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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공부할수록 가난해진다?

by 김민식pd 2017. 5. 18.

블로그에 쓴 글을 책 원고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출판사의 편집자가 글을 다듬습니다. 저는 공대를 나와 평생 딴따라 피디로 살았기에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요. 그래서 글을 다듬는데 있어 전문가의 조언에 항상 귀를 기울입니다. 편집자가 보내온 수정고를 보고 약간 갸우뚱했던 적이 있어요.

책에서 소개한 글, '셀프 몰입 유학 캠프 24시'는 대학 시절, 방학 동안 하루 24시간을 미국 유학생의 자세로 살았던 경험에 대해 쓴 글입니다. 낮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저녁 먹고 집에서 1시간 동안 '프렌즈'를 시청하고, 다시 학교 도서관으로 갑니다. 가는 길에 '프렌즈' 녹음 테이프를 듣습니다. 제가 보낸 원고에는 '저녁 먹고 도서관 가는 길에'로 썼는데, 편집자가 고쳐온 원고에는 '다음 날 도서관에 가는 길에는 간밤에 녹음해둔 <프렌즈>를 듣습니다.'로 바뀌어 있었어요.

'이걸 왜 고치셨을까?' 약간 의아했어요. '24시간 유학캠프라면 하루 동안의 일을 쓰는 게 맞지 않을까? 왜 굳이 다음날로 시간의 범위를 넓혔지?' 편집자의 의중을 읽으려고 고민을 했습니다. 아마 집에서 저녁 먹고 TV까지 본 후, 밤에 다시 학교 도서관에 가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느끼셨나 봅니다. 80년대 말, 저는 대학 정문 앞에서 하숙을 했으므로 저녁 먹고 다시 학교 도서관에 가는게 자연스러웠거든요. 서울 사람들은 집과 학교의 거리가 멀지요. 그런 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져서 고쳤구나... 하고 그냥 두었습니다.

책을 낼 때, 저는 편집자의 의견을 경청합니다. 편집자는 제1의 독자이거든요.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키는 대로 씁니다. 책을 내는 것은 돈을 내고 책을 사는 독자들을 향한 구애입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불편한 곳은 없는지, 억지스러운 대목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게 편집자의 역할이고, 그렇기에 편집자의 수정은 가급적 받아들입니다.

 

저녁 먹고 다시 학교에 가는 게 왜 젊은 편집자의 시선에서는 자연스럽지 않을까?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라는 책을 읽다 이마를 쳤습니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의식주'가 갖추어져야 한다. 그런데 학교 앞은 집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집값이 비싸다. 원룸, 고시원, 하숙비만 월 50만 원은 금방 나가는 게 서울 대학가다. 주거비를 아끼기 위해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를 찾아본다.'

(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천주희 / 사이행성) 27쪽)

 

아, 그렇구나! 서울 사람과 지방 사람의 차이가 아니구나! 제가 대학을 다닌 80년대 말, 서울의 대학가는 땅값이 비싼 동네가 아니었어요. 대학 정문 앞에는 허름한 술집과 당구장, 그리고 2층짜리 양옥들이 혼재했지요. 2층 주택은 주로 하숙집으로 운영되었고요. 신촌, 왕십리, 화양리가 다 저렴한 하숙촌이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대학가가 다 서울에서도 소문난 유흥가입니다. 가장 비싼 술집과 백화점들이 몰려있어요. 대학생들의 주거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기에 옛날처럼 저녁 먹고 다시 학교 도서관으로 가기 쉽지 않아요. 사람은 자신의 경험치 안에서 세상을 이해합니다. 저는 저의 대학 생활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글을 씁니다. 세상은 이미 변했는데 말이지요.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제목 그대로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공부를 할수록 더 많은 빚을 집니다. 공부를 잘 할 수록 더 많은 돈이 들어요. 옛날에는 반대였어요.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은 집 근처 지방 국립대에 진학해서 싼 등록금에 하숙비없이 공부했어요. 요즘은 성적이 좋은 학생은 무조건 서울로 갑니다. 공부를 더 잘 해서 해외 유학이라도 가고, 미국 박사라도 따려고 하면 1년에 1억씩 듭니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더 많은 빚을 집니다.

 

'학생 부채는 단순히 개인이 가난해서, 집이 가난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나의 가난 또한 내가 빚을 져서 생긴 것도 아니고, 내가 대학원에 진학해서 생긴 것도 아니다. 한국사회는 20~30대들에게 '대학밖에는 길이 없다'고 강요하고, '빚을 내서라도 대학에 가야 한다.'고 지시하기 때문에 모두가 대학에 가야 한다고 믿는다. '대학만이 살 길'이라고 가르치는 학교, 부모, 주변 사람들, 대학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라고는 대학밖에 모르는 이 사회가 청년들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채무자로 만들고 있다. 대학을 갔다는 이유만으로 빚을 지게 하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이 강요된 빚에 대한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물어야 한다. 특히 채권자들에게 말이다.'

(위의 책 21쪽) 

 

지금 제 또래의 어른들 (4~50대)는 경제 고도 성장기를 거쳐온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판단합니다. 우리 때는 대학을 나오면 무조건 취업할 수 있었어요.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학벌이 무조건 남는 장사였어요. 하지만 지금의 청년 세대(2~30대)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어요.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모르면 '너는 비싼 등록금 줘서 대학 보냈더니 아직도 놀고 있냐? 학자금 대출은 어떻게 갚을래?' 이런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게 되지요. 

 

나이든 중년의 필자와 젊은 독자들 사이의 심리적 격차는 편집자가 조정해주는데요, 나이든 부모들과 젊은 자식 세대 간의 격차는 누가 조정할까요? 서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 받는 상처,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이 책은 지금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와 자식 세대가 함께 읽으면 좋겠어요. 학자금 대출로 쌓여가는 빚이 부모가 가난한 탓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빚이 쌓여가는 게 자식이 무능한 탓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빚 권하는 사회, 이 불합리한 세상을 고치기 위해 부모와 자식이 함께 뜻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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