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세계여행

여행의 첫사랑, 런던

by 김민식pd 2018. 3. 26.

지난 2월 중순, 콘텐츠 진흥원에서 주관한 한국-영국 포맷 워크샵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런던은 제가 여행과 첫사랑에 빠진 곳입니다. 생애 첫 배낭여행을 늦게 간 편이에요.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두고 다녀왔으니까요. 대학 1,2학년 때는 군미필자라 못 가고, 복학하고는 방학에도 야학 교사로 일하느라 못 갔어요. 4학년 여름방학이 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내 평생 마지막 방학인데, 이번에 못가면 평생 못 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취업준비도 팽개치고 4학년 여름 방학에 배낭을 꾸려 유럽 여행을 떠났어요. 그때 비행기에서 내린 곳이 런던 히스로 공항. 저는 참 운이 좋아요. 처음 도착한 곳이 런던이었으니까요. 여행과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를 공연하는 극장)


오랜만에 런던의 언더그라운드를 탑니다. 런던 지하철은 언더그라운드라고 부르지요, 런던에서 서브웨이는 지하 보행자 통로를 뜻합니다. 1992년에 본 런던 지하철과 거의 변함이 없다는데 놀랍니다. 여전히 통로가 좁고 낮고, 지하철은 복잡하군요. 부동산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에서 저가 숙소를 찾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92년에 처음 런던에 왔을 때, 호텔이 너무 비싸 엄두가 안 나더군요. 싼 비앤비를 찾고 싶었어요. 기차역 근처에서 싼 숙소를 홍보하는 전단지를 봤어요. 배낭을 메고 지도를 들고 찾아나섰어요. 제 뒤로 여덟명의 배낭족이 쫓아오더군요.  GPS나 구글맵이니 없던 시절이라 길은 무조건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야하거든요. 영어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쫓아갔어요. B&B를 찾아가니 영국인 주인 할머니가 엄청 반기더군요. 전단지를 지하철 역 근처 기둥에 붙여뒀는데 멀어서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그런데 어떤 한국인이 일행을 여덟명이나 데리고 찾아왔으니까요. 

(로얄 앨버트 홀)


지금의 저를 만든 건 독서와 여행, 그리고 연애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겁쟁이에 쫄보인데요, 배낭여행을 다니며 담력을 키웠습니다. 세상 어디든 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믿게 되었거든요. 여행이 편안하려면, 돈을 들이면 됩니다. 비싼 호텔에 픽업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택시 기사가 이름만 대도 알만한 호텔을 잡으면 헤맬 이유가 없지요. 하지만 돈이 들어요. 저는 요즘도 여행을 가면 1박에 5만원 이하하는 숙소를 잡습니다. 길찾기가 좀 힘들어도, 전철역에서 멀어서 좀 발품을 팔아야해도 싼 숙소를 찾습니다. 그렇게 길을 찾고 헤매는 과정이 여행이라고 믿거든요.

모험을 즐기면 여행이 더 즐거워져요. 돈도 아끼고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도 키웁니다. 겁이 날만한 상황에서 겁을 내지 않고 극복해버리면 오히려 자신감이 커지거든요. 새로운 변화에도 겁먹지 않을 자신감이.


런던에 도착한 날, 문득 깨달았어요. 우린 왜 첫사랑에 빠진 순간을 이렇게 쉽게 잊고 사는 걸까?

가끔 잠든 아내를 보며 20대의 내가 그녀를 보며 품었던 강렬한 연정을 어느새 잊고 사는구나,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20년째 그녀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너무 익숙해진게 아닌가, 미안한 마음에 잠든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보며, 머리를 쓸어봅니다.

이번 런던 출장, 그런 마음으로 다녔어요. 이 좋은 여행지를 그동안 왜 잊고 있었던가. 

다시 만난 첫사랑! 

런던 여행기, 이제 시작합니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


반응형

'짠돌이 여행예찬 > 짠돌이 세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영박물관 짠돌이 여행  (8) 2018.03.28
런던 템즈 강변 여행  (9) 2018.03.27
사이판 여행 4일차  (12) 2018.02.12
사이판 여행 3일차  (10) 2018.01.30
사이판 여행 2일차  (10) 2018.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