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 독서 일기

책 읽는 자신을 응원해주세요

김민식pd 2023. 12. 18. 05:11

저는 다양한 종류의 강의를 합니다. 진로 특강, 생산성 특강, 부모 특강, 영업사원 특강, 글쓰기 특강, 영어 공부 특강 등등. 제가 특히 좋아하는 강의는 도서관에서 하는 <내 인생 최고의 선물, 도서관> 혹은 <독서로 인생을 바꾸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독서 예찬론 강의입니다. 도서관 강의를 가면 질의응답 시간에 종종 나오는 질문이 있어요.

“저는 책을 읽을 때 버릇이 있어요. 책을 읽다 책 속에 소개된 다른 책이 있으면 얼른 그걸 또 찾아보고, 그 책을 읽다 작가의 전작이 궁금하면 또 그 책을 찾아놓습니다. 산만하게 읽고 싶은 책을 마구 집어다 놓으니 책장에 읽을 책은 쌓여 가는데, 정작 책 한 권을 진득하니 끝까지 읽지는 못합니다. 이런 제게 따끔한 조언 한 마디 부탁합니다.”

혹은...
“작가님의 블로그를 보면, 소설, 경제, 건강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으시는 것 같아요. 저는 편식이 심합니다. 좋아하는 작가나 좋아하는 장르의 책만 읽고 흥미가 가지 않는 책은 아예 읽지도 않아요. 작가님처럼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저도 책을 쌓아놓고 읽습니다. 도서관에서 한 번에 다섯 권 정도의 책을 빌려 옵니다. 제일 혹하는 책부터 집어 들어요. 읽다가 의외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으면 다음 책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다 흥미로운 책을 발견하면 계속 읽어갑니다. 도중에 흥미가 떨어지면 다시 다른 책을 펼치고요.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읽을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사거나 빌려놓고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이 꽤 많습니다. 괜찮아요. 읽고 싶은 책이 많다는 것도 행복입니다. 먹고 싶은 게 많고, 가고 싶은 곳이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에요. 삶에 설렘이 있잖아요. 아, 이 책도 읽고 싶다. 아, 이 저자의 다른 책도 읽고 싶다. 그런 설렘이 찾아오는 게 책 읽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행복이에요. 그렇게 다양한 책에 끌리는 상태도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

“저도 처음에는 편식이 심했어요. 10대 시절, 무협지에 빠졌던 적이 있고요. 20대에는 스티븐 킹을 만난 후, 공포 소설만 읽고, 또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SF만 읽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러다 나이가 드니 조금씩 관심 분야가 늘어났어요. 나이 40이 넘어 재테크의 중요성을 깨닫고 경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요, 나이 50이 넘어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고 건강에 대한 책을 찾아 읽고 있어요.

처음 책과 친해질 때는 한 사람의 작가나 한 가지 장르만 봐도 괜찮아요. 한 분야를 깊게 팔 때, 우리는 편안함을 느껴요. 익숙한 문체나 익숙한 주제니까요. 새로운 작가나 장르를 시도할 때 낯선 느낌이 있어요. 관심 없는 분야를 억지로 읽으려다 책에서 멀어지기도 해요. 그러니 일단은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지점까지는 그냥 한 가지 책만 읽어도 좋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다른 세계로 나아가고 싶을 때가 오거든요. 안 와도 괜찮아요. 

책을 읽을 때 죄책감을 느끼지 마세요.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비슷한 죄책감을 느낄까요? ‘아, 스마트폰에 깔아만 두고 몇 판 안 하고 그냥 지운 게임이 너무 많아요. 저는 게임을 끝까지 해서 엔딩을 본 적이 없어요. 왜 이렇게 산만할까요?’ ‘저는 드라마 편식이 심해요. 로맨틱 코미디만 좋아해요. 메디컬이나 법정 드라마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이렇게 사람이 취향이 편협해도 괜찮은 걸까요?’ 저 이런 말 하는 사람 못 봤어요.

유독 책 읽는 사람만 죄책감을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독서는 성장 욕구를 가진 사람들의 취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꿀 때, 우리는 책에서 답을 찾습니다. 지금 내가 힘든데, 내일은 힘들지 않기 위해 책에서 위로를 구하고 해법을 찾습니다. 성장 욕구는 때로는 죄책감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나, 왜 겨우 이 정도 밖에 못하는 거지?

너무 훌륭해지려고 하지 말아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에요. 책을 많이 읽어도 좋지만, 적게 봐도 괜찮아요. 책이 유일한 지식의 전달 통로였던 시대는 이미 끝났어요. 세상에는 재미난 게 너무나 많고,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도 너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책을 끝까지 읽지도, 다양한 책을 읽지도 못하고, 그럴 수도 있는 거죠.

그냥 마음 편하게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보는 거죠. 책 읽는 사람들의 연대를 꿈꿉니다. 연대에서 가장 중요한 연대는 나 자신과의 연대입니다. 책 읽는 자신을 긍정해주시고, 응원해주세요.

2023년 12월 26일 광주시 동구청에서 <책정원도서관>을 개관합니다. 개관기념 강연 요청이 와서 달려간다고 했어요. 오후 3시 30분~5시, 30명 선착순 모집하지만, 누구나 관내에서 자유롭게 보실 수 있다네요. 장소는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 895 책정원도서관 1층 로비입니다.

2024년에는 전국 도서관 순회강연을 다닐 겁니다. 강연 일정이 잡히면 블로그에도 올릴게요. 근처라면 놀러 오세요. 책 읽는 사람들의 연대를 꿈꾸며, 2024년도 즐겁게 달려보려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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