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촌놈의 눈꽃 여행
어려서 제가 살던 울산에는 눈이 귀합니다. 눈이 쌓이는 건 1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고요. 대부분은 조금 내리다 바로 녹아버려요. 그래서 저는 서울에 올라온 후 겨울에 눈을 구경하는 게 여전히 신기합니다. 지난 가을 전철을 타고 가는데 이런 포스터가 눈에 띄었어요.
오! 대관령 눈꽃축제? 눈구경을 실컷 하겠네? 바로 휴대폰에 일정을 저장해두고 한 달전에 미리 고속버스를 예약했어요. 마침 횡계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축제 행사장이 있네요. 1월 27일 아침 8시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갑니다. 강원도 산간 지역에는 폭설 경보가 발령중이에요.
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눈의 세상! 서울에서만 살면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잊고 살때가 많아요. 겨울에 설화로 가득 덮인 나무와 산, 멋지네요.
오전 10시 40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마을, 해발 700미터 횡계리 송천마을에 도착했어요. 여기가 진짜 설국이네요. 버스에는 동남아에서 온 여행자도 있었어요. 따듯한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은 여기서 평생 처음 눈을 보기도 하겠지요. 얼마나 신기할까요? 죽을때까지 눈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가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눈꽃축제는 얼마나 귀한 경험인지요.
눈꽃축제의 마스코트인 눈동이를 형상화한 대형 눈조각.
행사장 곳곳에 거대한 눈조각이 있어요. 고도가 해발 100미터 오를 때마다 기온은 1도가 내려갑니다. 여기가 해발 700미터라는 건, 서울보다 5도 정도는 기온이 낮다는 거죠. 그날도 서울은 영하 1도였는데 여기는 영하 6도였거든요. 그러니 눈조각을 만들어도 녹을 걱정이 없는 거죠.
얼음썰매장이 있는데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물론 저처럼 철없는 어른도 좋아하지요. ^^ 눈을 맞으며 눈썰매 타기. 어린 시절의 꿈이었는데 말입니다. 은퇴자의 일상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주는 종합선물셋트랍니다.
100미터 길이의 초대형 눈터널.
곳곳에 얼음 조각이 있어요.
얼음으로 장식한 아이스카페도 있네요. 축제장 입장료는 10000원, 눈썰매장 이용료는 5000원입니다.
플라스틱 썰매를 끌고 온 아이들이 눈밭위를 구르는 한쪽으로 버스킹 공연이 한창입니다.
'더 웜즈'라는 2인조 밴드의 공연이었는데요. 레퍼토리도 좋고 연주도 흥겨워 아주 즐거웠어요. 첫 곡으로 들국화의 <세계로 가는 기차>를 들려주셨어요. 고등학생 때 이 노래를 들으며, 언젠가는 '세계로 가는 기차'를 타고 떠나고 싶었지요. 훨훨~~~
세계로 떠나도 좋구요, 대관령으로 가도 좋은데요. 진짜 좋은 곳은 바로 내 곁에 있어요. 다음날 아침 28일에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섭니다. 친구랑 눈꽃산행을 가기로 했거든요.
3호선 경복궁 역에서 버스를 타고 홍지문에서 내려요.
아직 해가 뜨기 전...
옥천암에서 친구를 만나
홍제천을 건너
북한산 자락길을 걷습니다.
나름 서울 시내 산책로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여기는 처음 와봅니다. 이렇게 새로운 길을 발견할 때마다 신나요! 앗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새로운 길 추가요!
서대문 이음길이라고요. 안산~인왕산~북한산~백련산~궁동산~ 홍제천까지 5개 코스를 이어 26.2㎞구간에 산책로를 만들었어요.
원래 눈이 온 다음날 산행은 조심해야 해요. 미끄러워서 계단에서 넘어지기 십상이거든요.
그런데 이 길은 코스 전체가 데크 산책로라 안전해요. 계단이 하나도 없어요.
중간에 쉬어가기 좋은 정자도 있고요.
1코스인 안산 구간은 홍제천 인공폭포부터 안산방죽~안산자락길~무악재 하늘다리 까지 5.5㎞를 연결했으며, 2코스인 인왕산 구간은 무악재 하늘다리부터 인왕산 둘레길 ~북악터널배수지~옥천암까지 3.5㎞를, 3코스인 북한산 구간은 옥천암부터 북한산자갈길~산골고개 생태통로까지 4.2㎞를, 4코스인 백련산 구간은 산골고개 생태통로부터 백련산 정상~백년약수골, 홍제천까지 4.8㎞를, 5코스인 궁동산 구간은 홍제천부터 사천교~낙원교회, 군부대, 안산 만남의 광장까지 3.7㎞의 보조노선을 연결했다.
서울 시내 곳곳에 걷기 좋은 산책로가 많아서 행복합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정보를 블로그에 남겨둡니다. 날이 풀리면 전구간을 걸어보고 싶은데요. 그때 참고하려고요. 제가 쓰는 블로그는, 미래의 나를 위한 여행 가이드에요.
겨울이 가기 전에 눈의 정취를 즐기시어요~
내가 있는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풍광을 가진 곳일 수 있어요.
멀리 있는 무언가를 욕망하기보다,
내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에 감사하며 살렵니다.
'공짜로 즐기는 세상' 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