 벽돌을 쌓아서 지었는데요. 수백년 전 참파족이 만든 벽돌은 이끼가 끼지 않았대요. 20세기 이후 새로 구워 보수에 쓴 벽돌은 금세 이끼가 끼는데 말이지요. 아직도 그 옛날 참파족의 벽돌 기술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고 가이드가 설명하네요.

경주 석굴암도 비슷하지요. 원래 석굴암은 습기가 차지 않았는데, 현대에 들어 보수공사를 한 후 실내에 이슬이 맺혀 신라시대의 건축 기술이 다시 조명받은 적이 있어요. 선조들의 지혜를 후손들이 따라 잡지 못하는 때도 있어요. 

저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객관적으로 보기 쉽지 않아요. 다른 어딘가에 가서 거리를 두고 봐야만 볼 수 있는 게 있어요. 

참파족의 힌두교 유적, 미선 유적지. 다낭 여행 오신다면, 하루쯤 시간을 내어 들러보셔도 좋아요. 일정이 여의치 않다면 다낭의 참 박물관을 보셔도 좋구요.

과거의 유물과 현재의 내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입니다. 

다냥 배낭 여행, 다음편에는 베트남의 경주, 후에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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