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처음 대본을 받아들고 고민이 들었어요. 여주인공 영희는 집안에 틀어박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사는 여자입니다.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안방 침대 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생필품을 사다주는 올케와도 면대면 접촉이 없어요. 바람난 오빠에 대한 미안함에 찾아오는 시누이도 만날 수 없지요.

드라마에서 대부분의 사정 이야기는 대사를 통해 표현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며 저간의 사정이 알려지는데요, 주인공 영희는 숨어살기에, 그녀의 사정은 오로지 회상으로만 표현됩니다. 1~8부 대본을 받아들고 촬영을 준비하면서 내내 고민이었어요. 회상과 현실이 오가는 장면이 많아서 시청자들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과거 장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때 제가 가진 고민에 답을 내놓은 사람이 바로 김만태 촬영 감독입니다. 

"과거 회상은 핸드헬드 촬영 기법으로 찍어 화면이 흔들리는 느낌을 주면 어떨까요?"



사진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이별이 떠났다>의 김만태 촬영감독입니다.

사진을 보면 마치 제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같지만, 보통 촬영장에서 저의 역할은 묻는 것입니다. 

"이번씬은 어떻게 촬영할까요?"

그럼 김만태 감독이 촬영 콘티를 제안합니다. 

"처음엔 인물이 움직이니까 스테디캠으로 동선을 잡고, 인물이 멈추면 바스트샷으로 따고 들어가지요."

제가 하는 말은 간단합니다.

"좋은데요?"


방송 초반 회상과 현실을 오가는 화면 구성이 참 좋았어요. 김만태 감독의 흔들리는 핸드 헬드 촬영도 감각적이었고요. 언젠가 물어봤어요. "왜 핸드 헬드인가요?"

"사람의 기억은 주관적이잖아요. 정확하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카메라를 세팅하고 정적인 화면으로 찍는 것보다는 흔들리는 화면으로 기억의 부정확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살면서 우리는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으며 살아가요. 그런데 그 상처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에요. 내 기억속의 상대의 모습이지요. 저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학대에 가까운 체벌을 당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버지는 지금도 그것이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었다고 말해요. 누구의 기억이 정확할까요? 

저는 대부분의 경우, 약자의 편에, 피해자의 편에 서서 기억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의 경우는 자신이 준 상처를 기억하지도 못하거든요. 하지만 약자에게는 그 기억이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지요. 어린 시절, 제게 매질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랬던 것처럼요.


영희는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아이를 가진 정효를 보며, '이 아이 역시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살겠구나' 생각합니다. 그 상처들로부터 지켜주고 싶어요. 

흔들리는 기억 속에서, 영희는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정효를 지켜주기 위한 영희의 다음 발걸음은 어디로 향할까요? 

내일 토요일 저녁 8시 35분 방송을 기다려주세요! (월드컵 중계로 평소보다 10분 일찍 방송 시작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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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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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리아리짱 2018.06.22 0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아~! 이런 촬영기법의 차이가 회상 씬을 구별
    할 수 있게 해주었네요!
    2주만의 드라마 완존 기대 됩니당!

  2. 유하v 2018.06.22 0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촬영하는 모습을 지나가다 몇번씩 보기도 했지만 역시 쉽지 않은 일인거 같습니다ㅎ

  3. 정은 2018.06.22 0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흔들리는 화면으로 기억의 부정확성을 표현한다' 하신 촬영감독님 말씀 너무 멋집니다.
    전 잘 모르지만 왠지 감독님들의 철학이 담긴 화면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하루 만에 확~ 드라마 안으로 빠져들었니 봅니다.
    MBC감독님들 역시... beyond professional.
    완전 리스펙 입니다.

  4. 섭섭이짱 2018.06.22 0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회상신과 현실신을 오가는 방법이 흔들리는 화면이었군요. 촬영 감독님의 디테일한 촬영 기법을 모르고 봤네요.전 원작 소설로 내용을 먼저 접해서 그런지 내용만 보고 이건 회상 내용이네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드라마 보면서 주인공들의 열연도 재미있지만 친구인 남식이나 아인이 나올때도 재밌는거 같아요. 원작 소설과는 다른 드라마만의 재미가 있어 더 기다려집니다.
    이번주는 어떻게 내용이 전개될지 기대가 됩니다.

    오늘도 신나고 즐겁게 촬영하시길 ~~
    믿보연 김민식피디님 파이팅!!!

    #이별이_떠났다
    #이번주는_토_20:35
    #본방사수
    #끝나고_채널고정
    #월드컵_응원은_MBC와함께

  5. 슬아마미 2018.06.22 0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을 위해 정효의 선택을 응원하다가도 , 저도 이제 중년의 나이인지라 정효가 겪을 고생이 눈에 훤희보여 안타깝습니다.그래서 결말이 더욱 궁금한 드라마네요.

  6. 게리롭 2018.06.22 1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속 촬영중이신 피디님의 모습 정말 당당하고 멋져보이십니다~
    드라마도 잘나가는 중이고
    7년을 견디셨던 피디님이 이제 날개를 달으신것 같습니다 ^^
    화이팅!

  7. 보리보리 2018.06.22 1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요. 기억은 부정확하대요.
    저는 좋은 것만 부풀려서 기억하려고요
    안좋은 것은 아빠가 그랬구나 하구요

  8. 정지영 2018.06.22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얘기만 들으면 현장에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다 맡아하고
    연출은 하는 일이 없는 듯(?) 비춰지네요.^^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각자의 실력을 발휘하도록
    배려해주시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가장 크고 어려운 역할, 한 팀을
    이끄는 것 그걸 하고 계시니... 좋은데요?
    말만으로도 촬영이 잘 되고 있는 느낌이에요.

    근엄한 카리스마 보다 배려와 존중으로
    더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음을 오늘 글에서
    배웁니다.

  9. 안가리마 2018.06.22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피디님의 팬덤으로 드라마를 다시보기로 1화부터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분위기가 무거워 처음엔 몰입하기가 힘들었지만
    블로그 글들을 읽으니 누구보다 제가 꼭 챙겨봐야하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시보기로 빨리 진도를 따라붙고 본방사수하는 날이 금방 오기를 바랍니다.
    좋은 드라마 만드는데 열심인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10. 양선아 2018.06.23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흔들리는 기법에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기억은 정말 정확하지 않죠.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언제나 약자의 편에서 바라봐야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오늘 본방사수 꼭 할게여!

  11. 전혜림 2018.07.05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저희집에티비도없고~드라마도안보지만~~피디님께서 연출하신 작품은 꼭 보겠습니다
    요 블로그에 올 때마다 새로운책 새로운글귀에 마음이 설레입니다~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