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일하는 게 소원입니다.
일하다 죽을까 무서웠는데, 이제는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게 꿈입니다.
드라마 피디로 일할 때, 이렇게 일하다 죽는 게 아닐까 불안했던 적이 많습니다. 미니시리즈를 연출할 때는 하루 두 시간 세 시간을 자면서 날밤을 새워 일했어요. 그렇게 죽어라 고생 해서 만들어도 시청률은 안 나옵니다. 이제 슬슬 배우들과 제작진 눈치가 보여요. ‘밤을 새우면 뭐하나. 재미가 없는데...’ 그런 상태에서도 계속 밤을 새며 찍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습니다. ‘아, 과로사한 드라마 감독들도 다 이런 상황이었겠구나.’
그나마 촬영하며 밤을 새울 때는 억울하지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니까요. 주조정실로 발령이 나서 교대근무를 할 때는 더 힘들었어요. 새벽 2시 넘어 방송 송출을 하고 잠깐 눈을 붙입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다시 아침 방송 준비를 해야 하는데요. 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픕니다. 그래도 일어나야 해요. 방송이 펑크 나면 안 되니까요.
그 시절, 몸과 마음이 다 피폐했어요. 잠을 못 자서 몸이 축나는 건 둘째요, 회사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마음을 괴롭혔어요. 정신적 스트레스는 육체적 질병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요. 나 이러다 화병으로 죽는 거 아닐까? 평생 일만 하다 죽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 그러다 구조조정을 한다기에 조기 퇴직을 선택했어요. 24년을 다니고도 한 번도 보직 부장을 맡아보지 못했고요. 평사원으로 퇴사했어요. 서운하지 않냐고요? 아이고, 살아서 퇴사한 것만으로도 감사하지요.
회사에 다니던 몇 년 전, 한국표준협회에서 하는 CEO 포럼에 연사로 초대받아 간 적이 있어요. 제주도 신라호텔에서 열린 행사였는데요. 당시 기조연설을 하신 분은 100세 철학자 김형석 선생님이었어요. 100세를 넘긴 나이에 인생을 살아오며 깨달은 바를 이야기로 사람들 앞에 서서 나누고 박수를 받는 삶, 너무 부러웠어요. 그때 제게 목표가 생겼습니다.
‘일하다 죽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저렇게 사는 동안에 계속 일하는 걸 목표로 삼자.’
이제 저는 일하다 죽는 게 두렵지 않아요. 죽는 날까지 일하는 게 꿈이니까요. 요즘 저는 하고 싶은 일만 합니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가고 싶은 여행지에 가고, 쓰고 싶은 글만 써요. 방송사를 다니며 2010년부터 10년 넘게 매일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쓰고, 책을 내고, 학교 진로 특강을 다녔어요.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기 위해 저녁 약속은 잡지 않았고요. 전철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책을 읽었어요.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 앞에 서서 진로 특강을 했고요.
그리스어 격언 중에 ‘칼레파 타 칼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일은 이루기 어렵다.’ 쉽고 간단하고 재미난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좋은 일은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시간을 들여야 하거든요. 괴롭고 힘든 시간을 버티고 견뎌야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되고요.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재미와 의미라는 선물을 내게 줍니다.
결국 인생을 바꾸는 건 시간의 힘입니다.
중년의 시간 관리법,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