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pd 2024. 2. 21. 04:57

어느날 통역대학원 동기 단톡방에 글이 올라왔어요. <코칭의 모든 것>무료 온라인 강의가 열리는데요, 무려 25주 과정이랍니다. 세상에, 반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재능기부로 강의를 해주신다고? 예전에 제가 소개한 적이 있는 <인생을 바꾸는 세 가지 프로페셔널 시점>의 윤정열 저자가 올린 톡이었어요. 그 친구가 요즘 코칭을 공부하고 있는데요. 무척 잘 가르치시는 선생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신청했어요. 

첫 시간에는 코칭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배웠는데요. 원래 영어로 코치Coach는 4륜마차입니다. 그러다 스포츠 코치라는 직업이 등장해요. 마차라는 게 사람을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주는 거잖아요. 평범한 선수가 뛰어난 선수가 되고 싶다면 그를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사람. 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코치인 거죠. 이때 코치가 반드시 코칭을 받는 사람보다 더 뛰어날 필요는 없어요. 그 분야의 전문가일 필요도 없고요. 히딩크가 박지성보다 공을 더 잘 차는 건 아니지만, 박지성을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것 처럼요. 그럼 코치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전문가가 자신의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랍니다. 그 말씀을 듣고, '응? 이건 피디의 역할이랑 비슷한데?' 싶었어요.

저는 방송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상태로 MBC에 입사했어요. 조연출 기간 동안 열심히 배웠지요. 많은 사람이 피디를 현장에서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감히 아는 것도 없는데 지시를 내릴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질문을 던지고 귀를 기울였어요. 작가에게 물어봐요.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싶으세요?" 배우에게는 "이 배역을 어떻게 연기하고 싶어요?" 촬영 감독에게는 "이 장면을 어떻게 찍으면 좋을까요?" 작가의 이야기에 귀기울인 후, "아 그런 이야기라면 이 배우가 잘 맞을 것 같은데요?" 배우의 이야기를 들은 후, "아, 그런 감정이라면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게 좋겠네요?" 촬영 감독의 이야기를 들은 후, "아, 그런 앵글이라면 조명을 많이 배치해야겠네요?" 즉 그 사람의 비전을 화면에 옮기기 위해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가동하는 거죠. 각 분야의 전문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바가 있고요,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 그게 피디에요.

촬영장에 나갈 때마다 혼자 되뇌이는 만트라(주문)가 있어요. "나는 답을 모른다." 자칫 내가 가진 생각이 정답이라고 믿는 순간, 타인의 말에 귀기울일 수 없어요. 대본을 읽고 떠올린 나만의 생각을 정답이라고 믿으면, 배우의 연기를 배척하게 되고 카메라맨의 창의성을 제한하게 됩니다. 나 혼자 일하는 게 아니에요. 수십명의 전문가가 함께 일하는 공간에서는 각자가 준비해온 답을 최대한 존중할 때 모두가 즐겁게 일할 수 있어요.

<코칭의 모든 것> 수업을 진행하는 이한주 선생님은 코치라는 직업을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전문가들의 예를 듭니다. 티처, 상담가, 멘토, 컨설턴트. 티처에겐 학생이, 상담가에겐 환자가, 멘토에겐 멘티가, 컨설턴트에겐 클라이언트가 있어요. 다 위계적인 관계입니다. 답은 티처, 상담가, 멘토, 컨설턴트에게 있어요. 그걸 학생, 환자, 멘티, 클라이언트에게 전하려고 하지요. 코칭은 수평적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답은 코칭을 받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갖고 있어요. 코치는 질문을 던져 그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제가 생각하는 피디의 역할이랑 정말 비슷하네요.

코칭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이유가 있어요.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진로 상담이 늘 어려워요. 고용 시장의 환경이 바뀌었거든요. 예전에는 공중파가 독과점을 행사하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다양한 플랫폼과 미디어가 있는 시대에요. 피디나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을 선망하는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많이 늘어나 콘텐츠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요. 이런 시기에 제자들에게 어떤 길을 안내하면 좋을까?

코칭 강의를 듣고 깨달았어요. 내가 학생들에게 답을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답을 스스로 찾는 거라고요. 제가 "예능 피디라는 직업이 재미있으니 방송사 공채를 준비하세요."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자신의 적성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찾는 게 더 중요하지. 코칭을 배우면, 진로 상담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참 잘 했다고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견해하는 중입니다. ^^ 역시 가르치려면 우선 배워야해요.  

제가 MBC 입사하고 처음엔 좀 당황했어요. 선배들이 일을 가르쳐주지 않아요. 아니 일을 가르칠 시간이 없어요. 각자 자기 일 하느라 바빠서. "이거 어떻게 하나요?" 하면 대부분 "응, 그거 그냥 민식씨가 알아서 해봐."라고 합니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익숙해지니까 정말 좋더군요. 그냥 내가 알아서 하면 되고요. 혹 실수를 하면 선배가 뒷감당을 해주더라고요. 피디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제작 자율성이므로 함부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함부로 가르치지 않는 사람에게 일을 어떻게 배울까요? 잘 물으면 됩니다. 물어보면 알려주거든요. 묻지도 않는데 가르치려 들면 꼰대가 됩니다. 묻는 사람에게 가르쳐 주지는 않고 핀잔만 주면 갑질이고요. 잘 물으면 잘 가르쳐주고요. 그럼 귀기울여 듣고 실천해봅니다. 해보고 잘 안되면 다시 가서 물으면 되고요. 조연출 시절 끊임없이 묻고 들었는데요, 그게 제 평생의 인생관이 되었어요. <말하기의 태도>에서도 강조한 내용이지만, 인풋과 아웃풋의 비율은 8대2입니다. 주로 듣고, 말은 최대한 아낍니다. 

참 어려운 시대입니다. 수명은 늘었는데, 노후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요. 다음 세대에게 도움을 주려면 잘 말해야 하는데요. 이게 쉽지 않거든요. 꼰대가 되지 않고 좋은 어른이 되려면 소통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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