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의 '길티 플레저'를 소개합니다. 평소 혼자 페북을 보며 낄낄거릴 때가 있어요. 페북의 슈퍼스타 '도끼녀' 에밀리님의 글을 읽을 때지요. 호러 로맨스인지, 느와르형 스릴러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도끼질 글쓰기'. 코미디 피디로서, 에밀리님의 글을 보며 반성합니다. '나는 이렇게 웃기는 글을 왜 쓰지 못하는가?'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리지요. '어디 감히 비교질이야! 에밀리님이 새 글을 올려주셨으면 공손하게 무릎꿇고 앉아 조신하게 읽을 일이지.'

에밀리님의 책이 나왔습니다. 은둔 고수가 드디어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는군요. 예약주문을 걸고 택배 기사님 오시기만 기다렸습니다. 책을 읽으며 고민입니다. 곳곳에 음담패설과 욕설이 난무합니다. 어떤 글을 소개해야할지 좀 난감하네요. 책에서 재미난 대목에는 어김없이 야한 농담이 있거나, 찰진 욕이 나오거든요. 자칫 저의 왜곡된 성적 욕망이나 숨겨진 언어습관이 드러날까봐 전전긍긍, 노심초사 하다 추천사를 보며 용기를 냅니다.

- 글 곳곳마다 단어와 도끼를 써야 할 곳을 예리하게 찾아서 아주 명석하게 배치하고 있다. 그래서 그 도끼에 맞아도 오히려 힘이 나게 될 뿐 아니라, 이 혼란한 사회를 도끼로 찍어내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 가수 전인권.

-그녀의 글에는 기존 작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원시적인 생명력과 문제의식이 살아 있다. 삶의 지혜가 반짝이는 글발은 또 얼마나 찰진지! 방송작가로 치자면 예능 작가의 재치와 드라마 작가의 입담에다 시사 다큐 작가의 문제의식까지 두루 갖춘 내공 깊은 고수라고 할까?

- <PD수첩> 작가, 정재홍

평소 에밀리님의 글을 남몰래 흠모하던 이들이 대거 커밍아웃하셨네요. 그중에는 <PD 수첩>의 한학수 피디도 있어요.

- 에밀리는 도끼 하나로 SNS 세상을 평정해가고 있다. 그녀의 도끼에는 인정사정이 없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재수 없는 아재들과 꼰대들이 맞아나간다. 이 도끼 앞에서 수많은 가식과 엉큼한 속내가 박살이 난다.

- MBC 한학수 피디

에밀리님의 글을 읽을 때는 통쾌하면서 한편으로는 움찔! 합니다. '이거 혹시 내 이야긴가?' 꼰대, 가부장들을 응징하는 에밀리님의 도끼날은 날카롭기 그지 없습니다.

 

# 반면교사

어느 날 직장 남자 후배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어. 난 그의 바지 지퍼가 열려 있음을 발견했어. 파란 청바지와 그 안의 붉은 속옷은 흡사 우주의 생성 원리를 나타낸다는 태극을 연상시켰어. 

뭔가 생성된다는 걸 표시했다면 올바른 표시인 건 맞지만 나는 그 순간 그가 태극기 부대나 대한애국당으로 오인 받을까 너무나 걱정된 나머지 아주 부드럽게 은유적으로 지퍼가 내려갔음을 알려주었어. 그가 나의 이런 센스에 반할까 약간 두려워하기까지 하면서. 그런데 다음날 직장엔 웬 변태 '개줌마' 한 마리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년이 어이없게도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것도 남자 거시기만 쳐다보고 다니는 최악질 변태.

난 지금도 남자 얼굴과 가슴까지밖에 못 쳐다봐. 내가 좋아하는 배 나온 남자의 동그랗고 예쁜 배를 보는 즐거움을 빼앗겨 안타깝긴 하지만 시선을 더 아래로 내렸다간 직장 전산망에 변태 개줌마로 분류되고 전자발찌를 채우거나 전자안경(시선이 일정 높이 아래로 내려가면 눈탱이를 치는)을 씌울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기때문이야.

내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여자 연예인이 브라 했는지 안 했는지 등에 대해 관심 끄라는 거야. 내 꼴 나기 전에.

(178쪽)

누가 나 대신 호쾌하게 욕을 해주는 통쾌함! 이게 바로 길티 플레저 아닐까요?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손가락은 부들부들 떨리고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납니다. 에밀리님이 도끼를 들고 나타나 '이 작자가 겨우 이따위 리뷰로 내 책을 욕보여?' 하고 휘두를 것 같아서요. 황급히 마무리하고 사라집니다.

여러분, <꽃보다 도끼>에요!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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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수의 진 2020.02.04 06: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 봐야겠네요
    재미 있네요 글쓰시는게

  2. 아리아리짱 2020.02.04 06: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님 아리아리!

    오우~!
    블로그 맛뵈기 서평 만으로도 아침부터
    배꼽잡습니다.
    살아있는 생생한 '길티 플레져( guilty pleasure)' 소개
    감사합니당! ^^

  3. 김주이 2020.02.04 0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개된 글만 봐도 너무 재밌네요.
    그러면서 그 안에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도 보이고요.

    다른 글들도 궁금해지네요.

  4. 더치커피좋아! 2020.02.04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담없이 즐거운 글읽기.
    가능한 책. 기대됩니다^^

    오늘도 부담없이 무탈한 하루.
    피디님도 파이팅!

  5. 아프리칸바이올렛 2020.02.04 0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은
    소개 글만으로도
    빨리 주문해서 봐야할 촉

  6. 꿈트리숲 2020.02.04 0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담패설과 욕이 난무한다 하셔서 살짝 발을 뺄까 생각했는데, 소개해주신 반면교사 읽으니 이 정도는 충분히 소화하고도 남겠다 싶어요. 일단 너무 재밌네요. 상황도 그 상황을 에밀리님 만의 감성으로 풀어낸 것이요.

    반면교사의 지퍼남 같은 사람을 가끔 목격하는데요.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항상 고민하는데, 꽃보다 도끼 읽으며 팁을 좀 구해볼까요~~ ㅋㅋ

    입춘대길 건양다경 하시길요.~~

  7. silahmom 2020.02.04 0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 아침부터 크게 웃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재미있는 책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8. renodobby 2020.02.04 0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책이네요ㅋㅋ 주문해서 읽고 북리뷰 올려야겠네요

  9. Mr. Gru [미스터그루] 2020.02.04 0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신선한 책이네요. 사서 읽어봐야겠어요.
    감기에 걸려 다른 분들의 댓글은커녕 글 읽기도 힘드네요. (다행히 증상이 신종 코로나와 다르네요)
    친구 생일이랍시고 찬 밤공기를 많이 마셨나 봐요 ㅠㅠ
    종합 감기약 먹으니 나아지네요.
    신기하고도 간편한 세상.
    글도 주말에 미리 안 써놨으면 매일 글쓰기도 실패할 뻔했어요.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10. 새벽부터 횡설수설 2020.02.04 1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저는 가끔 글을 쓸 때, 존댓말을 쓰지 않고, 읊조리듯 독백체로 쓸 때가 있는데요..!
    그때, 글발이 제대로 받더라고요. 재미있는 단어나 생각도 많이 떠오르고요.

    뭔가 글에도 존댓말을 쓰면 제약이 생길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여러 방식으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11. 불곰이된엄마 2020.02.04 1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뷰 잘 읽었습니다. 히히히
    이런 책이 있었군요.

    피디님의 따뜻한 리뷰 언제나 응원합니다. ^^

  12. 보리랑 2020.02.04 1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웃기다면 무조건 접수~
    아무데나 도끼를 휘두를 분이 아니실테죠
    도끼를 휘두를 세상이 오면 잼난 글도 못볼라나요

  13. 오달자 2020.02.04 1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리뷰 보니 딱 제 취저 작가님이십니다. ㅎㅎ
    내뱉고 싶지만 차마 입밖으로 못내는 말들을 저 대신 내뱉어 주시는 스타일~
    에밀리님 책 바로 장바구니 담습니다~ ㅎㅎ

  14. 나겸맘 리하 2020.02.04 2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정말 찰지고 재미나네요^^
    제 자신은 죽었다 깨나도 쓸 수 없는 글을
    자유자재로 쓰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부럽고도 반가운 일입니다.
    비교질 금물... 도끼녀님의 글을 공손한 태도로 읽어 보고 싶어집니다~~

  15. GOODPOST 2020.02.05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글을 잘 쓴다는 것이 이런거군요.ㅋ
    확 빨려들면서 구렁이 담넘어가 듯이 넘어가는 묘사라,,,
    정말 빨리 읽어 보고 싶습니다.

  16. 섭섭이짱 2020.02.06 14: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에밀리 작가님이다~~~~~~
    이분만 생각나면 3년전 그때 그글들이...
    ㄱ ㅇ ㅇ ㅃ 생각하며 썼던 그 애절한 편지들 ㅋㅋㅋ
    예전 얼굴책 글들 다시 읽는데 넘 우끼더라고요..
    피디님의 코멘트도 꿀잼이고 ^^

    이 분책도 진즉 구매해서 읽는데 넘 재밌어서
    애껴 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