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 독서 일기

거장의 마지막 편지

김민식pd 2023. 10. 23. 05:34

저는 YES 24에서 운영하는 크레마클럽을 씁니다. 한 달에 5500원이면 전자책을 무제한으로 다운 받아 읽을 수 있는 플랫폼이지요. 시간이 없어서 못 읽지, 읽을 책이 없다고는 말 못 해요. 가끔 인기 순위를 확인입니다. 1위부터 10위 중에서 새롭게 순위에 올라온 책을 찾아봅니다. 그러다 만난 책이에요.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저자의 이름이 낯익은데요. 심지어 제목이 말을 겁니다. 전자책을 다운 받아 읽다가 앞부분만 조금 읽다 바로 빠져들었어요. 전자책 대여 서비스는 이게 좋아요. 언제 어디서나 쉽게 책을 접할 수 있어요. 평생 음악가로 살아온 사카모토 씨는 암 재발 소식을 듣고,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습니다. 앞으로 몇 년 더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요. 앞으로 며칠 더 살까? 그건 너무 어렵네요. 그래서 저자는 남은 여생을 달로 계산해봅니다. ‘나는 앞으로 보름달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하고요.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라고들 합니다. 시간이라는 직선 위에 작품의 시작점이 있고 종착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제게 시간은 오랫동안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그래도 제 몸이 건강할 때는 시간의 영원함이나 일방향성(一方向性)을 전제로 하는 면이 어딘가에 있었는데, 생의 유한함에 직면한 지금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단순한 철학적 접근에서 벗어나,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시간이 쓰는 속임수에 그대로 넘어가 버리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아리스토텔레스를 시작으로 아우구스티누스, 칸트, 하이데거, 베르그송 그리고 현대 물리학자들의 책에 이르기까지 시간에 대한 글들을 몇 년에 걸쳐 다양하게 읽어왔습니다.

좀처럼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제 안에서 한 가지 확실해진 점은 뉴턴이 제창한 ‘절대 시간’의 개념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절대 시간이 어떤 관찰자와도 무관한 존재이며 어떤 장소에서도 일정한 속도로 나아간다고 주장했습니다만, 저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말하자면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이라는 것이 지금의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입원 중에는 고된 일이 많습니다. 체력이 떨어지고, 면역력이 저하되며, 먹어야 할 약들은 산더미에, 몸도 좀처럼 자유롭게 쓸 수 없죠.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문득 음악에 마음을 뺏기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만큼은 병에 대해 잊을 수 있죠. 재미있는 점은 그 음악이 자기 작품일 때 집중 가능한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타임〉의 발표를 앞두고 온라인으로 다카타니 시로 씨와 세부 조정을 상의하던 시간, 그 시간만큼은 우울한 병실 안에서도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신기할 정도였죠. 음악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평생 많은 책을 읽은 사람답게 글이 술술 잘 읽히고요. 배울 점도 참 많은 어른입니다. 절대적 시간은 없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도 시간은 상대적이라 생각해요. 똑같이 한 시간이 흘러도 더 즐겁게 보냈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우도 있고, 너무나 지루하고 힘든 시간이라 아무리 시계를 들여다봐도 시간이 전혀 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요. 

그럼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살다보면 문득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데 감사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 시간의 특징을 잘 기억해뒀다가 그런 시간을 계속 늘리는 방향으로 노력합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여행 다닐 때, 글을 쓸 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갑니다. 그때는 ‘아, 지금 나는 행복하구나’라고 인지할 틈도 없이 시간이 후루룩 지나가 버립니다. 예전에 일을 할 때 그랬어요. 드라마 연출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낮씬을 다 찍어야하고, 동 트기 전에 밤씬을 다 찍어야합니다. 머리가 핑핑 돌아갑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 수가 없어요. 드라마 피디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은 시간인데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어요.


류이치 사카모토는 한국에도 꽤 많은 팬이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그래서 한국과의 인연도 꽤 깊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콘서트를 연 것은 한일 월드컵 개최를 앞둔 2000년이었습니다. 전쟁 이후 이승만 정권 때부터 이어진 일본 대중문화 유입 제한이 막 완화되기 시작했을 때쯤이었는데, 문화 개방 이후 한국에서 공연한 일본인 아티스트로서는 두 번째였을 것입니다. 그때 이미 삼성과 현대 등이 약진 중이었고, 한국 경제의 기세가 일본 경제를 따라잡으려 하고 있었죠.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드디어 숙적 일본을 이길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오르막에 올랐다’라며 들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말은 이내 현실이 되었고요.

그렇지만 제가 만났던 현지의 음악 관계자들은 우리가 한국의 발전을 칭찬할 때마다 “아닙니다. 문화적으로 저희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일본에게 배울 것이 많습니다”라며 겸손하게 답했고, 저는 그 냉정한 균형 감각에도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BTS와 영화 〈기생충〉을 비롯한 한국 문화가 세계를 석권하고 있죠. 저 또한 한류 붐의 불을 붙인 〈겨울 연가〉를 시작으로 〈대장금〉, 〈미스터 션샤인〉 등의 한국 드라마에 푹 빠졌고, 지금도 넷플릭스를 통해 자주 보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시장을 둘러보다 일본식 튀김 같은 것을 파는 노점상이 보여 무심결에 “덴푸라네” 하고 중얼거렸는데 “당신네들 부모가 들여와서 그런 거 아니야!” 하고 버럭 화를 내길래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멈춰 서 있기도 했습니다. 억압한 사람들은 금방 잊지만, 억압 당한 사람들은 세대가 바뀌어도 잊지 못하는 법이죠. 그때의 경험 등을 계기로 일본과 동아시아의 역사에 깊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상처를 준 사람은 금방 잊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쉽게 잊지 못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사카모토 씨의 역사관에 많이 놀랐어요. 상당히 유연한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며 사는 분이더군요. 마지막 순간까지 병상에 누워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공연, 전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일손을 놓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카모토씨는 자신을 영화 음악의 세계로 이끈 세계적인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를 자신의 은인이라고 부릅니다. 어느 날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기 위해 독일에 머물고 있는데 베르톨루치에게 전화가 옵니다. “어이, 류이치. 나도 너랑 똑같이 인후암에 걸렸어”라고 하는 거예요. 전혀 어둡지 않은 목소리로 “This is my love”(이것이 나의 사랑이야)라고 농담을 던졌다고요. 두 거장의 우정에 또 다시 감동합니다.

‘베르톨루치는 연명 치료를 멈춘 후 마지막 한 달을 집에서 보내며 매일 원 없이 와인을 마시고 의료용 대마도 마음껏 피우며 무척 신나게 보냈다고 합니다. 연일 친구들이 놀러 왔던 모양이라, 그가 떠난 후 그의 아내인 클레어에게 “이보다 더 웃었던 적은 없다 싶을 정도로 실컷 웃다가 즐겁게 갔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분명 행복한 마지막이었을 거예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라는 영화로 어린 시절 제게 강렬한 기억을 남긴 영화 감독이 마지막 순간에는 더없이 유쾌하게 살다 가는 모습이 참 멋있었고요. 자신의 마지막 투병기를 담담하게 글로 남겨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류이치 사카모토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를 고민하는 분이라면, 이 책 읽어보셔도 좋아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에 대한 답은 결국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끝까지 치열하게 살다간 우리 시대의 거인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반응형