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pd 2025. 1. 27. 05:31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를 읽고 트레바리 독서 모임을 했습니다. 멤버들이 모임 전에 책을 읽고 독후감을 올리는데요. 저는 글을 읽고 답글을 썼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띄운 온라인 편지 중에서 남기고 싶은 생각의 단편을 블로그로 공유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민식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마다 류비셰프 독후감을 읽고 편지를 씁니다. 음, 그러니까 이건 마치 여러분이 류비셰프의 삶을 책으로 만나고 그 분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제가 중간에서 슬쩍 들여다보고, '류비셰프 선생님이 답을 하실 수 없어 조수인 제가 대신 답을 해드립니다.'라고 하는 느낌? ^^

처음에 제목을 보고 '시간을 정복하지 못한 자'라니 내 이야기인가? 하고 지레 놀랐어요. 스무 살에 이 책을 읽었고 평생 다섯 번은 넘게 읽었지만, 여전히 저는 시간을 정복하진 못했어요. 아니, 굳이 변명을 하자면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이제는 하산길이니 좀 느긋하게 살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보았던 그 꽃?'

요즘 저의 목표는 시간을 정복하는 자가 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50이 넘어 스스로에게 주는 여유인 거죠.

'시간을 의식하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기록하려 노력하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맞아요. 지금 저의 자세가 딱 그래요. 완벽하게 시간을 통제하는 대신, 내게 주어진 은퇴 후의 삶이라는 매 순간에 감사하면 사는 것...

최근 3주간 스리랑카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 중에 어떤 분을 만났는데요. 여행을 다니면서도 무조건 저녁 9시 이전에 잠들고 새벽 4~5시 사이에 일어나 책을 읽고 하루에 한 시간 근력운동을 하고 매일 글쓰기 루틴을 수행한다고 했더니 '그렇게 규칙에 얽매인 삶을 살아도 행복한가요?'라고 물으시더라고요. ^^ 그래서 말씀드렸어요. '이렇게 살아서 행복하지 않다면, 이렇게 살 이유가 없지 않나요?' 류비셰프는 죽을 때까지 시간의 사용 기록을 꼬박꼬박 매일 남깁니다. 시간 관리 습관을 평생 이어간 이유, 그가 하루하루 충실한 삶을 살며 행복했기 때문 아닐까요?

독후감에서 어떤 분이 덴젤 워싱턴이 한 말을 인용하셨어요. Learn, earn, return. 응? 배우고, 벌고, 다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라는 건가? 뜻이 궁금해 검색해보니 이런 글이 나오네요.

Alan Loy McGinnis said it best when he said, “Learn, earn, return; These are the 3 essential phases of life.” There is no more noble occupation in the world than to assist another human being in succeeding.”

앨런 로이 맥기니스가 이렇게 말했지요. “배우고, 벌고, 돌려주라; 이것이 인생의 세 가지 필수 단계이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돕는 것보다 더 고귀한 직업은 세상에 없습니다.

아항, return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려주는 것이군요. 이 글에 의하면 저는 독서의 3단계에 들어선 것 같아요. 책을 읽어 배우고, 책을 써서 벌고, 그리고 책에서 배운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단계. 음, 다른 사람의 성공을 돕는 것만큼 고귀한 일도 없다고 하니, 트레바리 클럽장, 더욱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날이 독후감 제출 마감일이었어요. 글쓰기가 부담스러운 분들을 위해 제가 매일 블로그에 업데이트하던 시절, 스스로에게 외우던 주문을 알려드렸어요.

'나는 오늘도 아주 하찮은 글을 한 편 쓰겠어.’
시대에 길이 남을 명문을 쓰겠다고 결심하면 죽어도 글은 못 씁니다. 그냥 아주 허접한 글을 쓰겠다고 결심하는 겁니다. '그래, 내가 쓴 글을 보고 사람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어! 이 정도 글이라면 나도 쓰겠다. 그런 마음이 드는 글을 써야겠어.'

헬스클럽에서 운동할 때, 젊은 몸짱들이 무게를 70킬로로 올려놓으면, 저는 겸손하게 30킬로로 내려서 운동을 합니다. '그래, 나는 오늘 운동 잘 하는 분들에게 자부심을 심어드리러 온 거야!' 이렇게 생각해야 젊은 몸짱들 사이에서 주눅들지 않고 매일 운동할 수 있거든요.
우리 모두 자신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 말고, 더 관대한 삶을 살아보아요~^^

저는 독서광에 영화광입니다. 영화에 한참 빠져서 살 때, 키노나 씨네21 같은 영화 잡지에 나오는 리뷰를 읽는 것도 즐거웠어요. 똑같은 영화를 보고, '아, 이 사람은 이렇게 느낄 수도 있구나.' '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하고 감상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고요. 내가 놓친 지점을 되새겨보는 맛도 있어요. 리뷰를 읽을 때마다 나의 영화 감상이 더 풍성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책을 읽는 것도 즐겁지만 책 리뷰를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트레바리를 시작한 덕분에 회원 여러분의 리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저는 살면서 3번 정도 시간과 새롭게 관계를 맺었어요. 첫번째는 20대, <류비셰프>를 읽고 나서 강박적으로 시간의 생산성을 키우기 위해 시간 관리에 매달렸던 시기고요. 두번째는 30대 예능 피디가 되고 나서 시간 관리를 그만 둔 시기입니다. 그 시절에는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나머지 시간은 다 프로그램 촬영/편집/아이디어 기획을 고민하면서 살았거든요. 즉 어느 한 가지 일에 몰입할 때는 시간관리가 의미없더군요. 숨쉬는 내내 그 일만 하고 있으니까. 그러다 세번째 시간과 새로운 관계를 맺은 건 바로 퇴사입니다. 은퇴하고 이제 저는 더 이상 시간의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아요. 내 삶의 생산성을 키우고 싶었다면 퇴사하지 않고 회사에서 일을 할 기회를 찾았겠지요. 

저는 류비셰프를 읽고 평생 열심히 살았고, 이제는 조금 더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 사람인가?' 오로지 그 생각만 하고, 그 조건에 맞는 일만 하고 삽니다. 일은 줄이고 휴식을 더 늘리면서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취미 활동이 독서고요, 나를 설레게 하는 건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입니다. 그런 점에서 트레바리를 시작한 건 신의 한 수입니다. ^^ 

어렸을 때 저는 일기를 열심히 썼는데요, 어머니랑 여동생이 제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걸 알고 난 다음부터 시들해졌어요. ^^ 그즈음 일기 쓰기는 나 자신과의 대화였어요.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일기장에 털어놓았지요. 왕따를 하는 쪽은 가해자고 왕따를 당하는 건 피해자이니 가해자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피해자가 되는 게 낫다, 뭐, 그런 민망한 정신승리의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회사에서 힘든 시절을 보낼 때 블로그에 독서일기를 올린 것도 정신승리네요. 니들이 나에게 드라마 연출을 안 맡긴다고 내가 괴로워할 줄 아느냐? 보아라, 나는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성장하는 삶을 살고 있노라. 이런 류의... 제게 글쓰기는 나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응원의 시간이었어요. 

회원 중에서는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가 '영어 정복처럼 거의 불가능한 일을 출판사가 억지로 붙인 이름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신 분도 있었어요. 그 글을 읽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어요. 제 20대의 목표가 영어 정복이었거든요. 미쳤지요. 그런 목표를 세웠다니. 다만 지나고 나서 깨달은 점. 불가능해보이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삶도 아름답더라고요. 칠 수 없는 공은 치지 않고 잡을 수 없는 공은 잡지 않는다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식 철학도 좋지만, 불가능한 일도 한번 도전해보는 게 젊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류비셰프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여럿 해냅니다. 시간을 정복하면 가능하거든요.

(오늘의 짤방은 최근 잡지 인터뷰하고 건진 사진입니다~^^ 설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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