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pd 2022. 8. 1. 05:56

(오늘 글은 많이 깁니다... 사정이 있어 그러니, 양해 부탁 드립니다... ^^)

지난 봄 어느날 블로그에 글이 올라왔어요. 전북 부안 낭주중학교에서 일하시는 최주성 선생님이 아이들과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읽고 저자 초청 강연을 듣고 싶으시다고요. "네, 달려갈게요!"하고 학교로 갔습니다.

저 멀리 학교가 보이네요.

우와, 학교 앞에 <작가와의 만남 행사> 플래카드가 붙어 있어요!

어렸을 때 꿈이 모교에 플래카드 붙는 거였는데!

<본교 3학년 재학생 김민식, 전국 ** 대회 우승>

'그럼 나를 찐따라고 놀리던 친구들이 깜짝 놀라겠지?' 그런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며 살았는데, 나이 50이 넘어 남의 학교 플래카드에 나오는 것도 기분 좋네요.

근데, 어라?

플래카드에 이름이 잘못 나왔네요.

제 사진에 오은 시인의 이름이, 오은 시인의 사진에 제 이름이 들어갔어요.

애고, 본의 아니에 유명인 명의 도용을!

최주성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SNS에 사진을 올렸어요. 페이스북에서 웃기다고 난리가 났어요. 누가 오은 시인에게 제보를 하셨나봐요. 그 덕분에 시인과 페북 친구가 되었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

그날 강의는 정말 즐거웠어요.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낭주중학교 친구들 덕분에 간만에 오프라인 강의의 즐거움을 만끽했어요. 

끝나고 저자 사인할 때, 한 친구는 제 캐리캐처를 그려서 선물로 줬어요. 아이, 조아!

'이렇게 웃으신다. 엄청 행복해보이심' 이라고 쓴 글을 보고 또 행복해졌어요. 그림 고마워요, 배여원님!

전북 부안에 내려가며 맛집 검색을 했더니 마침 터미널 근처 신생반점이 상위권에 뜨더군요. 터미널 근처 식당이 맛집 검색에 뜨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무슨 조화지? 궁금한 마음에 찾아갔어요.

자장면을 시켜서 먹는데요. 역시 지방 인심이 후해요. 양도 푸짐하고 맛있는데... 어라? 쫄깃쫄깃하니 씹히는 게 있네? 돼지고기는 아니고, 이게 뭐지? 골뱅이가 들어가는데요. 정말 맛있어요. 강의 중에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

"신생반점은 짬뽕이 레전드에요. 짬뽕도 드셔보세요!"

강의 끝나고 다시 신생반점에 갔어요. 짬뽕도 맛있네요. 근데요. 저는 매운 걸 잘 못 먹어서, 짜장면에 한 표를 던지렵니다! 골뱅이의 쫄깃한 맛, 아, 글 쓰다 보니 또 먹고 싶어지네요.

페이스북에서 저는 책 소개글을 열심히 읽습니다. 베스트셀러도 좋고, 평론가 추천책도 좋지만, 저는 취향이 통하는 지인이 추천한 책을 더 좋아하거든요. 그러던 어느날 장강명 작가님의 타임라인에 반가운 소식이 올라왔어요.

 

*** 1회 그믐밤 안내 ***

따뜻하고 깊이 있는 SF 만화 『다리 위 차차』를 함께 읽고 작은 서점에 모여 이야기 나눠요.

2019년 SF어워드 만화/웹툰 부문 대상 수상작인 『다리 위 차차』 1, 2권이 드디어 종이책으로 나왔습니다. 이 작품을 쓰고 그린 윤필 작가님, 재수 작가님,책을 편집하고 펴낸 송송책방 김송은 대표님이 그믐과 함께 북토크를 엽니다. 북토크 사회는 추천사를 쓴 장강명 작가님이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믐은 음력 29일마다 동네 책방에서 북토크 행사를 열려고 합니다. 행사 이름은 ‘그믐밤’이라고 해요.

그믐밤에 참여하지 않으시고 『다리 위 차차』를 읽고 그믐에 글만 남겨주셔도 좋고, 반대로 책을 읽지 않고 그믐밤 행사에만 놀러 오셔도 좋습니다. 그믐밤 행사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은 모임 안에 있는 신청 방법을 보시고 신청 글을 적어주세요. 참가비는 없습니다.

 - 무엇을? 『다리 위 차차』 윤필 작가님, 재수 작가님 북토크 (사회자: 장강명 작가님)
 - 언제? 7월 27일(음력 6월 29일) 수요일 저녁 7시 29분 (북토크 45분, 질문답변 44분)
 - 어디서? 송송책방 (서울 강남구 언주로 110 경남2차 상가 203호)
 https://naver.me/5RcqELej
 - 참여 인원: 20명
 - 참가비: 무료
 - 신청 방법: 그믐 사이트에 오셔서 설명을 읽어주세요.

 

아니, 세상에! 제가 평소 흠모하던 장강명 작가님을 직접 뵐 수 있는 기회라고라? 그리고 윤필 작가님이라니! 2016년 블로그에 올린 리뷰가 있어요.

2016-71 지하철도의 밤 (윤필 만화 / 창비)

'은하철도 999'라 기억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원작 '은하철도의 밤'에서 모티브를 따온 만화다. 음... 감동이다... 내가 만약 단막극을 만든다면 이 작품을 영상에 옮겨보고 싶은 욕심이 있으나, 잭 스나이더 생각해서 참기로 한다... 때론 영상으로 훼손할 수 없는, 원작의 품위가 있는 법이다.


'은하철도 999'의 철이와 메텔의 이야기를 이렇게 각색할 수도 있구나. 새로운 시각의 청춘 성장담. 인물과 도시가 함께 성장한다. 콧등이 찡한 감동... 아직 못 보신 분들께는 일독을 권한다. 역시 이 시대, 원안 아이디어의 가장 치열한 격전장은 웹툰인 것 같다.

https://free2world.tistory.com/1003

 

책들의 테마파크 7. 그래픽 노블

2016-68 어메이징 그래비티 (조진호 글 그림 /궁리) 세상에! 어느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이 쓰고 그린 만화라는데, 책의 퀄리티에 깜짝 놀랐다. 중력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과학의 모든 이야기를 풀

free2world.tistory.com

 

서점에서 <다리 위 차차> 두 권을 주문해 읽었어요. 와아아! 놀라운 작품이네요. 윤필 작가님이 그새 작가로서 성장하신 모습이 놀라웠고요. 재수 작가님의 그림 연출도 탁월했어요. 장강명 작가님이 왜 이 책을 가지고 저자 토크를 하고 싶어하시는지 알 것 같았어요. 그믐은 장강명 작가님이 사재를 출연해 만든 책 읽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입니다. 달려가 회원 가입을 하고 모임 신청을 했어요. 

마침 송송책방은 제가 좋아하는 양재천 근처에요. 저녁 6시 30분. 선선해서 산책하기 딱 좋은 시간. 양재천을 걷습니다. 내가 흠모하는 장강명 작가님을 뵈러 가는 발걸음은 이렇게 들뜹니다. 윤필 작가님을 처음으로 뵙는다고 생각하니 더 설레네요. 재수 작가님과 두 분은 오늘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벌써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저자 사인을 받고 있네요.

저도 책을 가져왔지요. 싸인 받아서 민서에게 가서 자랑하려고요. 둘째 민서랑 같이 읽고 싶은 책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 (본격적인 책 이야기는 다음에 할게요. 오늘은 할 말이 좀 많아요... ^^) 

왼쪽부터 재수 작가님, 윤필 작가님, 그리고 장강명 작가님!

한 시간 반 동안의 북토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행되었고요. 작가님과 그믐의 대표님이 쏘신 피자와 맥주를 먹고 마시며 밤 10시 반까지 뒷풀이까지 했어요. 그날 오신 손님들 중에는 <강원도의 맛> 전순예 작가님도 있어요. 작가님도 송송책방에서 책을 내신 저자분이거든요. 1945년생 주부로서 어린 시절, 강원도에서 살며 만났던 사람과 음식에 대한 정감있는 이야기가 참 좋았어요. 책에서 작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앞으로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이제는 '1945년생 주부'가 아닌 작가로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의외로 글을 쓰고 싶다는 많은 이들을 만납니다. 글이란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쓰지 않으면 못 쓰는 것이 진리임을 깨달았습니다. 쓰고 싶다면 모두 용기 내어 써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https://free2world.tistory.com/1769

 

60년만에 지킨 약속

지난번에 소개한 <강원도의 맛>의 작가 전순예 선생님은 1945년생 주부입니다. 2018/06/08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입덧이 그렇게 힘든가?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요. 학교에

free2world.tistory.com

가을에 전순예 선생님의 새 책이 나온데요. 방문판매원으로 일하실 때,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쓰셨다는 말씀을 듣고, 설렙니다. 사모하는 작가님의 신간 소식은 늘 반가워요. 

그런데요. 그날 제 옆자리에 앉으신 분이...

바로, 바로, 바로... 오은 시인님이셨어요!

와! 7월 8일에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맺은 시인을 20일도 안 되어 실제로 만나게 되었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

오은 시인님께서 페이스북에 후기도 올리셨어요.

어제는 출판사 겸 서점 겸 카페인 송송책방에서 윤필 작가와 재수 작가의 북토크가 있는 날이었다. 『다리 위 차차』(송송책방, 2022)의 복간을 기념하는 행사이자 지식공동체 그믐에서 개최한 첫 오프라인 행사였다. 사회자는 장강명 작가였다. 앞으로도 음력 29일마다 동네책방에서 북토크 행사를 이어간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행사장에서 우연인 듯 필연적으로 김민식 피디님을 만났다. 지역의 한 학교에서 이름이 뒤바뀌는(?) 바람에 인연이 생겼는데, 실제로 뵈니 굉장히 호탕한 분이었다. 웃을 때 표정은 분수 같았고 웃음소리는 폭포수 같았다. 
『다리 위 차차』에 대한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어 기쁜 날이었다. 해를 보고 나갔다가 달을 보며 돌아온 날이었다.

아웅, 웃을 때 표정은 분수 같고 웃음소리는 폭포수 같다니.... 시인의 글은 이렇게 다르군요.

평생 저는 촬영장에서 액션을 외치며 살았어요. "레디, 액션!"

2020년에 글로 사고를 치고 물러나면서 펜대를 꺾었어요. 글을 쓸 수도 없고, 책을 낼 수도 없고, 강의를 할 수도 없었어요. 바쁘게 살던 사람이 하던 일을 다 그만두니 오랜 시간 우울하더군요. 

그러다 어느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노후에는 액션이 아니라 리액션의 삶을 살자. 

꼭 내가 책을 내어야 하나? 평생 독자로 즐겁게 살았는데, 다른 사람의 책을 열심히 읽으면 되는 거 아닌가?

꼭 내가 강의를 해야 하나? 다른 저자의 북토크를 찾아다니며 재미난 이야기를 들어도 충분한 거 아닌가?

그래서 리액션을 열심히 합니다.

선생님이 메일을 보내주시면, "네, 달려갈게요!"하고요.

누가 맛집을 추천해주면, "네, 먹어볼게요!"하고,

작가님이 글을 올리면, "네, 신청할게요!"하고 리액션을 합니다.

그 리액션이 모여, 오은 시인님을 만나고, 윤필 작가님과 재수 작가님도 뵙는 어느 멋진 여름밤의 추억이 만들어졌어요. 

내가 무엇을 하기 힘들 때도 있어요. 괜찮아요. 힘들어서 그런 거에요. 그럴 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어요. 액션이 힘들 땐 리액션만 해도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다니고, 그들이 하는 일을 응원하며 사는 것도 괜찮아요.

 

그날 이후 저는 윤필, 재수, 오은, 세 분의 팬이 되었어요.

리액션이 맺어준 인연, 독자로서 오래오래 이어가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블로그를 찾아와주시는 여러분의 리액션이 제게는 일용할 양식입니당~^^

다음 시간에는 <다리 위 차차> 독서일기와 그믐밤 1회 모임 후기가 올라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