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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미안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

by 김민식pd 2017. 7. 27.

친한 회사 후배가 하나 있어요. 몇 년 전, 그 후배가 저를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선배 블로그에 글 좀 그만 쓰시면 안 되나요?"

"?"

"회사 높은 분들이 선배가 쓰는 글, 다 들여다보고 있대요. 이러다가 선배에게 또 다른 불이익이 갈까봐 걱정됩니다."

 

그 후배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하나 한참을 망설였어요. 저는 알아요. 저를 아끼기에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을... 지난 5년간 저는 줄곧 떠들었거든요. <2012 MBC 파업 일지>라고 해서 파업 관련 포스팅을 올리는 블로그 카테고리가 있고, <PD 저널>이며 <뉴스타파 칼럼>이며 기회가 될 때마다 '지금 MBC에서 일어나는 일이 과연 정상인가?' 하고 글을 써왔어요. 그 글을 회사에서 본다는 것도 알아요. 그럼에도 지난 5년간 글을 쓴 이유는...

 

첫째,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170일간 파업을 할 때, 저희 노동조합 집행부만 믿고 쫓아온 많은 조합원들이 파업 이후, 업무 현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유배지를 전전하고 있어요. 그들에게 저는 미안합니다. 그들에게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어요. 계속 소리 높여 지금 MBC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 부당하다고 알려야합니다. MBC가 망가진 데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계속 글을 씁니다.

 

둘째,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2012년 파업 집회할 때, 빗속에서 달려와 주신 분들이 많아요. 저희 파업을 응원하고, 공정 방송을 기원한 그 분들의 믿음에 보답하지 못했어요.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부끄러울 때는, 부끄럽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입 꾹 다물고 있으면 그분들은 배신감에 더 화가 나실 거예요. 누군가는 사과를 해야 합니다. 권성민 PD가 대신 사과했다가 해고를 당하기도 했는데요. 저는 그때도 부끄러웠어요. 입사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어린 후배가 나섰다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 20년 가까이 MBC의 녹을 먹은 사람이 입을 닫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부끄러운 마음에 글을 쓰고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울 수는 있어도, 적어도 스스로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울 일은 말아야지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막으면, 스스로에게 미안하고요. 해야 할 일을 외면하면, 먼 훗날 자신에게 부끄러워집니다. 주위 사람들은 저를 생각하는 마음에 말리기도 하지만, 이건 저의 미안함이고, 저의 부끄러움입니다. 제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지요.

 

지난 주말, 아버지를 모시고 '덩케르크'를 봤습니다. 아버지가 전쟁 영화를 좋아하시거든요. 패색이 짙어 프랑스 해안까지 쫓겨난 영국 연합군. 뒤에서는 독일군의 팬저 탱크가 진격해오고, 위에서는 폭격기가 연일 폭탄을 떨구는데, 달아날 곳이라고는 바다 밖에 없습니다. 이 바다만 건너면 영국인데 말이지요. 배를 기다리며, 저격과 폭격 속에서 모진 목숨을 이어갑니다. 그때 해안에 고립된 군인들을 구하기 위해 영국 시민들이 요트를 몰아 전쟁터로 옵니다. 순간 지난 금요일 '돌마고'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여의도 집회에서 만났던 시민들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KBS 앞에 모여 "김장겸은 물러나라! 고대영도 물러나라!"고 외치는 분들의 모습이요. 지난 5년, 제가 글을 쓰면서 간절히 기다렸던 것은 바로 '마봉춘 구출작전'이었는지도 몰라요.

오는 금요일에는 MBC 앞에서 '돌마고 불금파티'가 열립니다. 마봉춘 구출대작전에 함께하실 시민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MBC <PD 수첩>팀이 제작 거부를 시작했습니다. 안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MBC의 정상화를 위해 힘을 보태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7월 28일 금요일 저녁 6시 30분

상암 MBC 광장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불금파티'

시원한 음료와 뽀송뽀송한 라이브 공연도 준비했으니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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