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아가는 삶
좋은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는 삶 아닐까요?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게 자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 사람인가? 인간관계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인생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나라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알아야 잘 살 수 있습니다. 삶에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니까요. 고령화 시대, 우리는 퇴직하고 기나긴 노후를 보내야 합니다. 이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 있습니다.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권민/생각속의집)
저자는 20대에 광고 기획자 AE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광고 기획의 사회적 수명이 매우 짧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일을 좀 더 오래 하고 싶어서 브랜드 컨설턴트가 되었습니다. 서른아홉 살에 주변을 살펴보니 쉰 살이 넘는 브랜드 전략가가 없었어요. 저자는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었는데 업계 평균 은퇴 나이는 50대였어요. 그래서 저자는 마흔 살부터 50대 이후의 삶을 준비했습니다.
업종별, 지역별 그리고 개인적인 편차로 인해서 은퇴 준비 시점을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현역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을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나이 서른에 MBC 예능 피디가 되었는데요. 선배들이 그러더라고요. 예능 피디의 전성기는 30대라고요. 전성기를 맞기도 전에 나이 마흔이 되었어요. 어떻게 하지? 드라마를 보니 대장금을 연출한 이병훈 선배님은 50대에도 맹활약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드라마 피디로 이직을 했어요. 40대에 드라마 피디로 이름을 날려야 커리어가 오래 가는데 그러지는 못했어요. 사회적 수명이 긴 직업을 또 찾아봤습니다. 책을 쓰는 작가는 나이 70에도 일을 하고 강연을 다니시더라고요. 퇴직 후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회사를 다니는 10년 동안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을 올렸어요. 블로그 원고를 모아 매년 한 권씩 책을 내기도 했고요. 쉰둘의 나이에 회사에서 구조조정 소식이 들려왔을 때 바로 명예퇴직을 선택하고 작가와 강사로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100세 시대에는 끊임없이 다음 직업으로 옮겨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직업의 수명보다 사람의 수명이 더 길거든요.
수족관에서 살다가 바다로 돌아간 고래의 생존율은 얼마나 될까요? 자신의 본능으로 야생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5퍼센트를 넘지 않는답니다. 왜 이렇게 생존율이 낮을까요? 바다와 비슷한 조건에서 적응훈련을 하고 바다로 내보내도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는 환경이 아니라 천적 때문입니다. 천적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길들어진 동물이 야생에서 본능으로 살아남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방송사 피디로 일하면서 퇴직한 선배들이 노후에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공중파 피디가 잘 나가던 시절, 예능 피디나 드라마 피디는 제작 현장에서 떵떵거리며 살았어요.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살다 막상 퇴직하고 나가보니 바깥은 정글입니다. 천적들이 우글거리는 정글. 가장 무서운 천적이 누구일까요? 바로 생계입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이 사라지고 매달 들어오는 월급도 사라지고 든든한 빽처럼 나를 지켜준 회사의 직함이 사라집니다. 제일 두려운 건 바로 생계에 대한 불안입니다.
젊어서는 부지런히 벌고 모아야 합니다. 노후에 생계는 미리 재테크로 대비를 해놓고 퇴사해야 문제가 없습니다. 돈만 모은다고 노후대비가 끝나는 건 아닙니다.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답을 위해 평소에도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 사람인가?’ 저는 평생 책 읽는 게 취미였습니다. 매년 200권 이상 책을 읽는 독서광으로 살았으니 노후에는 매년 한 권의 책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작가로 인생 이모작에 도전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퇴직 후에는 회사명이나 직급이 사라집니다. “MBC PD 김민식입니다.”에서 MBC PD가 사라질 때, 김민식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답에서 자신만의 브랜드가 만들어지거든요. 자기다움으로 인생의 새로운 길은 찾지 않고, 자기다운 삶을 살지 않았던 이들은 은퇴 이후에 닥쳐오는 삶의 위기 앞에서 이런 질문을 맞닥뜨립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지?’ ‘지금껏, 나는 뭐했지?’ ‘이제, 나는 뭐 하지?’
바로 대답할 수 없는 중장년 질문 3종 세트를 받게 되면, 허무가 몰려옵니다. 다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나는 무엇을 잘하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진짜 무엇을 원하지?’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가장 대답하기 힘든 마지막 질문이 훅, 하며 밀고 들어옵니다.
‘나는 왜 살아야 하지?’
중장년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결론으로 끝납니다. ‘나이 들어도 배우고, 일하고, 취미를 갖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가져라. 그리고 건강한 음식 섭취와 운동은 필수다.’ 중요한 내용이지만 뭔가 허전하지요. ‘어떻게’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일하고, 어떤 취미를 갖고, 누구와 만나야 하는지 등 세부적인 내용은 없고 큰 방향만 제시합니다. 특히 부족한 것이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퇴직 후에 가장 어려운 과제는 인간관계거든요. 관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필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대상도 이 부분에 대해서 공감하고 지향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간관계는 항상 어려운 항목입니다.
퇴직 후의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평소 회사 생활을 하며 관계관리를 해야 합니다. 자산관리에는 돈이 필요하지만 관계관리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좋은 관계는 오랜 시간을 통해 만들어지거든요. 제가 MBC를 24년 다니고 나왔는데요. 지금 제게 가장 소중한 친구들은 다 직장에서 만났어요. 퇴사 이후 이어지는 인연의 특징은 다 저와 취향이 같다는 겁니다. 산책과 맛집 탐방을 좋아해서 동네 브런치 가게를 찾아다니는 산책 친구가 있고요.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좋은 책을 서로 소개해주는 독서 친구가 있고요. 등산과 자전거 타기를 좋아해서 함께 레저 활동을 같이하는 운동 친구도 있어요.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 덕분에 만나면 좋은 친구들을 정말 많이 얻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돈도 벌고 친구도 만들었으니까요.
나다움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더 나다워질 수 있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하지 않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오래도록 건강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술 담배 커피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모임과는 멀어지더군요. 동창회에 나가지 않고 부서 회식을 해도 2차는 가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일찍 들어와 일찍 잠을 잡니다. 수면 패턴을 깨지는 않아요. 대신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직장 생활도 하면서 이모작 준비를 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주말에 남들 골프 연습장 다닐 때 저는 도서관에 갔습니다. 남들 하는 것 다 하면서 나다워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노후대비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100세 시대, 우리의 목표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것, 휴먼브랜드가 되는 것입니다. 휴먼브랜드는 1등이 목표가 아닙니다. 경쟁에서 남을 앞서는 넘버원이 아니라 자기다움으로 온니원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휴먼브랜드가 가진 위험이라면 단기간에 자신이 브랜드가 되려는 것입니다. 저자의 경우 서른 살에 시작해서 마흔 살까지 준비했답니다. 마흔 살에 다시 시작해서 현재까지 계속하고 있다고요. 나 자신이 죽은 뒤에도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은 한 번에 끝날 수 있는 과정이 아닙니다. 자아실현은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고, 자기다움은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다운 삶은 어떤 것인지 긴 시간을 두고 고민하고 실행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보면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작은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어느 날 거대한 물고기를 잡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의 공격으로 그만 물고기는 뜯기고 맙니다. 소설 속 노인 산티아고는 쿠바 어촌에 살았던 ‘그레고리오 푸엔테스’라는 실존 인물에서 비롯되었는데요.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발간했을 당시, 그레고리오 푸엔테스의 나이는 54세, 헤밍웨이는 53세였습니다. 지금 시점에 맞춰 그의 나이를 감안하여 회고록으로 쓴다면 제목은 《중년과 바다》 혹은 《아저씨와 바다》가 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50대만 넘어도 노인이라고 했는데요. 이제는 아닙니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점입니다.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그 답을 준비함으로써 활력이 넘치고 나다운 삶을 사는 노후를 준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