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 1권 리뷰 2번째 글입니다. 대하 소설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기록해두는데요. 그 글을 공유합니다.
원로원 의원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가난하지만 명문가의 가장입니다. 그에게는 두 아들과 두 딸이 있는데요. 정략결혼을 통해 돈이 많은 마리우스를 사위로 얻어 훗날 아들들의 출세를 위한 금전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혹 나이 많고 재혼을 하는 마리우스를 어린 딸이 싫어할까봐 걱정하는데요. 딸 율리아가 말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어젯밤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만나뵈었을 때 아버지께서 바로 저런 분을 제 남편감으로 구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율리아가 얼굴을 붉혔다. "그분은 아빠와 전혀 다르면서도 아빠와 똑같았어요. 아빠처럼 올바르고 온화하고 정직하세요."
카이사르가 아내를 쳐다봤다. "자기 자식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건 정말 드물고 귀한 기쁨이 아니겠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타고난 본능이지. 하지만 자식을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은 절대 저절로 생기지 않소."
(143쪽)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경하라고 가르치지만 그 마음이 절로 우러나지는 않아요. 부모 자식의 관계가 어떠해야 할 지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었어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는 또 하나의 딸이 있어요. 율릴라라고요. 막내딸인데요. 집안 식구들의 귀여움과 애정을 독차지하고 살았지요. 그러다보니 버릇이 없고 안하무인이고 자기중심적이에요. 큰 딸 율리아는 가족을 위해 정략혼이라는 아버지의 결정을 따르는데요. 율릴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그 상대가 바로 술라. 의붓어머니와 애인, 두 여자와 한지붕 아래에서 살며 동네방네 난봉꾼으로 소문난 그 남자라는 거죠. 가난한 술라는 철없는 율릴라의 일방적 사랑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율릴라의 구애를 거부합니다. 율릴라가 입을 삐죽 내밀며 그러죠.
"내가 안 예뻐서 그러세요? 난 늘 내가 예쁘다고 생각해왔는데."
"어른이 된다는 건 잔인한 일이야." 술라가 가혹하게 말했다. "모르긴 해도 거의 모든 부모들이 자기 딸더러 예쁘다고 하지. 하지만 세상의 기준은 달라. 그래도 아가씨는 나이가 들면 괜찮은 정도는 될 거니까, 남편을 못 얻지는 않을 거야."
"난 당신만을 원해요." 율릴라가 속삭였다.
"지금은 그렇겠지. 어쨌든 이젠 꿈에서 깨어나도록, 통통한 강아지 아가씨."
(221쪽)
어른이 된다는 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요. 어려서 저는 아버지에게 휘둘리며 살았어요. 어른이 되면, 자유롭게 내 뜻을 펼치며 마음껏 살 것 같았거든요? 아니더라고요. 회사에 갔더니 더 한 어른들이 많더라고요. 차라리 어려서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던 시절이 편했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어려서 돈쓰기는 쉬운데, 커서 돈벌기는 어렵더라고요.
<로마의 일인자>를 읽으며 계속 감탄하는 점이 있어요. 로마인들은 항상 무엇이 옳은가를 가지고 끊임없이 토론한다는 거죠. 왕정이나 신정 국가가 아니에요. 로마는 공화정입니다. 왕의 말 한마디나 신의 뜻으로 토론이 끝나지 않아요. 타인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법정에 나선 변호사가 '법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설명합니다.
'법이란 사람을 획일적으로 찍어누르는 거대하고 육중한 석판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획일적이지 않으니까요. 법은 사람을 덮어주며 각 개인의 독특한 모양을 그대로 드러내는 부드러운 담요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 로마 시민은 로마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법과 법정은 그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261쪽)
<로마의 일인자>의 두 주인공은 개천용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거지가 된 귀족 자제 술라의 이야기인데요. 399쪽에 이르러 처음으로 카이사르,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의 위대한 지도자, 시저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만난 점술가가 예언합니다.
"당신은 총 일곱 번 집정관이 되고, 사람들은 당신을 로마 제3의 건국자라고 부를 거요. 당신은 로마를 사상 최대의 위기에서 구해낼 거니까!"
마리우스의 얼굴이 흥분으로 화끈 달아오르는데요. 예언이 이어집니다.
"당신은 위대한 여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군." (앞에서 나온 율리아를 뜻합니다.) "그녀의 조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마인이 될 거요."
가장 위대한 로마인, 즉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독보적인 주인공 카이사르를 뜻합니다. <로마의 일인자> 1권은 50부작 대하 사극의 1부같아요. 정작 주인공은 안 나오는데, 이걸 읽어야 시저가 그토록 위대한 인물이 되는 배경을 이해할 수 있어요. 시저의 후원자 겸 고모부가 바로 로마의 두 영웅, 마리우스와 술라니까요.
마리우스가 노파에게 복채를 얼마나 줘야할지 물어보니 이렇게 답합니다.
"당신한테는 안 받겠소. 진정 위대한 사람과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거든. 복채는 가우다 왕자 같은 사람들한테 받아야지. 그는 왕은 되겠지만 절대로 위대한 인물은 될 수 없다오." 그녀는 또다시 낄낄거렸다. "하지만 당신도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 거요. 가이우스 마리우스, 당신에게 미래를 꿰뚫어보는 능력이 없다고 해도 말이오. 당신의 능력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것이고, 가우다 왕자는 속이 좁으니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나는 마리우스를 예언가가 잡습니다.
"아, 부탁이 하나 있소. 당신이 두번째로 집정관이 되면 나를 로마로 초대해 영예롭게 대접해주시오. 죽기 전에 로마에 가보는 게 소원이거든."
(400쪽)
갑자기 이 대목에서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어요. 언젠가 아버지께 추석에 어디에 가고 싶냐고 여쭸더니 뉴욕에 가서 한 달 살아보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뉴욕은 우리 시대의 로마지요. 꼭 다시 가보고싶습니다. 마리우스와 술라가 사는 로마는 가보지 못해도, 뉴욕은 가보고 싶네요. 언젠가는 뉴욕 여행기를 다시 올리는 날이 오기를...
로마 시대에는 노예 제도가 있어요. 해방노예와 일반노예가 있는데요.
'해방노예는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고 일할 장소와 일의 종류를 고를 수 있는 반면, 노예는 주인의 사유재산이었기 때문에 자기 삶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
(178쪽)
이 대목을 읽으며, 깨달았어요. '퇴사를 한 나는 해방노예로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는 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자본의 노예로 살 거예요. 퇴직을 했다고 인생의 주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연금이나 수입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자유를 누리는 해방노예지요. 그나마 퇴직을 하면 내 명줄을 잡고 흔드는 인사권자가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해방이라 할 수 있어요. 제 나이 40대에 회사로부터 징계 3종 셋트를 받고, 유배지로 부당전보가 날 때마다 서러움을 느꼈거든요. 이제라도 해방노예로 살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읽고 싶은 책은 언제든 마음껏 읽을 수 있으니까요.
다음주에는 편성준 저자의 책을 소개할게요. 해방노예의 삶은 어떻게 찾아오는가?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 리뷰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